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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이라는 신기루에 순수의 오아시스는 없다

Winnipeg101 LV 10 23-02-11 157
  • 중대신문
  • 승인 2014.08.31 22:20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만큼은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는다. 언론, 종교, 교육 등에 대해서는 그 압력이 더욱 강하다. 이를테면 비판적인 언론에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거나(이는 기성언론보다 대학언론에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종교계나 교육계의 정치적 행동에 대해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이다. 마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중립이 실재하며,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중립이 요구되는 상황은 있다. 찬반 토론의 사회자, 스포츠 경기에서의 심판 등이 그렇다. 이때 중립이 요구되는 까닭은 그들이 특정한 게임을 ‘중재’하는 자이며, ‘판단’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을 유지하고, 그 룰을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하기 위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사회에서 우리는 사회자도, 심판도 아니다. 사회에는 명백한 권력의 위계를 바탕으로 강자와 약자가 존재한다. 이들에게 룰이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한 학급이 있다. 학급 안에는 명백한 위계가 존재한다. 성적, 재력, 힘 등이 위계를 형성한다. 우리가 모두 겪어본 일이다. 이 위계 속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는 학생이 약자의 위치에 있는 학생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황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중립’인가. 우리는 그것이 방관이며, 강자의 폭력에 대한 암묵적 동조임을 알고 있다.

 

  사회는 다른가. 현실사회는 더욱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더 크고, 공고한 위계를 형성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그 위계 위에 서 있는 현실 속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중립’인가. 마찬가지로 이것도 방관이며, 강자에 대한 암묵적 동조는 아닐까. 기울어진 저울의 가운데에 서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중립적이지 않다.

 

  ‘중립’을 택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을 ‘정치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며, 복잡한 문제와 얽히지 않게 해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명백히 불균형한 힘의 관계로 이뤄진 사회에서 ‘중립’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래서 정치적이다. 당신은 ‘정치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정치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정치성’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중립’이라는 도덕적 도피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 역시 당신의 정치적 선택이다. 사실 당신은 (권력의) 공범이 되어가고 있으며, ‘중립’은 그 공범들의 은신처일 뿐인데도.

 

  현실이 불균형한 위계로 구성된 한 ‘중립’이라는 언어는 사전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언론은 중립적일 수 없다.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양쪽의 입장을 반반 싣는 것, 정치적인 관점을 버리는 것을 어떻게 중립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언론에 객관성을 요구해야 하지만, 중립성은 언론의 몫이 아니다. 교육도, 종교도 다르지 않다.

 

  ‘좌 혹은 우’를 선택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만 비판의 목소리를 내도 ‘빨갱이’가 되고, 보수라는 가치는 그 본뜻을 찾을 수도 없는 사회에서 어쩌면 우리는 가운데로 내몰리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그 폭력과 고통을 생산해내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약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은 정치적인 입장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인 선택은 그 다음이다.

 

  중간이라는 신기루에 순수가 샘솟는 오아시스 따위는 없다. 그저 작은 알갱이로 쪼개져 바람이 불면 속수무책 날려가야 하는 모래의 사막만이 존재할 뿐이다. 얼마 전 방한했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거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상 학생

사회학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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