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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음식문화 | 중국의 음식문화

Winnipeg101 LV 10 22-01-19 174

2019. 12. 1. 18:18
 

 

 

 

 

 

TIP

 

1. 음식 역사 
2. 중국 음식문화의 특징 
3. 중국의 식문화 
4. 메인 식재료 
5. 대표적인 음식 
6. 식기류 
7. 테이블 세팅

 

 

 

음식 역사

요리기술이 고대에서부터 확립되었던 중국은 왕실이나 귀족요리와 함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서민요리가 한데 어우러져 중국요리가 더욱 발전한다. 불노장생의 꿈을 꾸던 진시황제로부터 한방식(漢方食)이 시작되었고 가공식품도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발달하기 시작한 요리는 청대에 이르러 중국요리의 부흥기를 이루게 되었다. 중국요리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만한전석'은 청나라 시대의 화려함과 호사스러움의 극치를 이루는데 상어지느러미, 곰 발바닥, 낙타의 등고기, 원숭이의 골 등 중국각지에서 준비한 희귀한 재료들을 이용하여 100종 이상의 요리를 준비해서 이틀에 걸쳐 먹는 것으로서 이 요리법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서태후가 나들이를 할 때에는 요리사를 100명이나 대동하고 음식을 수백가지나 만들어 먹었다고 하니 그 화려함의 극치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중국 음식문화의 특징

중국의 음식문화를 살펴보며 먼저 특징으로는 중국의 음식문화는 5천년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국가가 설립되고 왕조가 구축되면서 여러 풍습과 음식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수천 년 전통을 이어오면서 중화인의 사상, 민족심리, 생활방식, 신앙, 예절 등이 중국의 음식문화에 모두 다 반영되어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식생활에 매우 신경을 많이 씁니다. 중국에서는 의식주 대신 식의주 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일 정도로 식생활을 매우 중요시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음식목적을 단순히 살기 위하여 영양가를 섭취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않고 식생활을 건강과 장수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은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즉, 의약과 음식은 본래 그 뿌리가 하나라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음식으로 몸을 보신하고 병을 예방하여 치료하고 장수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음식문화는 매우 다채롭고 맛도 독특합니다. 동북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 다양한 민족구성은 중국요리가 다채로운 형태와 독특한 맛을 갖게 한 중요한 이유입니다. 또한 중국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것 중에는 비행기, 땅위에 있는 것 중에는 자동차 빼고 다 먹는다고 할 정도로 모든 것을 다 먹습니다. 예를 들어 곰, 자라, 고양이, 쥐, 벌레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불로장생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인은 손님접대를 매우 좋아합니다. 또한 식사를 할 때에도 혼자서 식사하지 않고 공동식사를 중요시합니다. 혼자 식사를 하면 살이 찌지 않고, 맛이 없으며, 공동으로 식사를 하면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으며, 재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음식문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재료의 선택이 매우 자유롭고 광범위하다. 거의 모든 일반적인 식품을 재료로 이용한다.

 

2. 맛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다섯가지 맛(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쓴맛)을 복잡 미묘하게 배합하여 다양한 맛을 창출한다.

 

3. 시각적으로 외관이 풍요롭고 화려하다.

 

4. 익혀먹는 숙식을 기본으로 하며 조리법이 다양하다. 볶음, 튀김, 지짐, 직화구이, 삶음, 조림, 찜등 조리법이 매우 다양하다.

 

5. 향신료와 조미료의 향을 잘 활용한다.


 

중국의 식문화

음식을 대하는 중국인들의 기본적 심성은 ‘음식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고전 속의 한마디로 대신할 수 있다. 봉건시대 황제들이 ‘하늘이 자신에게 내린 으뜸가는 소명’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백성들을 굶기지 않는 일’이었다. 식생활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과 풍부한 식재료와 다양한 조리법, 향신료의 발달이 오늘날 중국요리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근원이다. 또한 다양한 기후대를 지닌 광활한 영토와 다민족국가인 중국의 사회적 배경은 중국의 음식문화에 다채로움을 더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 성업 중인 화교식당은 음식을 통해 중국문화를 전파하는 ‘식도락의 전당’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프랑스요리의 명성이 높다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음식문화에 관한 한 자신들이 단연 세계 최고의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음식과 관련한 중국인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또 다른 핵심어는 ‘음식은 곧 약이다’라는 말이다.

 

중국 고대의 의서를 살펴보면 음식으로 몸을 보하여 병을 예방하는 일을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중국의 음식문화는 이런 사고방식을 배경으로 중의학의 양생법과 어울려 다양한 약선요리, 보양식의 발전이라는 독특한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중국요리를 소개하는 많은 책자들이 갖가지 음식들이 인체에 미치는 중의학적 효과에 관한 언급을 빠트리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일상은 마치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보일 정도다. 인간생활의 기본조건인 의식주가 중국인들의 사고 속에서는 식의주일 정도로 식생활에 큰 비중을 둔다. 주위의 친지나 친구가 먼 길을 떠날 때면 너나없이 함께 자리해 송별연을 떠들썩하게 개최하고, 또 얼마가 지나 그가 돌아오면 그간의 외로움과 노고를 위로하며 환영연을 열어준다. 낯선 얼굴의 외국 손님이면 이 연회는 더욱 융숭하고, 식탁은 화려해질 것이다. 이런 일이 빈번해지다보면 지인들끼리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 식탁을 사이에 둔 채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동아리나 소집단 속에서의 이러한 모임과 활동은 하나의 사교이자 생활문화이기도 하다. 직장에서는 이런 저런 일로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회식에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뜻하는 ‘티엔판완’이란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인의 의식 속에 일터는 곧 먹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특히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특별한 명분이 없어도 직원들끼리 호화판 회식을 공공연하게 벌인다. 그래서 이런 시기가 되면 공금을 이용한 회식과 음주를 금한다는 경고문이 관가로부터 각급조직으로 하달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의 현대식 결혼식에는 별다른 혼례의식이 없다.

 

두 남녀가 동사무소에 가서 결혼 등기를 하는 것으로 공식적 결혼 절차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어떤 신혼부부도 생략할 수 없는 한 가지 절차가 있는데 바로 친지들을 모아 음식 접대를 하는 일이다. 이것이 중국식 결혼 예식에 해당하는데, 형편이 어려워 주연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사탕 한 개라도 돌려야 비로소 주위사람들로부터 부부가 되었음을 인정받을 수 있다. 어려운 청탁이 있을 경우 중국인들이 통상 취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일단 식사초대로 시작된다. 만일 상대가 그 식사 자리에 응한다면 이미 일의 절반은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인들의 인맥이라 할 수 있는 소위 ‘꽌시망’은 식사자리와 주연을 매개로 장기간 쌓은 교분을 바탕으로 한다.

 

중국 음식문화의 발전추세가 보여주는 시대적 트렌드는 ‘외식의 대중화’, ‘지역색의 균일화’, ‘콰이찬의 약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 외식산업의 성장은 비약적이다. 중국 전역에서의 매일 수천 개의 음식점이 새로 개업하고 또 그만한 숫자의 음식점이 문을 닫는다. 베이징 시내에서만 매일 200여 개의 음식점이 새로 간판을 내건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외식을 즐기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들의 입맛 또한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경제활동 인구와 비즈니스 접대의 증가도 한몫을 하고 있다. 춘절을 하루 앞둔 섣달그믐이 되면 서로 헤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자만두를 빚어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던 녠예판이나, 중추절 보름달을 보며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던 퇀위안판은 이제 화려한 장식의 고급식당 테이블에 둘러앉은 가족회식 풍경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외식은 이제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식의 대중화와 더불어 중국 음식문화에 나타난 또 하나의 추세는 각 지방 음식의 고유한 지역색이 차츰 옅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지역 간 문화의 교차와 인구의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음식문화에도 혼합과 퓨전이 추구되고 있다.

 

더구나 음식점들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지역색이 혼합된 다양하고 새로운 요리들을 개발해내고 있는 상황은 이런 추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 새로운 미각의 외국 음식문화가 유입되면서 퓨전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콰이찬의 부상은 대가족제도의 붕괴로 ‘나홀로’ 식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경제활동 인구의 증가에 따라 리듬이 빨라진 생활상의 변화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새롭고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 신세대 그룹의 성장은 콰이찬 문화를 급성장하게 만든 주된 원인이다. 콰이찬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맥도날드와 KFC에 의해 도입된 미국식 인스턴트 식품문화에 의해 처음 촉발되었다. 초기에는 이 미국식 콰이찬을 모방하거나 변형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비싼 로열티를 과하다고 여긴 중국인들이 햄버거나 닭튀김이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느냐며 ‘나도 한번’이라는 생각으로 창업의 부푼 꿈을 꾸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문을 연 짝퉁 콰이찬 식당들의 성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고 수명도 길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라는 반성을 한 후, 중국요리를 콰이찬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상륙한 대만식 콰이찬 문화가 하나의 자극적인 시사가 되었다. 그리하여 각 지방의 샤오츠를 콰이찬으로 변모시켜 서비스하는 식당 체인이 줄줄이 창업되었다. 그중 특히 상하이와 쓰촨의 샤오츠를 소재로 한 콰이찬 식당들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건강과 웰빙이 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각종 죽 전문점이 새로운 콰이찬 메뉴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중국 고유의 음식을 콰이찬화하려는 연구와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외식 산업에서 콰이찬이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높아지면서 미국, 일본을 위시한 해외 관련업체들이 속속 중국에 진출하고 있는 것도 오늘날 중국 외식산업의 풍경이다.

 

중국 음식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진기한 재료를 발굴해내고, 예술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현란한 조리기술을 구사함으로써 미각의 극치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맛의 차원을 높이기 위해 사람의 사고력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소진한 다음의 경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실수와 우연이다. 중화요리의 계보에는 이렇게 사고력의 한계를 초월한, 예측불가의 상황이 도리어 미식의 지평을 넓힌 경우가 수두룩하다.

 

중국요리에는 푸구이지 혹은 자오화지라는 닭요리가 있다. 자오화가 거지라는 뜻인데, 강남 사오싱 지방 걸인들이 닭을 훔쳐와 털을 뽑고 황토진흙을 발라 땅 속에 파묻어 숨겨두었다가 꺼내 구워먹었다는 일화가 있어 ‘거지닭’이라 표현되었다. 그러나 닭에 황토흙을 발라 구워먹는 조리법은 사람이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여러 일화가 전하지만, 이 숨겨둔 닭이 우연히 불로 익혀지고 그 냄새의 황홀함에 반해 비로소 그런 조리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푸구이지’라고도 불리는 것은 이 조리법의 발견자가 강남 시찰을 왔던 건륭제 일행이라는 일화가 있기 때문이며, 아울러 황제도 즐겼던 이 닭요리를 먹고 부귀를 얻고자 하는 소망의 뜻도 담고 있다.

 

 

 

 

맛의 최고 경지는 도리어 시장을 반찬으로 해서 먹는 정갈하고 소박한 음식일 수도 있다. 황제나 미인, 풍류 묵객과 같은 명인들의 일화가 붙은 유명요리들은 대개 그 주인공들이 환난을 당해 피난길에 오르거나, 유배를 떠나 궁색한 처지가 되었을 때 발견한 음식들이다. 일상생활 속에 산해진미와 주지육림을 질리도록 즐기던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백성들이 허기를 때우며 먹던 거친 음식을 맛보고는 도리어 그 소박한 맛에 반하고 만 것이다.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란 오랜 속담은 여기서도 증명되는 셈이다. 오늘날 샨시를 상징하는 음식이자 시안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겨 먹는 양러우파오머는 송을 건국한 조광윤이 즉위하기 전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딱딱해서 먹기 힘들어진 밀가루 빵을 우연히 양고기 국물에 뜯어 넣어 불려먹었던 일에서 비롯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중국 근대사 최고의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청조 강희제는 강남 시찰길에 시종들이 먹거리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가운데 시장을 반찬으로 우연히 민가의 누룽지탕을 맛보고 천하제일의 음식이라고 칭찬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유라시아 대륙을 유린했던 칭기스칸의 몽고군이 전쟁터에서 별다른 양식거리가 없어 급한 김에 양고기를 얇게 썰어 뜨거운 물에 데쳐먹어 군사들의 배를 불렸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이것은 몽고군의 야전 비상 식량이 되었고, 오늘날 훠궈 혹은 샤브샤브 요리로 발전했다.

 

시대와 왕조가 부침을 거듭하는 유구한 세월을 통해 새로운 맛과 조리법을 창안하고 발견해낸 주된 공로는 저자거리에 허다하게 널린 작은 음식점과 그 단골손님들에게 돌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간판이나 메뉴판도 없이, 그저 몇 개의 탁자를 놓고 작은 장사를 하는, 주인이 종업원을 겸하는 그런 작은 식당들 말이다. 오랜 교분을 통해 주인과 서로 인정이 통하는 손님은 음식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제안을 스스럼없이 쏟아놓고, 여기에 주인은 자신의 성의를 다해 호응한다. 이런 흔쾌한 교류 속에 진행되는 일종의 ‘조리법 실험’이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를 창출해내게 되고, 그런 과정은 크게 성공한 라오쯔하오의 창업 일화가 되기도 했다.

 

음식문화 발전의 밑거름이 된 이러한 실험과정은 각 가정의 주방에서도 진행된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요리들은 대부분이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십 년의 연륜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기원이 알려진 요리의 상당수는 중국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우연히 만들어졌으나 차츰 조리법이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어 유명요리가 된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중국인들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메뉴의 요리들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각 가정에서 은밀하게 대대손손 만들어 즐기는 쓰자차이, 쓰팡차이가 세월이 지나 언젠가 세계적 중화요리의 반열에 오르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1930년대 경성 베이징에서 쓰자차이로 이름을 날렸던 ‘탄자차이’는 청나라 말기 관직을 지낸 담종준 집안의 가정요리가 발전한 것이다. 음식에 대해 나름 조예가 깊은 미식가였던 그는 원래 광둥사람이었다.

 

지방관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지역 유명 요리사를 초빙해 자주 연회를 열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 집안의 주방에는 자연스럽게 전국 각지의 음식문화가 흡수될 수 있었다. 여기에 주방 일에 솜씨와 수완이 뛰어났던 담종준의 둘째 부인이 있어 탄가의 주방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당시 이 집 음식은 아무나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주인의 친구이거나, 친구의 소개로 초대받은 사람에 한정된 일이었다. 그 후 이 집안 음식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져나가, 누구나 이런저런 일을 핑계 삼아 이 집안 음식상의 12명 좌석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안달하게 되었다.

 

1950년대 말, 베이징 중심가의 베이징호텔에 탄자차이 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탄 씨 집안에 초대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던 사람들이 남은 평론은 원래의 풍미가 적잖이 훼손되었다는 것이었다. 상업화하면서 식재료의 선별이나 조리과정에 예전만큼의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측실이 손님들의 미각을 위해 노심초사하던 본래의 정성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오늘날 쓰촨 청두에 본점을 두고 중국 내 여러 대도시에서 상업중인 탄자차이 식당은, 이 업소의 사장이 출장 와서 베이징호텔의 탄자차이를 맛보고 반해 1999년 합작계약을 통해 청두에서 창업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광둥요리와 베이징요리를 주로 내놓은 이 식당은 특히 샥스핀요리와 전복요리가 일품인 것으로 소문나 있다.

 

한국인들이 단체관광을 가서는 좀처럼 들리기 힘든 베이징의 숨은 명소인 스차하이에는 ‘리자차이’라는 또 하나의 유명한 쓰자차이 식당이 있다. 그러나 이 식당에는 ‘양방 11호’라는 주소 팻말만 걸려있을 뿐 어디를 보아도 식당임을 알리는 간판이 없다. 자리는 미리 예약해야 하며, 이때 한 상에 얼마짜리로 해달라는 말 한마디로 요리주문이 끝난다. 나머지는 주인이 알아서 차려주는 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인의 위풍당당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이 집안의 선대는 만주 팔기 정백기 출신으로, 원래 궁궐의 주방인 어선방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궁중요리로 서태후의 입맛을 관리하던 그 손재주는 대대로 아들들에게만 전수되어 그저 집안사람들이 모이는 명절에나 잠시 발휘될 뿐 그것으로 돈벌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당대에 접어들어 집안의 큰딸이 주방 일을 몹시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부친이 기회를 주지 않자, 어깨너머로 몰래 몇 가지 요리를 배워 경연대회에 나가 우승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큰딸의 설득에 힘입어 마침내 이 집안의 쓰자차이가 세상에 공개되어 식당을 개업하기에 이른다. 손님들이 음식을 보고 오는 것이지 집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신이 살던 사합원을 그다지 손보지 않고 그대로 영업장소로 사용하였다. ‘양방 11호’는 다녀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점점 소문이 나, 날이 갈수록 유명 인사들이 운집하는 명소로 둔갑하게 되었다. 중국 주재 각국 대사들이 줄줄이 다녀간 후, 그 부인들을 대동하고 다시 찾아오고, 또 다시 몇 개국 국가원수와 유명배우, 문인들이 다녀갔다. 현재 리자차이는 베이징, 상하이, 동경, 시드니 등 네 곳에 분점을 두고 있다. 모두 이 집안 자녀들이 관리하고 있다.

 

사전에 주식은 ‘식단 구성상 포만감을 느끼기 위해 주로 먹는 음식’이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 주식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부식이나 반찬의 존재를 수반한다. 인간이 식생활에서 무엇을 주식으로 삼느냐 하는 점은 먹거리의 생산시스템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유사 이래 인간의 식생활과 주식은 농경과 사회체제의 발전에 따라 부단히 변화해왔다. 또한 새로운 주식거리의 출현은 거꾸로 음식문화와 사회체제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기도 했다.

 

유목을 생활의 수단으로 살아가는 지역처럼 일부 예외적인 곳도 없지는 않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주식은 당연히 쌀, 밀, 조, 수수 등의 곡류를 함께 섭취하지 않으면 심각한 영양장애가 발생한다. 곡류를 주식으로 삼는 식생활의 역사는 농경이 시작된 이래 수천 년을 이어온 먹거리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봉건체제 아래 육류나 진귀한 식재료가 제왕과 귀족들이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던 시대에, 보통의 백성들은 곡류나 야채와 버무린 부식 등으로 배를 채우는데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중국인의 주식은 쌀과 밀을 위주로 한다. 밀은 비교적 건조한 북방지역에서 오랜 세월 경작되어온 농작물이다. 일반적인 곡류 음식이 대개 낱알 채로 조리되는 데 반해, 밀은 단단하지 못한 낱알의 속성 때문에 일찌감치 분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갖가지 가공과 조리법을 통해 화려하게 발전해온 분식문화는 중국의 음식문화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중요한 일부분이다. 도작과 수경이 가능한 남방의 주된 경작물인 쌀은 중국의 인구 증가에도 일정 부분 기여한 곡물이다.

 

밀에 비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큰 쌀은, 중화문명의 발상지인 중원지역의 한족이 강남으로 이주 • 정착하면서 대규모로 경작하면서 급격한 인구증가를 가능하게 한 작물이다. 이러한 쌀 경작에 힘입어 고대 중국의 인구는 수백만에서 수천만으로 불어날 수 있었다. 아울러 양자강 이남지역의 인구가 북방지역의 인구를 압도적으로 초월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인구가 수천만에서 수억대로 폭증한 배경에는 새로 출현한 식용작물의 기여가 있었다.

 

바로 명나라 때 유입되어 청 왕조 때 전국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고구마가 그것이다. 황무지에서도 경작이 가능한 고구마의 유입으로 농업 경작 면적이 대폭 늘어났고,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타 작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고구마 덕분에 오늘날 인구대국이 되는 기반을 다질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고구마 덕분에 오늘날 인구대국이 되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마는 당시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하는 기근에 충당할 구황작물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오늘날 주식의 지위가 매우 위태로워졌다. ‘주로 먹는 음식’이었던 주식이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생략되거나 부식의 지위로 전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라 농업생산, 수산양식의 증대로 곡류 이외의 다양한 식재료들이 대규모로 경작 • 생산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식문화의 세계적인 상호교류가 가능한 시대를 맞아, 다양한 먹거리들이 새로 출현하고, 서로 모방과 재창조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식탁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곡류 음식은 이제 주식이란 허울만 유지하고 있을 뿐 주식으로서의 지위를 다분히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건강과 다이어트가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로 부상하고 곡류 음식이 비만의 주된 원인으로 치부되자, 이제 주식은 화려한 부활을 꿈꾸기는커녕 도리어 경계할 대상으로까지 추락한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미식으로 배를 불리더라도 곡기가 없으면 허전한 것이 사실이다.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제대로 된 주식을 생략하고서는 식사가 완전해질 수 없다. 수천 년을 이어온 사람들의 식습관 속에는 나름의 과학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화려한 맛과 색상의 미식은 아닐지언정 음식문화를 논하면서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는 이유다.

 

 

메인 식재료

중국요리에 사용되는 재료는 광범위하면서도 재료 선택이 엄격하다. 상용되는 재료는 약 3천여종이고, 총 재료수는 1만종 이상이다. 재료선택 면에서도 주재료와 부재료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국은 예부터 건재료가 매우 발달하였다. 이것은 왕실이나 귀족층을 위해 해안지방에서 내륙지방까지 재료를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가지 건재료가 발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대표적인 고급 건재료는 다음과 같다.

 

1. 제비집 : 중국 남쪽 해안에 사는 금사연이라는 제비들은 해초나 작은 물고기를 물어다가 해안 절벽의 같은 장소에 여러 번 집을 짓는다. 해초만으로 맨처음에 지은 집을 관연이라고 하여 최고급 궁중진상품으로 쓰였다.

 

2. 상어지느러미 : 통지느러미는 고급품으로 찜이나 조림에 쓰이며, 하급품으로는 수프나 볶음등을 만든다. 지느러미의 흰살은 특별한 맛은 없지만, 특유의 향이 나고 씹히는 촉감이 독특하다.

 

3. 말린전복 : 일반적으로 조개류는 피로해진 신경을 회복시키는 작용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전복은 시신경의 피로에 뛰어난 효능을 발휘한다. 전복은 아르기닌(Arginine)이라는 아미노산이 타 식품에 비해 월등히 많이 함유되어 있어 자양강장에 좋고 햇볕에 말린 전복포는 옛날부터 일급 강장식품으로 알려져 왔다. 또 목이 타거나 가슴이 저며오는 증상을 가라앉히고 간장을 강하게 하는 작용이 있다.

 

4. 말린해삼 : 해삼은 일명 진하이수(金海鼠)라고도 불리는데 영양가가 높아 바다의 인삼이라고 평가된다. 빛깔이 검고 흠이 없고, 가시가고루 퍼진 것이 상품이다. 말린해삼은 담백한 맛을 내며 여러 가지 요리에 두루 사용된다. 5일정도 끓이는 것을 반복하며 물에 불려서 부드럽게 한 후 사용한다.

 

5. 죽순 : 대나무의 새순으로 중국음식에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로리가 적어 다이어트 식으로도 좋은 재료이다. 기력을 안정시켜 주고,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6가지 나쁜 기운의 하나인 체내의 풍을 제거해주어 담을 없애주므로 신경통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

 

6. 패주 : 조개의 관자를 말린 것으로 술, 파, 생강을 넣어서 삶거나 쩌서 사용하고, 스프나 탕의 맛을 내는데 많이 쓰인다. 날것은 요리의 주재료로 사용된다.

 

7. 죽생버섯 : 중국에서는 죽생버섯은 쯔슨이라고 불러 생것보다 건조품이 일반적이다. 건조품의 대개는 다색으로 변색되어 있으나 양질의 것은 별로 색이 들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스프에 쓰는 것이 많으나 새우나 게의 베낀 살을 레이스의 망토로 구레피누와 같이 싸는 방법으로 끓이는 고급 중국요리도 있다.

 

8. 송이버섯 : 버섯의 다당류에는 강한 항암 성분이 있는데, 송이버섯은 다른 버섯보다 항암 성분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B1, B2, D가 풍부한데, 특히 햇볕에 말린 송이버섯은 비타민D 덩어리라 할 수 있을 만큼 영양분이 많다. 비타민은 호르몬의 균형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키운다.

 

 

대표적인 음식

1. 오리구이(북경), 게요리(상해)

북경의 대표적인 요리로 티엔야라는 전문구이용 오리를 사용하여 과일나무장작으로 노르스름하게 구워낸 오리는 손님들 앞에서 요리사의 놀라운 칼솜씨로 껍질이 얇게 편으로 썰어진다. 이것을 얇고 둥근 밀가루 병(荷葉餠)에 올리고 대파 몇 쪽과 첨면장을 발라 돌돌 말아 먹는다. 비교적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해산물을 많이 이용하고 조미료로 간장과 설탕을 많이 쓰기 때문에 달고 진한 맛이 난다. 특히 9월말부터 1월중순에 맛 볼 수 있는 상해의 게 요리는 전세계 식도락가들이 최고로 뽑는 진미

 

2. 마파두부(사천) 탕수육(광동)

사천(四川)지역은 중국의 서부산악지대로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으므로 마늘, 파, 생강과 매운 고추 등의 향신료를 사용하는 요리가 발달하였고, 맵고 짜지만 느끼하지 않은 특징이 있습니다. 마파두부, 삼선누룽지탕, 삼겹살채소볶음 등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먹는 것은 광동 에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동 지역은 옛날부터 요리가 발달한 곳이다. 특히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함에 따라 전통 요리의 특성과 국제적인 요리의 특성이 조화를 이뤄 독특하게 발달하여 대중요리의 대표가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탕수육과 팔보채도 광동요리이며, 중국음식의 보석이라 불리우는 딤섬도 광동요리이다.

 

 

식기류

중국에서는 옛날에 현재 한국에서 제기(祭器)로 쓰고 있는 것을 일상생활의 식기로 사용한 것 같다. 중국의 식기를 재료별로 보면 변(:대제기) ·두(豆:나무그릇) ·정(鼎:쇠솥) ·단(簞:도시락 ·소쿠리) ·표(瓢:표주박) ·형(:질그릇) ·안(案:목기) 등이 있다. 조리기구로는 부(釜:가마) ·증(甑:시루) ·격(:오지병) 등이 있으며, 용기로는 저(箸:젓가락) ·비(匕:숟가락) ·작(勺:잔 ·구기) ·협(:羹에 菜가 들었을 때 사용하는 숟가락의 일종) 등이 있다. 

 

주대(周代)에는 거의 손으로 음식을 먹었으며, 한대(漢代)로 내려와서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었다. 주배(酒盃)와 주기(酒器)로 옛날에는 굉 ·상·치라고 하는 술잔이 있었는데 이것은 모두 짐승의 뿔로 만든 것이다. 술단지를 주준(酒樽)이라고 했고 치이(夷)라는 것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로 여행을 다닐 때 술을 넣어 말에 매달고 다녔다고 한다.

 

 

테이블 세팅

1. 중국음식은 한 식탁에 둘러앉아서 큰 접시에 나온 음식을 여러 사람이 나눠먹는 방식이다.

 

2. 중앙에 덜어먹을 앞접시를 놓은다음 왼쪾에 국물을 담기에 알맞은 그릇을 놓고 오른쪽에 젓가락과 사기스푼을 놓는다. 컵은 왼쪽 안쪽에 놓는다.

 

3. 중국식탁에서 스푼은 탕을 먹을때만 사용하고 다른 음식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밥이나 국수는 젓가락을 사용한다. 밥이나 탕이 담긴 그릇은 손에 들고 입 가까이 대고 먹는다.

 

 

 

 

 



출처: https://chemup.tistory.com/442 [소박한 실험 노트 - 종합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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