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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지도자, 어리석은 지도자

Winnipeg101 LV 10 11-23 55

중앙선데이

입력 2014.12.07 03:18
 

 

일전에 아는 분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케스트라에 지휘자 없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박자에 맞추어 손 흔드는 거 누구는 못해요?”

 

오케스트라 연주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지휘자가 하는 일이 ‘박자에 맞추어 손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지휘자는 음악가 중에서 유일하게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악기는 오케스트라이고, 그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사람이 바로 지휘자다. 우리는 지휘자가 무대 위에서 박자에 맞추어 지휘하는 모습만 보지만, 사실 지휘자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휘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대 뒤에서 오케스트라를 훈련시키는 일이다. 지휘자는 연주할 곡의 악보를 꼼꼼하게 읽고 나름대로 음악의 윤곽을 그린 다음 리허설을 통해 여기에 리듬과 악센트·밸런스·색채라는 옷을 입힌다. 이 과정에서 지휘자의 해석이 가미된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하는 사람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듯 같은 오케스트라라도 지휘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지휘자는 템포는 어떻게 설정하고, 박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 프레이즈를 어떻게 처리하고, 소리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갈 것인지 연주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여기서 지휘자에게는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된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전적으로 지휘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케스트라가 그의 악기이고, 지휘자에게는 자신의 악기를 마음대로 요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주자들에게 지휘자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다.

 

지휘자의 권위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 성악가가 모차르트의 미사곡 리허설에 참석했다. 그런데 지휘자가 템포를 너무 느리게 잡는 바람에 숨이 모자라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하늘 같은 지휘자에게 감히 템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었던 그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다음 날 리허설에서 성악가가 지휘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에스트로. 제가 어젯밤 꿈에 모차르트를 만났는데, 이 곡은 조금 빠르게 연주하라고 하던데요.”

 

그 말에 지휘자는 “모차르트가 그랬다니 할 수 없지” 하면서 템포를 조금 빠르게 잡아 연습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지휘자가 성악가를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도 어젯밤 꿈에 모차르트를 만났는데, 모차르트가 당신을 모른다고 하던데….”

 

지휘자가 얼마나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일화다.

 

지휘자 중에는 독재적인 방식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사람도 있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사람도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독단적으로 악단을 운영했던 지휘자로 유명하다. 그러다가 1989년,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카라얀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새 예술감독이 되었다. 아바도는 여러 가지 점에서 카라얀과 대조적인 지휘자였다. 이때 사람들은 카라얀의 독재에 길들여져 있는 베를린 필 단원들에게 아바도의 민주적인 운영방식이 잘 먹혀들어 갈까 염려했다. 독재자 밑에서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적어도 일용할 양식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카라얀처럼 자신의 이름값으로 음반을 팔아 단원들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는 독재자 밑에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아바도는 카라얀에 비해 너무나 지나치게 민주적인 지휘자였다. 이런 갑작스러운 민주화(?)에 베를린 필 단원들이 당황했다. 
 

그중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단원들이 가장 불만을 가졌던 부분은 과거에 비해 턱없이 길어진 리허설 시간이었다. 아바도는 템포를 정하는 문제 하나를 가지고도 30분씩 시간을 끌었다.

 

“이 템포로 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 둘, 셋, 넷…네, 50%가 넘었으니 찬성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땅땅땅.”

 

이런 식으로 리허설을 진행했다고 한다. 아무리 민주화가 좋다지만 100명 가까운 연주자들을 일사불란하게 훈련시켜야 하는 리허설에서 이런 방식이 반드시 효율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아바도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단원들의 의견에 늘 귀를 기울였다. 내가 최선이니 너희들은 무조건 나를 따라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단원들의 해석이 자기 것보다 좋으면 흔쾌히 그것을 수용했다. 언젠가 아바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지도자는 자기가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고치지 않고, 계속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이다.”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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