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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속 평범한 인물들의 패착 - 일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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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11.22 08:00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세계가 열광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두고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떠올립니다. 탈락과 실패에 대한 압박감을 이야기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 빚에 허덕이다 죽음의 게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지금의 내 삶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값은 무섭게 오르고 내 소득으로는 손에 닿을 것 같지 않습니다. 주식투자도 쉽게 수익이 나지 않는데 주위에서 가상화폐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사회를 당장 바꿀 수 없다면 한 개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잘 살 수 있을까요. 제게 가장 간단하게 답해달라고 하시면 ‘일과 사람’이라고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와 감정을 나누며 살아갈지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돈을 벌어 가족, 친구, 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좋아하는 일’, ‘선구자적 업적’, ‘큰돈’, ‘존경받는 사회인’ 같은 것들이 추가될 때마다 난이도는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이것들을 다 이루면서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다면 슈퍼히어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옵션들은 먼저 기본을 탄탄히 하면서 추가한다고 생각해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어린 시절 쌍문동 골목에서 함께 자란 74년생 성기훈과 75년생 조상우를 들여다봅시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두 어머니와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을 보면 조폭,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가장 일반적인 배경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기훈은 공부는 좀 부족했지만 사람들을 잘 챙겼나 봅니다. 한 살 어린 상우와 같이 놀고 학교도 데려갑니다. 공고를 졸업하고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서울대를 들어가고 연락이 뜸해지는 상우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상우 어머니도 살갑게 대합니다. 16년간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며 결혼도 하고 딸도 얻었지만 구조조정으로 서른 후반에 직장을 잃습니다. 치킨집을 차렸으나 실패하고 4억 빚만 남았습니다. 40대의 나이에 대리기사를 하며 노모가 힘들게 장사로 번 돈에 손을 대고 경마장을 들락거립니다. 상상을 더하면 이혼한 전처는 기훈이 아주 밉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파업 때 자신이 홀로 출산하며 죽을 고비를 넘긴 것, 사업이 계속 실패하며 아이를 함께 키우기 힘들다고 생각한 것이 원인 같습니다.

 

만약 기훈이 자영업 준비를 아내와 함께 결정하거나 작지만 조금 더 안정적인 급여를 받는 쪽으로 상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빠를 좋아하고 걱정하는 딸을 어쩌다 가끔 보는 처지보다는 집이 작아지더라도 사교육을 못 시키더라도 가족을 지키는 쪽이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함께 고생하자는 말을 꺼내는 것이 아내와 딸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 기훈이 준비도 안 된 자영업으로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속였을지도 모릅니다.

 

쌍문동의 수재 상우는 40대 후반의 미혼남입니다. 서울대를 나와 증권사 투자팀장으로 승승장구하다 큰돈을 벌기 위해 공금을 횡령하고 선물에 투자하다 60억 빚을 지게 됩니다. 똑똑한 상우의 ‘사람’은 어땠을까요. 어머니에게는 해외 출장을 가서 연락이 어렵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상우에게는 빚 독촉을 하는 사람과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어머니만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연락을 잘하지 않아도 살갑게 대해주는 기훈에게 마음을 터놓지 못합니다. 쓸쓸한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왜 돈에 욕심을 내게 되었을까요. 엄마는 가게를 하시고 자신이 낭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에게 즐거운 취미가 있었을까요. 함께 즐겁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상상이긴 하지만 없었을 것 같습니다. 투자팀장으로 일하며 실적 압박감에 일이 잘 되어도 직업으로서의 안정감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규제를 피해 투자라는 자신의 능력으로 내 돈을 크게 벌 수 있다면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자부심을 느끼는 일이나 함께 오랫동안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일남 할아버지는 돈이 많은 조상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어두운 방법을 사용했고 심지어 큰 부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죽는 순간에도 그의 곁에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스스로도 자신의 일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소비로는 더 이상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치 있는 일이나 사람이 없었던 그에게는 돈을 더 벌겠다는 목표가 살아가는 유일한 재미였을지도 모릅니다. 목표가 사라지니 재미도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돈만 많으면 행복하고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확천금을 얻은 많은 사례에서 ‘일과 사람’에 문제가 있는 경우 오히려 돈이 독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여전히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돈을 더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도 ‘할 일’과 ‘함께할 사람’이라는 기본을 탄탄히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11월호에 ‘오징어게임 속 평범한 인물들의 패착 - 일과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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