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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은 원래 남성의 문화 권력의 상징이었다”

Winnipeg101 LV 10 21-12-18 297

‘보석의 비밀’ 밝힌 송경미 갤러리 람(RAAM) 대표

황은순 차장대우 

▲ (좌) 예카테리나 2세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던 영국인 대사에게 1762~1765년 사이에 선물한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목걸이. (우) 외제니 황후가 즐긴 1885년경의 다이아몬드 리본 브로치.

세계 미술시장 최고의 큰손인 카타르의 공주가 그림뿐만 아니라 앤티크 주얼리를 포함한 명품 보석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카타르 왕의 딸 셰이크 알 마야사 빈 카리파 알타니(28) 공주는 일본의 세계적 ‘앤티크 주얼리’ 딜러를 통해 최소한 수백 점의 작품을 한꺼번에 구입하기 위해 은밀하게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수천 점의 앤티크 주얼리를 소유하고 있는 일본 딜러는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다. 5월쯤이면 구체적인 거래 내용을 밝힐 수 있다”면서 신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알 마야사 공주는 고가의 미술품을 무섭게 사들이면서 최근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세계적 미술 잡지인 미국의 ‘아트+옥션’은 ‘2011 세계 미술계 파워 톱10’에서 알 마야사를 1위로 선정했다. 알 마야사는 올 2월에만 폴 세잔의 작품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역대 미술품 최고가격인 2800억원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앤티크 주얼리는 제작된 지 100년이 지난 보석·장신구·공예품을 이른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왕실과 귀족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치’가 당대 최고 장인들의 손길을 빌려 탄생한 것이 앤티크 주얼리이다. 세계 경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도 앤티크 주얼리 경매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작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던 소더비 주얼리 경매에서만 총 낙찰액이 8910만달러(1025억원)에 이르렀다. 유럽을 제치고 중요한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홍콩 경매의 경우 작년 5월 크리스티 주얼리 경매 낙찰액은 8940만달러(1028억원)에 달했다.
   
 

▲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이랜드 그룹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33.19캐럿 반지를 881만8500달러(101억원)에 낙찰받으면서 화제가 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리는 이 반지는 그의 다섯 번째 남편인 리처드 버튼이 1968년 선물한 것이다. 리처드 버튼은 이 반지를 경매에서 30만달러에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로 팔 때 구입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을 받는 일반 보석과 달리 앤티크 주얼리는 훨씬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랜드가 구입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다이아몬드도 입찰 경쟁이 붙으면서 당시 경매에 나온 추정가보다 3~4배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앤티크 주얼리가 뭐기에 세계적 컬렉터들이 소장목록을 늘리기 위해 거액의 베팅을 하는 것일까.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어떤 유통과정을 거치는 걸까.
   
   앤티크 주얼리에 대한 개념이 아직은 낯선 국내에서 앤티크 주얼리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밝힌 책이 나왔다. ‘시크릿 오브 주얼리’(시공사)이다. 저자는 앤티크 주얼리 전문 갤러리를 하고 있는 송경미(39)씨. 서울 광화문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송씨를 만나 앤티크 주얼리의 세계를 들어봤다. 그는 연한 장밋빛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1820년대에 제작된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영국 런던에서 인연을 맺은 것이라고 했다. 송씨는 “당시엔 지금처럼 다이아몬드 세공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거칠게 커팅을 한 ‘장미컷’ 방식으로 제작한 것인데 200년이 지나 다시 유행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앤티크 주얼리의 세계에 빠진 후 10여년째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송씨는 “앤티크 주얼리의 매력은 그 안에 들어있는 스토리와 그것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과의 시간을 뛰어넘은 인연에 있다”고 말하고 “알수록 빠져드는 것이 앤티크 주얼리다. 그 매력을 알리고 싶어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권력과 보석의 역사
   
 

▲ 19세기 초반의 다이아몬드 티아라.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에서 그의 여동생 폴린 보나파르트가 착용한 것이다.

송씨는 “보석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남성의 권력의 상징이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보석을 사랑한 남자들은 누가 있을까. 보석을 광적으로 수집했던 대표적 권력자는 프랑스 절대왕정기의 루이 14세(1638~1715)이다. 현란한 보석으로 온몸을 치장했던 루이 14세에게 다이아몬드는 국왕의 힘을 과시하고 부르봉 왕조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나폴레옹 1세도 빼놓을 수 없는 보석광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프랑스 주얼리 산업의 기반을 만든 이가 바로 나폴레옹 1세이다. 나폴레옹 1세는 조세핀에게 주는 선물뿐만 아니라 포상용으로 보석에 조각을 새긴 ‘카메오(cameo)’를 선호했다. 이탈리아에서 카메오 전문 장인을 초청하고 보석 조각을 장려했다. 송씨는 “실제로 나폴레옹 1세의 카메오를 착용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도쿄에서 열린 앤티크 주얼리 전시회의 리셉션에서 나폴레옹 1세의 옆얼굴과 나폴레옹의 이니셜인 ‘N’이 새겨진 카메오를 착용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 
   
   권력과 보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이다. 패션리더였던 그는 유난히 진주를 사랑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를 보면 세 겹 네 겹의 진주 목걸이와 진주 머리장식품을 주렁주렁 걸치고 진주가 수없이 박힌 드레스를 입고 있다. 당시 진주의 가치는 웬만한 성(城)과 맞바꿀 정도였다고 하니 엘리자베스 1세가 진주에 쏟아부은 돈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이다. 그가 즉위하는 동안 영국 왕실이 소유한 보석 컬렉션도 막대하게 늘어났다.
   
   보석 수집에 있어서 엘리자베스 1세에 뒤지지 않는 여황제는 러시아의 표트르 3세와 결혼해, 남편을 폐위시킨 후 러시아의 황후가 된 예카테리나 2세(1729~1796)이다. 그의 대관식을 위해 준비된 왕관에는 무려 달걀 크기만 한 스피넬(spinel·첨정석)과 5000개에 이르는 다이아몬드가 소요됐다고 한다. 오를로프라는 귀족은 예카테리나 2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왕봉을 선물하기도 했다. 190캐럿짜리 호두만 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왕봉은 당시 작은 나라를 살 수 있을 만큼 고가였지만 끝내 그녀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1만여점에 이르는 예카테리나 2세의 보석은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에르미타슈미술관의 기반이 되었다.
   
   
   운명의 첫사랑을 만나다
   
 

▲ 작센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Frederick August Ⅱ of Saxony)의 모자 장신구. 40.7캐럿의 드레스덴 그린 다이아몬드가 세팅되어 있다.

앤티크 주얼리의 역사를 줄줄 꿰는 송씨였지만 책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탓에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부한 기간은 중학교 때 3년이 전부이다. 송씨는 “중학교 수준의 한국어로 책을 쓰다 보니 4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송씨가 앤티크 주얼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교토의 도시샤(同志社)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런던의 소더비 옥션에서 운영하는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Institute of Art)’에서 공부를 할 때였다. 소더비의 옥션 하우스는 앤티크 주얼리의 경매가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위해 대기 중인 희귀한 보석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주얼리의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앤티크 주얼리와 사랑에 빠진 것은 런던의 명품거리 ‘본드 스트리트’에서 만난 한 점의 보석 때문이었다. “한 가게의 쇼윈도에서 유독 눈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인데 그 보석의 용도가 너무 궁금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지 머리가 희끗한 가게의 점원이 수상한 눈빛으로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용기를 내서 들어가니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점원의 태도가 손님을 대하는 태도로 확 달라졌어요. 진주가 박힌 그 보석은 130여년 전에 만들어진 로켓 펜던트(사진 등을 넣을 수 있는 펜던트)였는데 당시에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고가였죠. 구체적인 가격은 밝히기 어렵지만 천만원대가 넘었어요. 몇 년이 지나 그곳을 다시 찾았어요. 쇼윈도를 보니 당연히 그 펜던트는 없었지만 점원은 그대로였어요. 놀랍게도 저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 후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바로 그 로켓 펜던트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어요.”
   
   운명의 첫사랑인 로켓 펜던트는 어떻게 됐느냐고? 당연히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송씨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연이라고 한다. 송씨는 “돈이 있어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앤티크 주얼리다”라고 말한다. 또 운좋게 인연이 돼서 보석 가치의 몇 분의 일도 안되는 가격으로 그의 소장품이 된 것도 꽤 있다고 한다. 앤티크 주얼리 전문 갤러리 람(RAAM)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 일본 등지에서 만난 딜러들과의 끈끈한 인연 때문이란다.
   
   앤티크 주얼리를 구입할 때 미술품과 마찬가지로 진위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송씨는 “진위를 가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유통 경로”라고 말한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초기에는 해외를 들락거리면서 발품을 팔고 다녔지만 오히려 오래 거래한 딜러들을 통해 들여오는 것이 훨씬 믿을 만하단다. 송씨는 주얼리의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리어카에서 파는 액세서리라도 자신을 매혹시켰다면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석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가치는 그 안에 담긴 ‘인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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