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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자가 최고의 기득권자이다

Winnipeg101 LV 10 5일전 13

"그 사람은 어차피 안 변해."

"그 분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누군가를 위와 같은 말로 표현했을 때, 이는 그 자체로 딱히 칭찬은 아니다. 위와 같은 표현은 사실 어딘가 완벽하게 정당화할 수 없는 성향을 가졌거나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때 더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어찌 보면 비판의 의미가 강하게 내포된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그런 의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텍스트적 의미만 놓고 보면 그 사람이 일종의 구제불능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 사람'에게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표현 앞에서 딱히 반박을 하지 못하거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와 같은 표현은 실드치지 않는 척 하는 실드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런 의도로 하는 사람들이 많고, 만에 하나 딱히 실드 의도가 없는 경우라 해도 결과적으로는 실드의 효과를 낸다. 텍스트적으로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다고 해서 편들지 않는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고치려 하지 말고 건드리지 말라는 결론이다. 정당화가 불가능한 그 어떤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두라는 것만큼 어마어마한 실드가 또 있을까? 이는 해당 인물을 아예 초법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짓이다. 해당인을 어느 정도 구제불능이라 인정하는 것은 다만 실드를 위한 논증, 합리화, 가치관 논쟁의 부담을 피해가려는 꼼수일 뿐이다.

 

그 어떤 새로운 정보를 들이밀고 상황이 변화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호감 대상은 아니다. 주로 나이들수록 이런 성향이 심해지기 때문에 노인 중에서 이런 유형이 자주 보인다. 이런 '완고한 부모님', '완고한 어르신' 캐릭터를 두고 어차피 어른들은 안 바뀌니까 싸우지 말라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의 모든 완고한 사람들을 계몽시켜보겠다는 목표를 두고 소모적으로 싸우는 것은 물론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다. 그러나 '싸우지 말라'는 결론을 내가 숙이고, 포기하고, 적응하거나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실행하면 이는 싸우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결론이 되고 만다. 결국 내 생각, 내 인생을 포기하고 구제불능한테 멱살 잡혀서 끌려가겠다는 말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며 완고해보이는 이들은 사실 내면의 불안감이 누구보다 크기 때문에 어이없게 나약해지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비굴해지기도 한다. 내 앞에서 지금 큰소리 친다고 이런 이들을 성급하게 '불변의 존재'로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또한 싸움을 멈추더라도 이는 그 구제불능을 포기한다는 의미여야지, 나 자신을 포기한다는 의미여서는 안 된다.

 

변화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최고의 기득권이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결과적으로 모종의 권력을 상징하며, 모든 권력의 속성이기도 하다. 상대를 변화할 수 없는 상수로 놓고 나 자신은 거기에 맞게 변화와 적응을 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인생의 주권을 빼앗기는 길이다. 입으로만 아무리 '구제불능'이라 욕해도 소용없다. 구제불능 인간을 상수로 설정하는 순간 이미 세상의 중심은 변화할 수 없는 그 구제불능이 되고 나는 중력장에 갇힌 위성처럼 그 주변을 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제불능을 왕처럼 모시고 사는 꼴이다. 변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권한이 점점 커지고 내 영역은 점점 더 좁아져 내 몸 하나 가눌 공간도 없어진다면, 본인 몸뚱아리를 잘라내야 하는 극한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상대는 건드릴 수 없는 불변의 존재라는 답이 이미 나와있는데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희생이 누구 몫인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러니 누구에게도 함부로 구제불능이 될 권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성적이고 말귀 알아먹는 내가 참고 말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식의 말을 핑계로 손쉽게 정신승리를 해서도 안 된다. 주변인들이 감언이설처럼 내뱉는 '똑똑한 네가 참아라', '많이 배운 네가 이해해', '잘난 네가 관용을 베풀어야지' 등의 말들에 넘어가는 것도 안 될 말이다. 이런 말은 십중팔구 거짓말이다. 비전문가의 횡설수설을 반박하는 전문가에게 '많이 배운 당신이 이해하고 양보하라'고 주문하는 미친 사람은 없다. 그네들이 자신들의 말대로 정말 당신의 합리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있다면 감히 구제불능의 기준대로 굽히고 적응하라는 주문 따위는 꺼내지 못해야 정상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그냥 당신이 만만하고 약한 고리라고 생각해서 집중공략하는 것 뿐이다.

 

상대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내가 거꾸로 숙이고 들어가 적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둘은 아무 상관이 없다. 구제불능에게는 통하든 말든 구제불능이라고 명확하게 딱지를 붙일 수 있어야 하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어떤 경우에도 내가 내 가치관과 자원을 희생해 상대에게 적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내게 불합리성을 강요하는 자는 회초리질을 해서 내 인생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변화하고 말고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평생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남의 사이드킥 노릇만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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