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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무결한 피해자가 되어 게임을 이기겠다는 환상

Winnipeg101 LV 10 22-11-21 238

많은 한국인들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죽자사자 환경(또는 상대방)에 적응하려 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페르소나와 자신의 진짜 내면 사이의 간극이 심각할 정도로 커지는 경우가 많다. 가식적 페르소나와 진짜 내면의 차이는 어느 사회에나 있기 마련이지만, 여기에 온갖 영역에서 '단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하는 성향이 더해져 다른 나라였다면 굳이 가면을 쓸 필요가 없는 영역에서까지 가면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음식이나 영화에 대한 호오까지도 주류 감성에 속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궁예질을 동원한 재단과 평가를 당하고 뒷담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부분에서도 페르소나를 동원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우영우 싫어하는 거 보니 국짐 지지자겠네' 라든가 '채식하는 거 보니 개딸인가' 따위의 정신병적 망상이 자칭 '정상인'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이유가 없는 한, 주류 의견(또는 '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지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이유가 없는 한 굳이 의견/취향 합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한국인들은 사회에서 허용되는 개인의 영역이 매우 좁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회의 규칙을 파악해 순종하고, 분위기와 눈치를 봐서 알아서 기고, 웬만한 개인적 의견 표현은 삼가고, 개인적 요구 사항을 억제하고, 웬만한 결정은 수동적으로 대세를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새로운 환경을 접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기준과 가치관을 처음부터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상대방과의 차이가 드러나는 즉시 오만하다거나 사회성 없다고 욕 먹을까봐 자기 표현은 최대한 자제하고 외부 상황을 파악해 자신을 맞추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심지어 명백히 잘못된 환경 조건도 정말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니 심지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꾹꾹 눌러참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개인의 디폴트 도리이며 심지어 도덕적 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환경 적응의 강박과 고통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을 수밖에 없다. 차이를 드러내는 것 자체를 민폐나 반사회성으로 인식하는 한국 문화 속에서, 자신의 다름을 담백하게 드러내고 당당히 공존을 제안하는 전략을 택하는 이는 소수이다.

그렇다고 마냥 자신을 억누르기만 하기에는 너무 억울한 법. 그래서 다수의 한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억누르는 대신, 숭고하고 무결한 피해자가 되어 까방권과 명분이라는 카드를 획득해 게임에서 최종적 승자가 되겠다는 전략을 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방이나 환경에 맞춰주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절대 공격적으로 싸우거나 불복종하지 않고, 조직이나 환경에서 큰 소리 내지 않고, 불편러처럼 따지지도 않고, 건방지게 내 주장 하지도 않고 불쌍하게 끝까지 묵묵히 당해주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흠 잡을 거 하나 없는 성자/성녀로 추대될 것이고, 사람들이 결국 나의 무결함을 인정하고 편을 들어주어 해피엔딩이 올 것이라는 식의 수동공격적 계산이다.

사실 이건 전략이라기보다는 그냥 정신승리이자 도피적 망상이다. 이 전략은 그 인기에 비해 실제적인 성공 가능성은 형편없이 낮다. 결국은 자기 스스로 원하는 바를 위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본인의 힘과 영향력을 스스로 박탈한 채 남들의 평판에 내 운명을 맡기는 짓이다. 남들은 내가 원하는대로 잘 움직여주지도 않을 뿐더러, 설사 움직여준다 한들 애초부터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거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배가 고프면 내가 음식을 씹어 삼켜야 하듯,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으면 스스로 자기 자리를 만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타인의 인정으로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굴함을 현명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이런 수동적인 인생 전략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도 못한다. 본인은 겸손해 보일 거라 계산하면서 하는 행동에서 속내가 보여 겸손하기보다 음흉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비굴함이 현명함으로 포장되고 수동적인 인정 욕구가 양심이나 도덕 관념으로 포장되는 문화이다 보니, 심지어는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거나 요구 사항을 말해서 문제를 해결해도 될 상황에서조차 과잉 순응 양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다. 딱히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도 억지로 자기의 의견을 숨기고, 동의하지도 않는데 동의하는 척 하고, 싫은 것도 참고 넘기는 것이다.

이는 인내심이 아니고 완전 무결한 피해자의 까방권을 얻기 위해 문제해결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행위이다. 때문에 이런 비굴한 전략을 택한 이들은 본인이 '참아 준' 모든 일들을 원한 거리를 수집하듯 내면에 새겨놓는다. 이렇게 수집한 원한 거리들을 세상이 자신에 대해 빚진 것, 또는 자신이 돌려받아야 할 복의 축적으로 인식한다. 막말로 몰래 속으로 칼을 갈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해 돌려받겠다는 속셈이다. 본인에게만 유의미한 '세상이 내게 진 빚'의 장부를 열심히 관리하면서 본인들 나름으로는 영악한 '여우짓'을 하고 있다는 자족적인 자부심까지 느낀다.

한국인들의 일명 '사이다' 중독 현상 역시 이런 심리와 직결된다. 현실 세계에 드라마틱한 '사이다'의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날 수 없다. 모든 일은 충분히 축적된 원인과 배경이 있어야 일어나기 때문이다. 언더독 취급을 받던 사람이 일거에 상황을 뒤집어버리는 순간을 꿈꾸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이해 가능한 심리이지만, 이 심리가 병리적인 수준으로 치달으면 그 다음 테크트리는 방구석 인셀 테러리스트밖에 없다. 나의 노력에 합당한 정당하고 공정한 결과를 바라고 추진하는 것을 넘어서, 순전히 정신적 자위를 위해 겉핥기식 가짜 사이다 내러티브를 급조하는 습성이 자리 잡기 때문이다. 

가짜 사이다 내러티브 급조에 골몰하는 이들은 충격의 순간을 위한 위치 격차를 기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함정을 파듯 대인관계를 맺는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처음 만난 사람과의 관계나 나쁜 경험이 없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일상적으로 '어디 네가 날 무시하기만 해 봐라' 라는 식으로 사람을 테스트하려 든다. 상대방을 빌런화하기 위해 실제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짓만 일부러 골라 하는 변태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상대에게서 명분이 잡혔다 싶으면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처럼 '네가 감히 날 무시해?! 난 이토록 겸손하고 희생적으로 살아왔는데!' 라며 뇌절 수준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주변인에게 같은 편이 되어달라고 마녀사냥을 유도하며 사이다 내러티브를 강제 구현하려 든다.

이런 자해적 바보들의 생각과 달리, 게임에서 이기거나 적어도 패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큰 승리의 순간을 위해 인위적으로 충돌을 기획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작은 갈등을 무서워하지 말고 자신의 존재감과 개별성을 분명히 해 큰 충돌을 방지하는 편이 낫다. 일상 속에서 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매일 이를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만만치 않고 어딘가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을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더 존중하게 되어 있으며, 일상적으로 자기 영역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선을 넘는 행동을 잘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의 후폭풍이 무섭기 때문이다. 무서우면 조심을 하게 되어 있고, 서로 조심하면 큰 충돌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무슨 언행을 해도 내 상태에 맞춰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존중감을 느끼기 힘들기 때문에 웬만한 자제력 없이는 함부로 하게 되고, 결국 사단이 날 수밖에 없다. 마음껏 남탓을 할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하겠다고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는 게 아니고 만만한 사냥감으로 찍혀 점점 더 끔찍한 일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갈등과 차이 표명을 견디지 못하는 관계는 겉으로 봤을 때는 둥근 관계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일방적 사냥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히 거절해도 되는 부탁을 괜히 들어주고, 단순히 손절해도 될 관계를 괜히 참고 유지하면 시간이 갈수록 내가 받을 보상이 커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내가 빼앗길 것만 늘어난다. 역전의 날을 꿈꾸며 구밀복검해봤자 인생은 스포츠도,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순간은 잘 오지 않는다. 장기간 고분고분 살다가 갑자기 관계를 억지로 역전하려다가는 도리어 주변인에게 '배신감'을 주고 조직의 '괘씸죄'에 걸려 본인이 위험해지기 일쑤이다. 

억울한 걸 쌓아두다가 나중에 출세(?)해서 한꺼번에 앙갚음하리라는 식의 인생관보다는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하루 하루를 내 모습대로 당당하게 살겠다는 인생관이 더 낫다. 철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더 낫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적으로도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작은 승리가 쌓여야 큰 승리가 되는 것이지, 비굴한 하루 하루가 쌓여 승리가 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한국인들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의견 합치가 되지 않는 상황을 불편해하지 말고 작은 문제에서부터 자신만의 관점을 스스로 견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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