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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in ‘킬 빌 Kill Bill: Vol. 1’ 사무라이, 일본도 그리고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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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in ‘킬 빌 Kill Bill: Vol. 1’ 사무라이, 일본도 그리고 복수극

 

2018-11-08 10:35:27

 

 

‘킬 빌’은 미국 영화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일본과 그중에서 사무라이와 일본도에 대한 ‘애정 영화’에 가깝다. 한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이야기에 일본 문화를 담아낸 타란티노의 솜씨가 일단 놀랍다. 난무하는 칼날에서 발산하는 빛과 정면 승부, 즉 1:1 대결 구도의 무술 장면 등 동양과 일본의 문화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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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 20세기, 경제적 부를 이룬 일본의 상징은 단연 도쿄다. 이 화려하고 기능적인 도시는 약 400년 전부터 수도 역할을 해 왔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완성된 것은 1869년 메이지 천황의 도쿄 이주가 그 시작이다. 이전까지 천황의 거처는 교토였다. 교토 태정관에서 정무를 보던 메이지 천황은 그 동안 막부의 거점이던 도쿄로 거처를 옮겨 ‘일본 수도=도쿄’ 체제를 완성했다. 

물론 메이지 천황 전에도 도쿄는 ‘에도’라 불리며 일본 지배의 근거지였다. 12세기 가마쿠라 막부 때부터 에도는 전국 시대의 중심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에도가 힘의 집결지가 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부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임진왜란을 일으켜 각 영주들의 무력을 상실시켰다. 그런데 단 한 명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 출병에 병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물론 도요토미는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도요토미는 도쿠가와에게 조선 출병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그의 영지 교체를 지시했다. 수십 년 동안 일궈 온 모든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은 도쿠가와는 전쟁 대신 영지 이전을 선택했고 관동 지역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옮겼다. 그 관동의 중심이 바로 에도다. 

도쿄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 궁, 신사, 광장 등 왕조의 역사가 있고 미래 도시의 일단도 엿볼 수 있다. 문학, 회화,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도쿄는 일본의 성장과 함께 그 이름을 알렸지만 역시 도쿄의 정취와 실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수단은 영화다. 미나모토 다카시 감독의 ‘도쿄 타워’,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할리우드 영화지만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 드라마가 도쿄를 무대로 펼쳐졌다. 물론 이들 작품도 인상 깊지만 도쿄, 정확하게 일본 문화의 단면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은 ‘킬 빌’이 으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서 일본은 오키나와, 도쿄가 지명으로만 등장한다. 황궁, 메이지 신궁, 도쿄 타워, 헤이안 신궁, 레인보우 브리지, 긴자 번화가, 신주쿠의 활기찬 모습, 츠즈키 시장의 싱싱함은 단 한 컷도 없다. 유일하게 도쿄 로케는 브라이드가 소피의 벤츠를 따라가는 오토바이 신에서만 등장한다. 그럼에도 ‘킬 빌’은 일본과 도쿄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미국인이 만든 미국 영화지만 이 영화의 본질은 일본과 그들의 문화 중에서 사무라이와 일본도에 대한 애정이다. 한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간단한 이야기에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담아낸 타란티노의 솜씨에 놀라면서, 난무하는 칼날에서 발산하는 빛과 정면 승부, 즉 1:1 대결 구도의 무술 장면 등 일본의 문화가 차고 넘친다. 

‘킬 빌’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영화학도라면 단연 타란티노의 천재적 솜씨에, 음악 애호가라면 그의 뻔뻔할 정도로 ‘가져다 쓴 OST’에 감탄할 것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영화를 이루는 구도와 캐릭터 그리고 무술 장면에서 타란티노가 심취한 사무라이와 일본도에 관심이 갈 것이다. 하나도 안 보여 주었지만 정작 일본의 모든 것을 보여 준 타란티노처럼, 우리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지만 영화 속 이른바 ‘사무라이 문화와 일본도’를 주목해 본다. 물론, 배경은 도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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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식혀서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 미국 시골의 작은 교회. 황량한 이곳에서 결혼식이 열린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브라이드(우마 서먼)는 지금 이 순간이 꿈 같다. 신랑과 그의 부모님 그리고 몇 명의 친구들이 참석했다. 신부의 부모와 가족은 없다. “너무 멀리 있어서 올 수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이는 변명이다. 그런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배가 볼록하다. 브라이드는 지금 임신한 상태. 그녀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배를 쓰다듬는다. 교회 밖으로 잠깐 나온 브라이드는 옆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빌(데이빗 캐러딘)이다. 두 사람은 마주본다. 살짝 미소를 짓는 브라이드. 

“브라이드, 오늘은 정말 아름답군!” 

“오늘은 얌전히 있을 거지요?” 

“그럴 생각인데, 나도 잘 모르겠어.”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한다. 브라이드는 암살단 ‘데들리 바이퍼스’의 일원. 그녀는 ‘블랙 맘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최고의 살수였다. 빌은 데들리 바이퍼스의 보스. 브라이드에게는 아버지 혹은 애인 같은 존재다. 브라이드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지만 빌이 자신을 축하해 주러 온 것이라 믿고 싶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조직에서 나와 결혼을 하는 것을, 빌이 이해해 주리라고. 하지만 빌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브라이드는 단순한 단원이 아니었다.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존재. 홀연히 떠나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자 빌은 브라이드가 ‘배신했다’고 판단했다. 

브라이드가 교회로 들어갔다. 검은 옷을 입은 네 명이 교회로 향한다. 바로 데들리 바이퍼스의 단원이며 브라이드의 동료들이다. 독사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 버니타 그린(비비카 폭스), 빌의 친동생 버드(마이클 매드슨), 애꾸눈 엘 드라이버(대릴 한나)다. 평소 브라이드에게 시기심을 느끼던 죽음의 사자 같은 존재들이다. 잠시 후, 결혼식장은 지옥으로 변한다. 총알이 쏟아지고 칼이 춤을 춘다. 브라이드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다. 믿을 수 없는 현실. 브라이드의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피로 물들고 아름다워야 할 신부의 얼굴은 퉁퉁 부었다. 브라이드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도 본능적으로 배를 감싼다. 쓰러진 그녀를 빌과 네 단원들이 쳐다본다. 겨우 목숨이 붙어 있는 브라이드는 마지막 힘을 모아 입을 연다. “사실 이 아이는 빌, 당신의 아이에요.”라며 말을 잇는 순간, 총알이 브라이드의 머리에 박힌다. 

시간이 지난 후 병원, 브라이드는 중환자실에서 주삿바늘을 꽂은 채 숨만 쉬고 있다. 그 순간 버버리 코트를 입은 날씬한 여인이 병원에 들어선다. 애꾸눈 엘 드라이버다. 그녀는 브라이드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의 명령으로 브라이드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엘 드라이버는 간호사로 변장하고 주사기를 든다. 엘 드라이버의 특기는 독약. 브라이드와 같은 스승에게 무술을 배웠지만 평소 브라이드를 시기했던 엘 드라이버는 이렇게 쉽게 브라이드를 죽이는 것이 못마땅할 정도다. “더 고통을 주고 싶은데….” 주사기에 든 독약을 브라이드에게 주입하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빌이다. 

“우리는 잠자는 사람을 몰래 죽이지 않는다. 임무를 중단하라.” 이렇게 브라이드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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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 4년 후, 죽은 시체처럼 누워있던 브라이드가 눈을 뜬다. 기적이다. 그녀는 의식을 찾는 순간, 자신의 배를 만진다. 울부짖는 브라이드. “내 아기, 내 아기….” 머리를 만진다. 총알에 부서진 머리뼈에는 단단한 쇠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4년 전,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피의 살육을 기억한다. 복수를 다짐하는 브라이드. 기어서 병원을 탈출한다. 차에 탄 브라이드는 초인적인 힘으로 엄지발가락을 움직인다. 그렇게 브라이드는 진짜 살아났다. 브라이드는 몸을 추스르고 ‘데스 노트’를 작성한다. “모두 죽이겠다”고. 

첫 번째 대상은 버니타 그린. 그녀의 집에 도착한 브라이드. 버니타가 문을 연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잃는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다. 막상막하의 실력. 단검을 들고 노려보는 두 사람. 그 순간, 노란색 스쿨버스가 서는 것이 창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버니타의 어린 딸이 차에서 내린다. 버니타는 눈으로 말한다. “제발. 아이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딸. 브라이드와 버니타는 단검을 몸 뒤에 숨기고 웃는 얼굴로 아이를 맞는다. 온통 부서지고 엉망이 된 집. 어린 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지만 그 눈동자는 본능적으로 비극을 감지한다. 버니타는 브라이드에게 말한다. 

“브라이드, 아이를 봐서 나를 살려 줘.” 

“버니타, 복수는 그런 것이 아니야.” 

버니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간식을 챙기면서 순간 브라이드에게 총을 쏜다. 브라이드는 몸을 숙이고 단검을 던진다. 단검은 버니타의 가슴에 꽂힌다. 단검을 빼 집을 나서려는 브라이드는 걸음을 멈춘다. 버니타의 딸이 이 광경을 다 본 것이다. 브라이드는 버니타의 딸에게 말한다. 

“네 엄마가 자초한 일이야. 네가 자라서도 나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지 않으면 나를 찾아와. 너의 복수를 기다릴게.” 

브라이드의 다음 목표는 오렌 이시이다.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도쿄 야쿠자 보스다. 독사라는 별명처럼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단칼에 상대를 베어 버리는 일본도의 고수다. 브라이드는 오키나와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곳에는 브라이드가 만날 사람이 있다. 바로 핫토리 한조(치바 신이치). 일본도 제조의 명인이다. 하지만 핫토리 한조는 자신이 만든 칼이 ‘살생 도구’가 되는 것이 안타까워 은퇴한 뒤 지금은 작은 식당을 운영 중이다. 한조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브라이드. 한조는 투박한 영어로 브라이드를 맞고, 브라이드는 서툰 일본어로 그를 상대한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는지요.” 

“사람을 만나러 왔어요. 그런데 그 사람을 알지는 못해요.” 

“호, 누구인데요?” 

“핫토리 한조!” 

“…그 사람을 왜 만나려는 거죠?” 

“한조의 칼을 받으려고 왔어요.” 

 

 



브라이드는 한조의 칼로 빌의 숨통을 끊겠다고 말한다. 한조는 브라이드에게 “칼을 만들어 주겠다. 한 달을 기다려라”라고 말한다. 한 달 뒤, 한조는 브라이드에게 그의 생에 마지막으로 만든 일본도를 내준다. 그리고 말한다. 

“무사란 결투에 임하는 순간 오직 적을 쓰러뜨릴 생각에만 전념해야 한다. 일체의 희로애락이나 인정 따위의 감정은 버려라. 그대 앞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그것이 설령 신이나 부처라고 해도 베어 버려라. 이것이 결투의 근본이다!” 

오렌 이시이는 야쿠자 조직을 평정하고 보스가 되었다. 하지만 야쿠자 회의에 모인 중간 보스들은 오렌 이시이를 마음 속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그중 한 명이 오렌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우리처럼 전통 있는 조직에, 여성이 보스라니. 그것도 중국 피가 흐르는 미국인이라고?” 

오렌 이시이는 그의 목을 베어 버린다. 그리고 영어로 소리친다. 그 소리를 프랑스계 혼혈 참모 소피 파탈(줄리 드레이퍼스)이 일본어로 통역한다. 

“나는 보스로서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물론 예의를 갖춰서, 내 방식에 의문을 갖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만약에 너희들이 내가 가장 올바르다고 선택해서 실행한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말해라. 나는 너희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한다. 그 어떤 화제도 금기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방금 논의된 화제를 제외하고. 나의 중국인 또는 미국인 혈통을 부정적으로 끄집어내는 대가는… 너희들의 그 더러운 입이 달린 머리를 내가 모을 것이다.” 중간 보스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감히 오렌 이시이의 눈을 쳐다보지 못한다. 그녀에게 이제 혈통 이야기는 죽음을 각오해야만 할 수 있는 금기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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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의 향연, 녹엽정 결투 신 녹엽정에 도착한 오렌 이시이와 그녀의 경호병들. 오렌 이시이는 하얀색 기모노를 입고 호위 무사 고고 유바리(쿠리야마 치아키)와 눈만 가린 검은색 가면을 쓴 호위대 10여 명을 거느리고 보스 취임연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녹엽정에 들어선 브라이드. 2층에 올라가 오렌 이시이의 방을 엿듣는 브라이드. 순간 오렌 이시이는 비수를 방문으로 날린다. 고고 유바리가 재빨리 방문을 열고 살피지만 아무도 없다. 고고 유바리가 방으로 들어가자 천장에 매달려 있던 브라이드가 소리 없이 내려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이소룡이 그의 마지막 영화 ‘사망유희’에서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아디다스 운동화. 그때 치파오를 입은 소피가 화장실로 들어선다. 

잠시 후, 소피의 비명 소리와 함께 브라이드가 외침이 녹엽정에 울려 퍼진다. “오렌~! 이시이~.” 다다미 방문이 열리며 오렌 이시이의 경호병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무리를 가르며 나오는 오렌. 그녀의 눈에 팔이 잘린 소피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브라이드가 보인다. 일본도로 무장한 경호병들이 브라이드를 향해 달려든다. 칼이 춤춘다. 그 춤 사위에 경호병들은, 사지가 잘린 채 쓰러져 간다. 순간 녹엽정은 지옥으로 변한다. 브라이드의 칼은 용서와 관용이 없다. 경호병들의 허리를 베고, 머리를 자르고, 몸을 양단하고, 숨통을 찌른다. 오렌 이시이만 남았다. 

오렌은 단도를 빼어 든다. 그 순간 녹엽정을 뒤흔들며 들어서는 수많은 야쿠자들. 이들은 바로 자니 모(유가휘)가 지휘하는 오렌 이시이의 경호대인 ‘크레이지 88’부대다. 악명 높은 크레이지 88부대원들은 모두 눈을 가린 검은 가면을 쓰고 브라이드를 에워싼다. 다시 혈전이 벌어진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숨막히는 순간이 이어진다. 1층 넓은 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좁은 복도에서 브라이드의 칼이 번뜩일 때마다 크레이지 88부대원은 쓰러진다. 마침내 88부대는 어린 부대원 한 명만 남아 있다. 브라이드는 부들부들 떠는 어린 야쿠자의 엉덩이를 칼로 때리며 “빨리 엄마에게 돌아가”라고 소리친다. 

방문을 여는 브라이드. 방은 정원으로 연결된다. 초록색 나무, 작게 돌아가는 물레방아, 그 모든 것을 뒤덮은 하얀 눈, 정원은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다. 하얀 기모노, 검은 머리 그리고 황색 피부에 눈동자만큼 반짝이는 칼을 빼든 오렌 이시이. 순간, 장 피엘의 ‘외로운 양치기’의 처연한 선율이 흐른다. 핫토리 한조의 칼을 빼든 브라이드, 이를 본 오렌 이시이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두 사람의 칼이, 몸이, 그리고 마음이 부딪친다. 마지막 순간, 하얀 눈 위로 그보다 더 하얀 오렌 이시이의 기모노에 붉은 꽃이 핀다. 오렌 이시이는 브라이드의 복수의 칼을 결국 피하지 못했다. 데스 노트에서 오렌 이시이의 이름을 지우는 브라이드. 이제 버드, 엘 드라이버 그리고 빌이 남아 있다. 그녀의 복수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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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천재가 만든 일본에 바치는 헌사 쿠엔틴 타란티노는 ‘천재 괴짜’다. 이기적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천재 혹은 기괴한 자기만족 투성이 괴짜가 아니라 이 두 가지 장점을 혼합한 ‘천재 영화 덕후’다. 그는 같이 작업을 한 배우들이 “그보다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감독은 없다”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영화를 위해 태어난 미친 사람’이다. ‘트루 로맨스’의 시나리오 작가부터 시작한 그는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으로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혹자들은 타린티노 영화를 ‘저급한 복제품’ ‘B급 무비를 보고 자란 시네마 키드, 그래서 B급 무비밖에 만들지 못하는 감독’이라고 폄하하지만 이는 개인적 취향 차이다. 다수의 대중에게 타란티노는 ‘B급 정서를 취해 이를 S급으로 둔갑시키는 영상의 마술사’다. 

평단에서 타란티노를 평가하며 이런 표현도 쓴다. “타란티노 이전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오리지널리티’다. 그것을 타란티노가 무너뜨렸다. 그의 영화에는 수많은 영화의 장면, 음악, 연출 기법, 촬영 등이 버젓이 쓰인다. 그럼에도 타란티노 영화는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그것이 바로 타란티노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이다”라고 극찬한 것이다. 

‘킬 빌’은 지독할 정도로 타란티노의 개인적 취향이 드러난 작품이다. 그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홍콩과 특히 일본에 심하게 경도되어 영화 세계를 지배하고, 이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킬 빌’이다. 선혈이 난자한 폭력성, 수다에 가까운 대사, 기존 음악을 활용한 음악 선곡 그리고 B급 혹은 홍콩 영화 및 일본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철철 넘친다. 이 영화의 주제는 ‘복수’다.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에서 모든 것을 잃고 4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살아난 브라이드. 그는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간 과거 동료를 찾아 응징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 복수의 방법이다. 암살, 기습, 저격이 아닌 정면에서 직접 처단하는 방식이다. 이는 타란티노가 애정하는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볼 수 있는 건맨들의 1:1 대결 양식과 동일하다. 

 

 



타란티노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오마주다. 오마주는 표절과는 종이 한 장 차이. 타란티노는 ‘킬 빌’에서 그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감독과 그들의 영화, 배우에 대한 헌사를 거침없이 써내려 갔다. 우선 배우는 타란티노가 “1970년대 최고 액션 배우는 소니 치바(치바 신이치), 찰스 브론슨, 클린트 이스트우드다”라며 극찬한 대로 소니 치바를 일본도 제조의 명인 핫토리 한조 역으로 섭외했다. 특히 소니 치바는 홍콩 무술 감독 원화평과 수백 명의 액션 스턴트를 직접 지도했다. 또한 오렌 이시이의 경호대인 크레이지 88부대장 역이자 ‘킬 빌 2’에서 브라이드와 엘 드라이버의 스승 파이 메이 역으로 분한 유가휘는 타란티노가 삼고초려한 인물. 오렌 이시이의 호위병 고고 유바리 역의 쿠리야마 치아키는 타란티노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 후카사쿠 킨지 감독에 대한 예의의 표현이다. 쿠리야마 치아키는 후카사쿠 킨지의 ‘배틀 로얄’에서 치구사 역으로 출연한 배우. 타란티노는 2009년 지난 17년간 최고의 영화 20선을 선정하며 ‘애니씽 엘스’ ’오디션’ ’서극의 칼’과 봉준호의 ‘괴물’도 순위에 포함시켰지만 단연 1위로는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배틀 로얄’을 꼽았다. 

‘킬 빌’에 쓰인 기존 영화들의 오마주는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여주인공의 복수와 마지막 설원에서의 결투를 그대로 차용한 일본 영화 ‘수라설희’. ‘핫토리 한조의 그림자 군단’ ‘죽음의 다섯 손가락’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등 일본 영화에서 많은 것을 차용했다. 

또 ‘킬 빌’을 거론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소룡이다. 우마 서먼이 녹엽정에서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은 이소룡의 마지막 작품 ‘사망유희’ 복장과 동일하다. 그리고 우마 서먼 상대역 오렌 이시이의 크레이지 88부대원이 쓴 검은 복면은 1960년대 미국 TV시리즈 ‘그린 호넷’의 운전사 카토가 썼던 마스크다. 이 카토 역을 이소룡이 맡았다. 재미있는 구도다. 이소룡 복장을 한 우마 서먼이 이소룡 배역을 연상시키는 크레이지 88부대원들을 칼로 무찌른다는 설정은 아마도, 타란티노가 이소룡을 희화한 당시 인종차별적 미국 문화에 대한 일종의 ‘디스’인 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도 타란티노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산타 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대결 장면의 긴장감을 높인다. 

재미있는 장면은 도쿄 암흑가를 통일한 오렌 이시이가 중간 보스들과 만찬을 하는 중에 이에 반항하는 쿠니무라 준의 목을 베고 말하는 장면이다. 중국계 혈통의 미국인인 오렌 이시이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자 프랑스계 혼혈인 소피가 일본어로 이를 번역한다. 이는 다분히 타란티노의 특기인 동서양의 혼합, 장르의 경계 허물기, 현지 언어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처럼 타란티노 영화를 지배하는 극단적인 동양, 특히 일본풍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단연 사무라이와 일본도다. 타란티노는 ‘킬 빌’에서 대결의 형식에 사무라이가 갖는 ‘충성과 예의, 엄격함과 수양’을 적용, 극도의 절제미와 두려움을 부각시켰고 녹엽정 대혈투는 일본도의 예리함과 일도양단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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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천 년 동안 지배한 사무라이 ‘사무라이 侍’는 일본의 상징처럼 널리 알려진 문화다. 쉽게 비유하면 중세 유럽의 기사 계급과 비슷한 역할과 신분이 바로 일본의 사무라이다. 일본어로 ‘모신다, 시중들다’라는 뜻을 지닌 사무라이의 등장은 일본 최초의 중앙 정권인 야마토에서 태동하여 본격적으로는 헤이안 시대에 이르러서다. 야마토 정권은 천황제를 만들고 귀족들에게 땅을 주어 이를 관리하게 하면서 일정 양의 공물을 받아 권력을 유지했다. 각 귀족들은 점차 토지가 확대되면서 토지와 농부들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을 두기 시작했고 이들이 사무라이의 시초가 된다. 

이후 일본은 전국 시대로 접어든다. 천황의 중앙 정부는 힘과 통치권을 상실하고 영주들이 각각 영지에서 세력을 유지했다. 이때부터 영주들이 토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사를 뽑고 양성하기 시작했고 이들이 사무라이가 된다. 약 1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전국 시대는 이에야스의 통일까지 무려 수백 년간 지속됐다. 이때가 사무라이 전성시대다. 영주는 물론 사무라이들도 생명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칼을 잡았다. 이 무렵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무라이의 전통, 원칙이 세워졌다. 

넓은 의미에서 사무라이는 천황, 귀족 그리고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영주인 다이묘, 그 다이묘에게서 많게는 1만 석에서 몇백 석의 토지를 하사 받은 무사로 이루어진 일본 계급 제도하에서 다이묘부터 소규모 무사까지를 통틀어 지칭한다. 또한 1만 석 이하의 토지를 갖고 영주 가문 소속으로 그 가문에 충성하는 무사들을 지칭한다. 사무라이 전성시대는 16, 17세기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 성립 이후 막을 내린다. 전쟁이 없는 나라가 되면서 사무라이들은 무사에서 관리와 문관으로 그 쓰임새와 영역을 확대했다. 에도 막부 말기에는 칼을 쓰지 못하는 사무라이까지 존재했다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무라이와는 다른 실상이다. 그야말로 ‘폼’으로 칼을 차고 다닌 격이다. 

사무라이들은 10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약 천 년 동안 일본을 지배했다. 이들이 권력을 쥐고 사회의 중추가 되면서 일본에는 자연스럽게 사무라이 문화가 각 영역에 침투해 ‘일본=사무라이 문화’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사무라이 문화의 긍정의 이미지는 ‘엄격한 자기 관리, 주군에 대한 충성, 예의와 자기 수양’이다. 물론 사무라이 문화의 폐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무라이들은 주군이 죽거나 영지가 없어지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자살하거나 이를 거부하면 낭인이 되는 것. 이 과정에서 ‘로닌’이라는 낭인이 된 사무라이는 칼을 쓰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이 떠돌이 무사가 되어 도적질, 살인 청부 등을 맡아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막부의 멸망과 영주 직할지 반환, 천황의 직접 통치 그리고 총으로 대표되는 신문물이 유입되면서 사무라이의 활용도는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사무라이에게 총은 치명적인 무기였고 천황의 직접 통치가 도입되면서 영주들의 가신 사무라이는 그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 사무라이의 천 년 일본 지배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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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 시대의 잔혹한 상징, 일본도 사무라이의 상징이 바로 일본도다. 길고 달처럼 휜 즉 외날 곡도인 일본도는 당나라 시대 도래한 ‘당태도唐太刀’가 근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일본도는 중국이나 한국의 칼과는 그 쓰임새가 달랐다. 중국의 칼은 크게 ‘검’과 ‘도’로 나눠지며 검은 주로 찌르기 용, 도는 주로 베는 용도였다. 우리의 칼은 환도라 불리며 임진왜란 전까지는 주로 찌르는 용도였지만 왜란 이후 베는 기능을 추가한 칼들이 제작되었다. 이에 비해 일본도는 점차 칼도 길어지고 두 가지 금속을 합해 그 단단함을 강조해 주로 베는 용으로 쓰였다. 일본도는 접철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접철 방식은 탄소성분이 다른 연강, 경강을 덧대어 단단하면서도 부러지지 않게 만드는 방식. 일본도 종류는 사용처와 길이로 구분된다. 칼날이 1척(약 30cm)보다 짧은 것은 단도, 1척에서 2척 사이는 소도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2척보다 긴 것은 대도 혹은 장도로 불렀고, 사무라이들은 이 대도를 쌍으로 만든 다이쇼를 차고 다니는 것이 신분과 부의 상징이었다. 닌자들은 외날 곡도가 아닌 중국식 직선 칼을 사용했다. 은밀함을 요하는 닌자에게 일본도는 사용과 이동에 불편했기 때문이다. 

손잡이는 두 손을 다 사용할 수 있게 길게 제작되었고 상대를 베어 넘어뜨리는 용도로 한쪽 날은 날카롭게, 다른 쪽은 그 날카로운 면을 보호하는 단단함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일본도 전투는 불과 몇 합의 교전에서 승부가 이루어진다. 거의 단 1합에 승부가 나는 일본도 대결은 서부 영화의 1:1 대결과 비슷한 형태다. 그래서일까. 일본이 자랑하는 전통 스포츠인 스모 대결은 모두 단판 승부다. 일본인이 우리의 씨름 대회를 보고 “세 번씩 대결의 기회를 주는 것은 스포츠로는 가능하지만 진검 승부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미 한 번의 승부에서 패한 자는 목숨이 없는 것과 진배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초기의 일본도는 전국 시대 때만 해도 주요 무기는 아니었다. 긴 활을 사용했고 그 다음이 창, 마지막 백병전이 벌어지면 일본도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후 내전이 종식되면서 일본도는 사무라이들의 신분 상징이자 수양을 나타내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각 지역마다 도장이 세워지고 유파가 정립되고 특히 칼을 만드는 장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즉 칼이 하나의 장식용이 된 것이다. 각 도장과 유파, 장인들이 완성된 칼에 상징을 첨가하거나 새기면서 일본도는 그 미적 완성도를 갖게 되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부터 오직 사무라이만이 칼을 차고 다닐 수 있어 ‘칼은 사무라이의 정신이자 특권’으로 여겨졌고, 에도 막부 시대가 되면서 검술은 ‘정신 문화’의 주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막부의 평화 시대가 지속되고 막부 말기에 사무라이는 ‘직장’을 잃었다. 그래서 이들은 칼을 제조하거나, 음식을 만들거나, 도자기를 굽거나, 학자가 되거나, 도구를 만드는 새로운 직에 도전했고, 그것들이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일본에는 수백 년 된 가업이나 노포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것 역시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의 부산물인 셈이다. 

일본도에서 연상되는 것이 잔혹하지만 바로 할복이다. 말 그대로 배를 가르는 할복은 사무라이만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죄를 짓거나, 주군을 잃고 포로가 되어 죽음에 직면했을 때 할복은 사무라이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였다. 할복을 할 때는 소도를 꺼내 배를 찌르고 옆으로 긋고 심지어는 소도를 위로 올렸다고 한다. 이때 무사가 일본도를 들고 할복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단칼에 목을 베는 것이 할복의 방식이다. 물론 이 같은 방식이 마치 사무라이 문화의 ‘자랑스러운 전통’처럼 여겨져 아직도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 문화’가 야쿠자 세계에서 존재한다. 

현재 일본도는 몇몇 명인이 그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일본도는 하나의 전통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일본도는 군국주의, 잔인성, 탄압의 상징이자 도구로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킬 빌’은 일본 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다. 사무라이, 일본도, 보스에 대한 충성 등등. 물론 타란티노의 일본 문화 경도에 호불호를 가릴 것은 없겠지만 영화는 그 자체의 잔혹함으로도 보기 불편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킬 빌’은 주류에 포함되지 않는 B급 문화와 정서를 한데 버무려 보기 좋게 만들어 낸 작품임은 분명하다. 타란티노의 천재성이 빚어낸 처절한 복수극, 그것에서 우리는 일본 문화의 날카로운 민낯을 발견할 수 있다. 

[글 정유진(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포토파크,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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