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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결혼은 왜 미친 짓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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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희 기자

 

입력 : 

2018-03-26 17:11:57

수정 : 

2018-03-26 19: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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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발표된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이만교 지음)는 도발적인 제목과 내용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주인공은 결혼에 있어 경제적 조건을 중시하는 여자와 시간 강사라는 처지 때문에 결혼을 회피하는 남자. 여자는 돈 많은 의사와 결혼한 후에도 남자를 수시로 찾아와 만남을 지속해나간다. 물질적인 거래가 된 결혼, 사랑과 욕망과 결혼이 따로 노는 세태를 꼬집은 이 작품은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다. 결혼이 당연한 인생 수순이었고, '고운 임과 함께라면 비가 새는 집에서 새우잠을 잘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 존재하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근 20년. 사랑과 결혼 방정식은 극도로 복잡해졌다. 결혼과 돈의 상관관계도 더 깊어졌다. 아직도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는 이들이 많지만 경제적 능력, 집, 직장, 출산, 육아, 교육 등 다양한 변수들이 끼어들면서 "사랑하니까 결혼하지 않는다" 쪽으로 결론이 나기도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혼기가 차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규범적 가치관은 급속히 해체 중이다. 무엇보다도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자신을 담지 않겠다는 '비혼(非婚)'의 증가는 급격한 사회 변화다. 젊은 층은 이제 기혼·미혼 패러다임 대신 "당신은 비혼주의냐, 필혼주의냐"고 묻는다. 

 

미혼(未婚)이 '혼인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라면 비혼은 '혼인할 의지가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비혼족의 확산은 결혼이 미친 짓이라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대거 늘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혼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자발적이기도 하고 비자발적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만나기 힘들어서, 직장이 변변치 않아서, 집 구할 돈이 없어서, 가사노동·독박육아를 견딜 자신이 없어서 등이다. 특히 남성들은 결혼비용과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여성들은 결혼생활을 관통하고 있는 가부장적 관습 때문인 경우가 많다. 

비혼주의자라고 밝힌 한 여성은 포털 카페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제가 돈 벌어서 원하는 취미생활 즐기고, 원하는 음식 먹고 가족·친구들이랑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결혼하면 이 모든 게 깨져버릴 것 같아요. 한 걸음 물러서서 내 인생을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감당이 안돼요." 또 다른 여성은 "애 낳기도 무섭고, 한국 남자 못 믿겠어요. 저 때문도 아니고 타인 때문에 머리털 솟구치게 스트레스 받기는 싫어요"라고 썼다. "남편만 가지고 싶은데 시부모님들도 따라오는 게 결혼이에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라는 글도 눈에 띄었다.

 

자아실현 욕구가 강해진 여성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불합리한 제도와 청년실업, 주거불안 등 경제문제가 청춘들을 비혼으로 떠밀고 있는 것이다. 3포세대·5포세대의 '포기' 항목에 결혼이 들어간 것도 이미 오래됐다. 

비혼 풍조로 지난해 혼인 건수는 26만4500건으로 6년 연속 하락한 데다 1974년 이후 4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미 2016년 기준 한국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1인 가구(27.9%)라는 점에서 이상할 것도 없는 통계다. 문제는 혼인율 추락이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며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점이다. 혼인, 출산을 통해 국가의 존립 기반인 인적 자원을 확보해온 정부에 비혼은 사회 근간을 흔드는 요란한 경고음인 셈이다. 

 

정부는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저출산 대책을 얘기하지만 파격적인 당근 없이 국가를 위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젊은이들은 별로 없어 보인다. 행정자치부가 2016년 12월 출산율 제고를 위해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표시한 전국 출산지도를 만들었다가 "여성을 애 낳는 기계 취급하느냐"는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았던가. 

결혼을 하는 것이 결혼하지 않는 삶보다 행복하다면, 아이를 낳는 것이 낳지 않는 삶보다 즐겁다면 왜 젊은이들이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하겠는가. 특히 여성의 경우 출산, 육아, 가사노동, 경력단절 등 결혼 후 맞닥뜨릴 갈등 구조가 훤히 보이는데 굳이 결혼을 선택하려고 하겠는가. 

시인 문정희는 '결혼기차'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오, 결혼은 중요해/그러나 인생이 더 중요해/결혼이 인생을 흔든다면/나는 결혼을 버리겠어'라고. 인생을 흔들지 않을, 삶의 질을 끌어내리지 않을 마법 같은 대책 없이는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청춘들의 생각은 쉬 바뀌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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