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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 증상 – 눈치 보고 알아서 기기

Winnipeg101 LV 10 22-11-21 255

한 초등학교 학급. 특정 구역 청소를 맡은 네 명의 아이들이 함께 청소를 하는데 그 중 유독 한 명인 A가 다른 아이들에게 잔소리, 지적, 지시를 한다. 본인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선생님처럼 진두지휘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참다 못한 B가 반발한다.

 

“누가 너보고 리더하랬어? 명령하지 마.”

 

아닌게아니라 지시를 일삼는 A는 학급 임원도, 청소부장도 아니며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반 구성원 중 하나이다. A는 마땅한 반발에 씩씩거리다가 사라지더니 이내 다른 학급 친구인 C를 달고 왔다. C는 작심한 듯 A를 대변해 다른 아이들을 몰아부치기 시작했다.

 

“왜 말을 안 들어? 여기에서는 엄연히 A가 책임자인거 몰라?”

“왜 걔가 책임자인데?”

“너 지금 싸우고 싶어서 일부러 개기니? 당연한 걸왜 따져?”

“아 글쎄 왜 A가 책임자냐니까?!”

 

큰소리가 나자 다른 아이들이 웅성웅성 몰려들어 자초지종을 파악하려 했다. D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C는 자신있게 외친다.

 

“얘네가 말도 안 되게 짜증내고 따지고 들잖아! 여기에서는 A가 엄연히 책임자잖아. 안 그러니?”

 

그러자 D가 어이없다는 듯 B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왜 A가 책임자인데?”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서 같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맞아, A가 책임자일 이유가 없는데? 걔 반장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잖아. 선생님이 뭘 시킨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할 말이 없어진 A와 C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불만에 가득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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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공식 직함도 없이 자신이 책임자라고 주장한 A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C.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위의 상황은 실제 일어났던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며, 성인 사회에서도 많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어떤 상황이냐고?

 

바로 정신력이 약한 사람의 특정인에 대한 근거없는 숭배와 복종 현상이다. 위의 상황은 그나마 A라는 아이가 카리스마나 조종 능력 면에서 뛰어나지 못해 다른 아이들을 포섭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이 금방 제압되었지만, 그런 만큼 C의 A에 대한 숭배가 얼마나 어이없는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A가 엄연한 책임자’라고 주장하며 다른 아이들에게도 그 주장이 먹힐 것이라고 혼자 착각하는 C의 세계관과 다른 학급 아이들의 세계관 사이에는 이미 엄청난 간극이 벌어져 있다. A는 신도가1명인 사이비 교주와도 같은 위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상황에서 A의 추종자가 1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면 다른 조건이 모두 같았다 해도 상황은 쉽게 제압되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느냐고? A가 책임자일 이유가 없는데 왜 추종자가 여러 명이 생기겠느냐고? A가 책임자일 공식적인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미 C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C는 기꺼이 A의 편에 섰다. 이것은 정당한 근거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정서적 영향력과 지배력의 문제이다. C는 모종의 이유로 눈에 보이는 공식적/합리적 근거보다 더 중요한 자격 조건이 A에게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흙멘탈 증상 중 하나가 바로 정당한 근거 없이 정신적 지배력이 강한 사람이나 대세적 분위기에 자동 반사에 가까운 굴종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본인이 속한 집단의 분위기를 파악하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데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고, 강자의 의견이나 대세적 분위기가 파악되었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무조건 거기에 맞춘다. 특히나 기성세대 중에는 이러한 방식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 생활에서 어느 정도 타인을 파악하고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눈치 보는 정도가 심해지면 자기만의 주체성이나 가치관이 사라져버리는데다, 눈치를 보는 대상이 세상의 상식과 거리가 먼 인물일 경우에는 마치 사이비 종교 신도가 된 것처럼 본인도 세상의 상식과 거리가 멀어져버린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위의 이야기에서 C의 경우, A보다 심약한 인물이며 아마도 단 둘이 있을 때 A로부터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른 아이들에 대한 심한 비하와 욕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A 앞에서 비하당하고 욕 먹는 것이 무섭고, A에게 좋은 말을 듣고 싶어 지나치게 눈치를 보다가 굴종이 체화되고 객관성을 잃은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C는 A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A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성인 중에서도 멘탈이 심약한 사람들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기에 눌려 상대가 누구든 나쁜 말을 듣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당장 내 앞에 놓인 상대방에게 잘보이려 하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에는 단순한 취향 차이조차도 드러내지 못한다. 대화가 오로지 의견일치와 공감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언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 앞에 놓인 상대방이 이 세상의 절대적 기준이 아닌데도 뭐든 맞춰주다가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묵살하고 외부 세상의 기준에서도 멀어지는 것이다. 특정인의 눈치를 보다가 오히려 더 큰 세상의 대세와 분위기 파악에 실패하게 되는 어리석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인들은 사회 생활의 기본을 ‘분위기 파악해 알아서 기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분위기'는 공식적인 규범이나 합리적 기준이 아닌, 무언가 떳떳한 근거가 없어 음성적으로만 통하는 불문율을 뜻한다. 위의 초등생들 일화에서 근거도 없이A를 지지했던 C처럼, 한국인들은 세상살이에 공식적/합리적 규칙 말고 더 중요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순응적인 태도 뒤에 사적 욕심을 숨기고 있는 한국인 특유의 수동공격적 태도, 명확하지 못한 커뮤니케이션 방식,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무언가 남모르는 특별한 게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적/피해의식적 세계관이 모두 이런 지레 짐작에 불을 지핀다.

 

이상적으로 가정했을 때 만약 특정 집단의 분위기가 매우 합리적이라 그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규칙정도로 족하고 각자의 영역이 존중된다면 굳이 특정 집단에만 해당되는 특유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정신을 가졌다는 전제 하에 시민적 상식이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이상적 집단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 생활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굴종적으로 하는 데 익숙한 한국인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된 음모론적 세계를 더 믿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과잉 적응 현상이다. 때문에 상식식/합리성 관철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해당 집단의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부분을 파악하고 그 부분에 자신을 동기화시키려는 태도가 앞선다. 어떤 환경에서든 ‘여기는 실세가 누굴까’, ‘누구한테 개인적으로 잘 보이려면 어떤 대접을 해야 할까’, '이 집단에서는 무슨 옷차림을 해야 욕을 안 먹을까', ‘이 집단에서는 회식 때 막내가 상사에게 폭탄주를 알아서 말아드려야 하는 분위기일까 아닐까’와 같은 생각이 우선되는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결과적으로 해당 집단의 비합리성에 본인이 의존하게 될 뿐 아니라이를 증폭시키는 주체가 되어버린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집단을 오히려 더 견디지 못하는 체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암묵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치 보는 태도가 영리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눈치 보기가 우선적인 기본 속성으로 장착되면 도리어 판단력이 떨어져 소위 ‘라인’을 잘못 타거나 이상한 일에 연루되어 고초를 당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열심히 특정인 눈치를 봤는데 알고보니 그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다거나, 죽어라 분위기 맞췄더니 갑자기 조직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다들 신나게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다거나 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분위기 파악에 심혈을 기울이는 약아빠진 태도가 오히려 덫이 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자신을 외부와 자동으로 동기화시키는 것은 주체성 미약과 심약함의 증거이며, 이런 정신 상태로는 상황판단력이 떨어져 전체 판세를 못 읽는 경우가 속출한다. 한 치 앞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소위 ‘눈치 더럽게 보는데 눈치 더럽게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의 착각과 달리 지나치게 눈치보는 사람은 자기 의견을 고집하는 사람보다 더 심한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며, 필요할때만 호구로 이용당하다가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고 팽당하게 된다.

 

특정인의 비위나 대세적 분위기에 맞게 ‘알아서 기는’ 행위는 독립적 인간으로서의 의결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철학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런 취급을 받게 되어 있다. 정말 본인이 잘못해서 사과를 해야 되는 것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그저 상대가 화를 내니까 혼비백산해 반사적으로 넙죽 엎드려 싹싹 빈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음담패설을 대놓고 해대니까 안좋은 행동인 걸 알면서 ‘나도 괜찮을 줄 알고’ 분위기 맞춘답시고 동참하거나 하는 식으로타인에게 지나치게 반응적인 자동 인형이 되는 사람들은 사회에 매우 흔하다. 만약 본인에게 그러한 면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무턱대고 상황에 동조하기에 앞서 모든 것을 자기만의 사고로 걸러내는 연습을 반드시 해야 한다.

 

본인의 생각이 언제나 옳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본인만의 사고 패턴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본인이 언제나 옳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진정한 자가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억울할 일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남이 하는대로 따라만 하며 살다보면 좋은 결과는 진정한 내 것이 되지 못하고, 나쁜 결과는 남 때문에 억울하게 뒤집어쓴 기분에 시달리게 된다.

 

판단력에도 연습이 필요하며, 자꾸 스스로 판단해보지 않으면 판단력은 점점 더 퇴화한다. 자신의 판단을 위임해버리는 습관은 현대인의 사회적 생존 능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위험한 습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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