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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 올드(Angry Old)' 되지 않으려면 귀를 기울여라

Winnipeg101 LV 10 22-11-19 220

2019-10-17

 

 

“나도 내가 무서워요.”

 

은퇴한 지 2년 되었다는 P 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별것도 아닌 작은 일에 섭섭해지고, 감정이 격해지면서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자기 모습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밖에서는 그래도 잘 참는 편인 데, 집에서는 분노 조절이 더 안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엊그제도 외출했다가 저녁 8시쯤에 집에 왔는데 아무도 나와 보지 않는 거예요. 아내는 TV 드라마에 빠져 있고, 애들은 방에 틀어박혀 있고. 일부러 냉장고도 열어보며 왔다 갔다 해도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기에, 갑자기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화가 치밀면서 ‘내가 투명인간이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그 정도로 끝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물컵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셨군요. 식구들이 놀랐겠어요.”

 

나의 말에 대해 P 씨가 쑥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뭐, 한바탕 난리가 났죠. 놀란 식구들이 달려오고, 부랴부랴 깨진 컵 조각을 치우고, 아내와 딸은 처음에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중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비록 식구를 향해 던진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컵까지 던지면서 감정을 폭발시킨 저도 마음이 불편했죠. 창피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자괴감도 들고….”

 

‘최근 들어 부쩍 더 화가 나는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P 씨는 이렇게 답했다.

 

“현역일 때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회사에서는 부장으로, 내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그들에게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을 곱씹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까? 이런 의문도 들고요. 집에서도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 같고, 내가 뻔히 곁에 있는데도 자기들끼리만 속닥거리는 걸 보면 내가 가족들한테 꼭 필요한 존재인지 의문도 들어요.”

 


 

 

‘앵그리 올드(Angry Old)’가 늘고 있다. 내가 만난 은퇴자들도 별것 아닌 일에 자꾸 예민해지고 화가 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요즘 세상에 나이 든 사람들만 화내는 것도 아니다. 모든 연령층이 화를 잘 내고, ‘분노 범죄’도 늘고 있다. 언젠가 스쳐가는 자동차 뒷유리에 부착돼 있던 ‘나도 내가 무서워요’라는 글귀가 생각날 때가 많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화내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말이다(말하는 순간 나도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노의 원인이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틱낫한 스님이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우는 아기와 같다”면서 분노의 원인을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으라고 충고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분노의 원인을 찾아라

우리는 분노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없을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때, 자신을 온전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화가 난다. 이런 점에서 분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가를 알려주는 지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분노를 없애려는 노력도 중요 하지만, 분노의 감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인 영성지도자이자 심리치료 사인 토머스 무어는 <나이 공부>라는 책에서 “분노는 자신의 힘을 억제하고 소망, 욕망, 계획을 좌절시키는 데서 비롯된다. 분노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에서 말한 P 씨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 결과, 최근에 느끼는 분노가 ‘자기 존재감’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는 큰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욕구와 현실 간의 괴리감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소통할 길이 없어서 엉뚱한 순간에 가족에게 화를 폭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지적대로 사람들은 자기 존재가 소멸된다는 느낌이 들 때 폭력을 쓰는 경향이 나타난다. 폭력이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적 존재가 되는 순간, 상대의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자기의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걸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P 씨가 직접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라도 존재감에 대한 회의가 과도한 분노나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분노를 다루는 방법

자, 그렇다면 이 골칫거리인 분노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전문가들은 감정을 터뜨리고 분풀이를 하는 것이 분노를 다루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분노는 화병이 될 정도로 참아선 안 되지만 과하게 쏟아내도 해가 된다. 지나친 자기 연민이나 남을 탓하는 말, 폭언도 마찬가지다. 의도와는 달리 화는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우울감만 커질 뿐이다.

 

그렇다면 분노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신 안에 분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러니 ‘아,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라며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게 좋다. 이것만 해도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터뜨리고 마는 위험은 피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분노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토머스 무어도 여러 번에 걸쳐 충분히 감정을 실어서 이야기한다면 아무리 큰 분노도 가라앉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나를 화나게 한 상대를 향한 이야기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 나를 화나게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때 나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한 소통 능력이 필요해지는데, ‘나 전달법(I-message)’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P 씨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저녁에 집에 들어왔는데 식구들이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을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상대방의 행동) 내가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느껴지고(내게 미치는 구체적 영향) 섭섭하고 쓸쓸한 감정이 들어(내가 느끼는 감정).”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내가 화가 났나?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나? 걱정스러운가? 우울한가? 이렇게 자문하고 답해봐야 한다. 그리고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싫어도 좋은 척, 대범한 척, 섭섭하지 않은 척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그 무엇이다. 내 안에 숨어 있거나 묻혀 있는 창조성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러니 분노가 내게 보내는 메시지를 잘 해석하고 잘 사용할 수만 있다면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은퇴한 후에, 혹은 나이 들면서 자꾸 화가 나는가? 존재감이 낮아지는 것 같아서 화를 참을 수 없는가?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시라. 유머 감각으로 분위기를 띄우거나 눈에잘 띄는 자리에 앉는 식의 전략도 활용해보자.

 

분노의 힘을 건강하게 사용해보시라. ‘분노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해보라. 긍정적인 질문을 통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라. 분노를 통해 새로운 생명력과 개인적인 힘을 얻도록 하라. 자신도 발전하고 상대방과도 사이가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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