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

출처: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60952
2023.07.29 08:00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어떤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맞았다고 하자. 다른 맥락 없이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지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맞은 사람이 뭔가 맞을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는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가질만한 의문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종류의 생각이 나아가 각종 폭력-학교 폭력,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의 피해자들에 대해 “피해자도 뭔가 잘못했을 것”이라고 보는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상한 현상은 왜 나타나는 걸까.
사람들은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나이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닥쳐오는 자연 재해처럼 별 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나쁜 일이 닥칠 수 있지만 세상에 원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또한 교통사고나 질병,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 등 다양한 나쁜 일들이 자신의 행동거지와 상관 없이 갑자기 일어날 수 있지만 이러한 현실과 별개로 자신의 주변 환경을 스스로의 힘으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비슷하게 착하게 살면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대체로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의 힘으로 삶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야 통제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이렇게 자신감을 갖는 것에는 많은 장점이 있다. 어떤 일이든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야 하게 되고 해봤자 안 될 거라고 믿으면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개인에게 삶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다.
문제는 때로 세상을 장밋빛으로 바라보고 싶은 욕구 때문에 특히 타인이 겪는 문제에 대해 저 사람이 저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그만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일 것이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믿음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억울한 피해를 봤을 때에는 자신의 무고함을 사방팔방 호소하면서도 타인의 피해를 바라볼 때에는 “쟤도 뭔가 잘못 했겠지”라며 쉽게 관심을 끄곤 한다.
뉴욕대의 심리학자 존 조스트(John Jost)는 이러한 피해자 비난하기에 “체제 정당화(system justification)”기능이 존재한다고 본다. 피해자 개개인의 행실에 주목하며 얼마나 순수한 피해자인지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조직에 존재하는 문제점에서 시선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도 직장 내 괴롭힘도 성폭력도 조직에 존재하는 구시대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권력 남용 문제 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피해자 비난하기를 통해 우리 조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따라서 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으며 피해자 개인만 조용히 있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모두가 편안한 게 없는 것이다.
따라서 특히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윗 사람들의 경우 조직의 평화, 다른 말로 자기 일신의 평화를 위해 도덕성을 져버리는 행위를 하기 쉬운 상황에 놓인다.
일례로 2017년 미국에서 정부 기관(NASA, 국방부, 법무부, 환경부 등)에서 일하는 약 1만1000명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1년 간 자기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태에 대해 ‘고발’한 횟수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분석한 연구가 있었다.
연구자들은 성별, 나이, 인종, 학력, 근무 기간 등과 상관 없이 ‘직위’가 높은 사람들(단순직에서 전문직, 매니저에 이르기까지)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보고 횟수가 적은 경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험을 통해서 팀에서 ‘리더’ 또는 ‘결정자’ 역할을 하게 된 사람들이 다른 구성원들이 비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때 이를 방관하는지 아니면 구성원들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낼지에 대해 살펴 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팀에서 결정자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영향력이 적었던 사람들에 비해 조직에서 일어나는 불의를 더 방관하는 경향을 보였다.
괴롭힘을 조금 방관해도 괜찮지 않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연구들에 의하면 각종 괴롭힘을 방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 3자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잘못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 본체만체 그냥 넘기는 것은 가해자에게 계속 폭력을 휘둘러도 된다고 용인하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반면 “그건 아니지. 선을 넘었네.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며 괴롭힘을 적극적으로 막거나 상황을 중재할 다른 책임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면 괴롭히는 상대에게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줄 수 있다.
성폭력을 예로 들면 캐나다 캘거리대(University of Calgary)의 심리학자 첼시 윌니스(Chelsea Willness) 등은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41개의 기존 연구들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발견을 했다. 우선 많은 연구들에서 ‘성폭력을 용인하는 조직의 분위기’를 문제로 지적했다.
성폭력 관련 문제를 제기하거나 고발할 때 피해자가 져야하는 위험부담이 큰 반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약한 것, 문제를 제기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분위기, 남초 직장의 경우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남성성을 우월시하는 등의 조직 문화가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성적 문제 행동에 대한 명확한 공식 가이드라인의 부재, 문제를 제기하고 조사를 요청할 수 있는 공식 절차, 교육 프로그램의 부재, 성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내부의 강한 행동 의지 부재 같은 시스템, 정책, 절차, 행동력 상의 문제 또한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됐다.
성폭력 가해 확률을 살펴본 연구에서는 성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남성이 성폭력에 관대한 환경을 만나면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하게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보는 사회에 비해 폭력을 묵인하고 용납하는 정도가 더 높은 사회에서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빈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은 이를 용인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홀로코스트, 노예제 등 끔찍한 역사를 통해 인간은 다수의 압력에 쉽게 순응하고 동조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도덕 또한 사회적이어서 아무리 끔찍한 일도 모두가 그 정도는 괜찮다고 무신경한 태도를 보이면 사람을 학살하는 일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곤 한다.
다수의 의사와 상관 없이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옳은 일을 관철할 수 있는 도덕적 용기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특히 조직의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도덕적 용기를 발휘하여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책임이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