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 당신의 자존감을 낮추는 사람들

“그 기업 군대 같다던데, 너는 예민해서 적응 못할걸?”
 

오만에 찬 네가 혜나를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마. 절대 네 사진을 믿지 마.

예서를 세뇌시키는 김주영 선생. 가스라이팅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상대방의 존재를 깎아 내려서(후려처서) 자존감을 낮게 만든 후,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유도하는 것. 가스라이팅의 목적은 그렇게 얻은 힘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는 데 있다.

이러한 행위는 꼭 심각한 범죄에서만 이용되는 게 아니다. 평범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수없이 일어난다. 연인 사이에서의 가스라이팅은 기사화되어 많이 알려졌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의 대학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동등한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

붙었다고? 네 스펙으로는 안될 곳이었는데. 운이 좋았네 보네.

네 여친은 대체 왜 너 같은 애랑 만나준대? 봉사하는 거냐?

위처럼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밥먹듯 하는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가스라이팅은 무조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태도로 행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친근한 관계에서도 충분히 발생한다.

장난이라 생각하고 웃고 넘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일삼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상대를 은근히 깎아내리며 본인의 위치를 공고화한다. 특히 무리 안에서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하대하며 권력 구조를 형성한다. 그리고 피해 당사자는 이미 형성된 권력 구조에 본인도 모르게 적응했을 수도 있다.

친구 무리에서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는 사람과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평범한 친구 관계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이런 무리 속에서 ‘따라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있다면 최선의 방법은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대일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 어쩌면 대화로 상대를 변화시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가진 힘을 상대가 내려놓을 리 만무하다. 어설픈 태도로 저항하고, 설득하려다 다시 잡아먹히기 쉽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상하 관계 구축을 위한 전략적인 가스라이팅

내 말만 들어, 그럼 너 학점 구려도 취업 문제없어.

우리 과에서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너는 적응하려면 한참 멀었네.

혹시 과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단지 전공이 같다는 이유로, 그래봤자 고작 2~3년 차이나면서, 선배라는 이름으로 후배에게 행하는 가스라이팅이다. 교내에서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대부분 별 볼 일 없는 이들)은 선후배 간의 위계와 예절을 강조하며 후배에게 다가간다.

그들은 보통 ‘네가 겪는 거 내가 이미 다 해봤다’는 이유를 들어 후배를 깎아내린다. 자존감을 떨어뜨린 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척하며 상하 관계를 구축한다. 저학번이라면 고학번 선배들이 대단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졸업만 하면 그들은 나랑 아무 상관없는 사이가 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들은 당신의 미래를 극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몇 년 뒤 같이 취업 준비 하고 있을걸?) 끊어내야 한다. 그런 선배라면 무시해도 당신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은 없다.

피할 수 없는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

졸업하기 싫어?

내 말 안 들으면 논문에서 이름 빼 버린다.

이미 뚜렷한 상하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에도 그것을 공고화 하기 위해 가스라이팅이 행해지기도 한다. 대학원생과 교수 관계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미 획득한 권력으로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등 갑질을 일삼다 더 큰 통제력을 얻기 위해 점점 더 강하게 상대를 압박한다. 경악스러웠던 ‘강남대 인분 교수 사건’은 이런 가스라이팅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다. 슬프게도 비슷한 사건이 최근에도 꾸준히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내가 상대의 영향권 내에 있어 끊어내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박차고 나오는 게 최선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1. 스스로를 단련시켜야 한다. 세뇌당하지 않게 가해자가 없는 곳에서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며, 2. 주변인에게 이러한 상황을 알려야 한다. 지금의 당신은 이 상황을 혼자 깨뜨릴 수 없다.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깨부숴 줄 조력자가 필수다.

문제 인식이 우선이다

아무리 가벼운 가스라이팅이라도(사실 가벼운 건 없지만), 방치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확실히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당신이 지금 위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변 사람에게 필히 알리고 조언을 구하자. 당신을 도와줄 사람은 어디든 존재하니까.

냉정하게 말해 가스라이팅을 행하는 사람과의 관계 개선은 어렵다. 거리를 두고 무시하며 관계를 차츰 정리하는 게 최선이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