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은 정말 사는 게 재미가 없을까? (feat. 오징어 게임 설계자)

Winnipeg101 LV 10 22-01-10 326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10.31 08:00

 

 

심리학 렌즈 (11)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본 글에는 오징어 게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이 필자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은 정말 사는 게 재미가 없냐는 질문이었다. 갑자기 생뚱맞다 여길 수 있지만, 요즘 핫한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이다. 주인공인 기훈(이정재 분)은 오징어 게임 설계자를 찾아가 분노에 차서 “왜 이런 짓을 했느냐”라고 묻는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설계자는 담담히 이렇게 얘기한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라고 말한다.

 

정말 돈이 너무 많으면 사는 게 재미가 없을까? 지인이 필자에게 처음 물었을 때는 농담 반으로 “그런 상황이 되어보지를 못 해서 모르겠다.”라고 답을 했는데, 분명 의미가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모두 재미와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거니까.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필자는 이 질문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바디 프로필 준비 경험이었다.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바디 프로필 준비는 먹는 거와의 싸움이다. 필자도 바디 프로필을 한 달 남기고는 ‘닭가슴살 500g + 고구마 500g’을 저울로 달아서 그 외에는 어떤 음식도 먹지를 않았다. 그 당시 라면이나 치킨 같은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이 얼마나 땡기는지, ‘먹고 싶음’과의 사투였다. 힘겹게 바디 프로필 촬영을 끝내고, 같이 준비했던 지인들과 파티룸을 빌려 세상 온갖 음식을 시켜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때 먹었던 음식의 맛이 어땠을까? 이전에 먹었던 음식 맛이랑 똑같았을까? 아니다. 바디 프로필이 끝나고 마셨던 맥주 한 모금, 라면 한 젓가락의 맛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음식 조절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은 뭘 먹어도 다 그 맛이 그 맛이다. 먹을 것이 풍족해지니, 음식이 주는 행복이 반감이 된 것이다. 이 현상은 분명 의미가 있다.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세상 자극의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가 본 영화 매트릭스’ 연재에서 상술했듯이, 우리의 뇌는 딱딱한 두개골에 싸여 있어서 실제 세상과의 접점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뇌는 주관적으로 해석한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 명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외부 자극을 좀 더 많이, 좀 더 자극적으로 추구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객관적인 외부 자극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바디 프로필이 끝나고 먹었던 라면과 지금 먹는 라면의 객관적 자극의 정도는 완전히 동일하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느낀 자극의 정도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 사실은 돈이 너무 많아 어떤 자극이든 쉽게 마음껏 취할 수 있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독자들 중에 라면이라는 음식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분이 계시는가? 별로 없을 것이다. 싸고 언제든 접할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디 프로필을 준비해보면서 느낀 것은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가장 맛있는 음식이 라면이었다는 것이다. 이건 같이 준비했던 지인 모두 이구동성으로 했던 이야기이다.

 

만약 라면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조선시대 사람이 먹는다면 그 느낌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만약 라면이 한 봉지에 백만 원이라서 쉽게 먹는 게 힘들다면 그 느낌이 어떨지 상상해보자.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라면이 주는 행복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도 똑같다. 언제나 쉽게 어떤 자극이든 취할 수 있는 환경에서 느낄 수 있는 자극의 정도는, 쉽게 취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어렵게 얻은 자극의 정도와는 다르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 설계자도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뭐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라고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만약 오징어 게임 설계자가 행복은 외부 자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뇌 안에서 만들어 낸 자극 안에 있다는 것을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면 인생이 어땠을까? 아마도 행복을 위해 외부 자극의 정도를 높이는 데에만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비극적인 오징어 게임이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가 많은 글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부분에 다시 귀결하게 된다. 내 안의 마음의 모양이 어떻게 생겨있는지를 아는 것. 내 안의 마음의 모양이 어떻게 생겨있는지를 알아야 내 뇌 안의 행복이라는 자극을 우리가 선택해서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보다 이 부분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어떠한 자극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어떠한 느낌을 갖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제로에 가깝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착각이다. 내 안의 세계는 그렇게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세계의 정도와 범위가 작지 않다. 정신과 의사로서 알면 알수록 ‘모른다.’에 귀결이 될 정도로 내 안의 세계는 평생을 다해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세계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 거대한 세계를 조금씩 조금씩 알아갈수록 내 인생도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갈 수 있다. 이것은 필자도 경험하였고, 필자에게 상담받는 내담자들도 겪었던 경험이다. 필자가 답답해하는 지점은, 이 부분을 머리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뼛속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이다. 필자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이 딱 하나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더 행복해지고, 사회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필자는 굳게 믿고 있다.

 

필자가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40여 편에 걸쳐 진심으로 전달드렸던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과 ‘내 안의 소우주’라는 이 거대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주고받는 시점이 빨리 왔으면 한다. 아마도 그 시점은 ‘인간에게는 순수한 의미의 자유의지는 없다.’라는 이 진실이 상식이 되는 그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궁금하신 독자 분들은 상기 링크 글을 확인해보셨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무리코자 한다.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8회 ‘정신과 의사가 본 오징어 게임’ 방송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태그 :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1999&page=4&total=259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