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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과연 파괴의 과학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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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과연 파괴의 과학일까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세상을 바꾼 발명품] 전쟁이 탄생시킨 생활 속 발명품들

2015.06.08 08:20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전쟁이 일어나면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문명이 파괴된다는 의미에서 혹자는 ‘전쟁은 파괴의 과학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 때문에 발명된 일상용품도 많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전쟁 때 발전한다는 말도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낳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세계 각국의 치열한 과학기술 경쟁 덕분에 수많은 발명품들이 탄생했다. 이제 우리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컴퓨터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널리 알려진 것은 194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만든 에니악(ENIAC)이다. 무게가 무려 30톤이나 나가는 이 거대한 컴퓨터는 미 육군이 복잡한 탄도 계산을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진짜 세계 최초의 컴퓨터는 그보다 3년 전인 1943년 12월 영국에서 만들어진 ‘콜로서스(Colossus)’이다.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탄생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탄생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 ⓒ 위키피디아 Public Domain

 

콜로서스는 군 작전에서의 암호 해독이라는 비밀스런 임무 때문에 세계 최초란 영예를 자신보다 훨씬 늦게 태어난 에니악에게 양보했던 것. 이런 사실은 1975년 영국 정부가 기밀을 해제함으로써 밝혀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장치를 이용해 비밀문서를 전송하고 군대에 작전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 영국은 비밀리에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해 달라고 수학 천재로 알려진 앨런 튜링에게 부탁했다. 앨런 튜링은 연구 끝에 1940년 에니그마의 암호화 과정을 역추적할 수 있는 ‘봄베’라는 암호해독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봄베는 자료를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앞서 작업한 그 어떤 정보도 재창조하거나 재사용할 수 없었다. 튜링은 가능한 모든 결합의 경우를 기계에 저장했다가 도청한 에니그마 메시지와 비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봄베를 개선시켜 새 암호해독기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인 콜로서스였다. 콜로서스는 오늘날 컴퓨터가 갖고 있는 모든 기능을 갖고 있었다.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콜로서스를 이용해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당시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U보트를 격파할 수 있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사실도 알아냈다.

 

당시 연합군이 계획하고 있던 유럽 상륙작전의 주요 목표를 독일군은 노르망디가 아니라 ‘칼레’로 예상한다는 걸 밝혀낸 것. 덕분에 연합군은 계획대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고,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독일군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원액 공급 끊겨 콜라 대신 만들어진 환타

세계 5대 탄산음료 중의 하나인 환타도 제2차 세계대전 덕분에 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첫해인 1939년 독일에서는 무려 450만병이나 팔릴 만큼 코카콜라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 이후 미국과의 교역이 끊기면서 독일은 더 이상 미국으로부터 코카콜라의 원액을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

 

코카콜라의 독일 지사장이던 막스 카니트는 급하게 콜라를 대체할 수 있는 음료 개발을 연구진에게 지시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음료가 바로 환타이다. 전쟁 속에서 코카콜라의 대용품으로 탄생한 환타는 현재 110여 가지의 다양한 맛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부엌에서 식은 밥을 데우거나 냉동식품을 해동할 때 사용하는 전자레인지도 제2차 세계대전 덕분에 탄생한 발명품이다. 전쟁 당시 세계 각국은 막대한 돈과 인력을 쏟으며 레이더 개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자 레이더 개발회사들은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런데 퍼시 스펜서라는 기술자의 새 발명으로 그런 난국을 타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레이더 기술자인 퍼시 스펜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어느 날 레이더의 마이크로파를 발생시키는 장치인 마그네트론 옆에서 실험을 하다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실험실 온도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초콜릿이 녹아버린 것.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옥수수를 마이크로파에 쪼여서 팝콘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후 그는 연구를 거듭해 레이더에서 사용하던 부품인 마그네트론을 소형으로 만들어 전자레인지를 발명했다.

 

 

전쟁을 촉발시킨 발명품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발명품이 탄생했지만 거꾸로 발명품 때문에 국가가 전쟁에 뛰어든 사례도 있다.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발명한 ‘질소비료’가 그것이다. 질소는 식물 생장에 꼭 필요한 성분이다.

 

퇴비나 분뇨 등에서 얻을 수 있지만 생산량이 한정되어 대량으로 생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버는 공기 중에 단단히 묶여 있는 질소 원자를 떼어내 사용할 수 있는 ‘하버-보쉬’ 공정을 개발해 질소비료를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기체 상태의 질소와 수소에 촉매를 사용해 암모니아를 얻음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이 암모니아의 합성법은 비극을 낳았다. 암모니아는 비료뿐만 아니라 폭탄 제조에 필수적인 질산의 원료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산을 무한정으로 얻을 수 있게 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자신 있게 뛰어들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연합국은 해양을 봉쇄하여 그동안 질산의 원료로 사용되었던 독일의 칠레초석 수입을 막았으나, 독일은 하버 덕분에 화약 제조에 필요한 질산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또한 하버는 독일에 적극 협력해 최초로 염소 독가스 제조에 성공했다. 그가 만든 염소 독가스는 1915년 4월 22일 서부전선의 이프르 전투에서 사용되어, 5천여 명의 프랑스 병사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화학무기의 아버지’로 불리며 제1차 세계대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하버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4년 나치당에 의해 독일에서 추방당했다. 또한 그의 친척 중 여러 사람이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이때 하버가 만든 독가스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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