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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라이프] 선을 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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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5 14:39

 

 

[사진 제공: 언스플래쉬닷컴]
[사진 제공: 언스플래쉬닷컴]

 

“사귀는 사람이 ‘어. 얘 선 넘네?’ 하는 순간이 있었어? 언제 그런 걸 느껴?”

 

지난 몇 주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질문을 던졌다. 지난 연애가 인간에게 남기는 다양한 감정과 상태 중 내게 남은 건 망각뿐이라서. (실은 뭐라도 곱씹거나 그리워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생각나는 게 별로 없다.)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한 답들이 돌아왔다. 치킨 한 마리를 시켰는데 다리 두개를 혼자 다 먹을 때 연인이 선 넘는다고 느낀 사람부터 자기 인생을 통째로 휘두르려는 독재형 애인에게 질렸다는 사람까지. 또 어떤 이는 “제발 선 좀 넘어왔으면 좋겠다.”고, 관계의 경계에서만 서성이다가 얍삽하게 치고 빠지는 남자들에 대한 푸념을 쏟아 내기도 했다. 

 

왜 우리는 선 안팎에서 각자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방황하는 걸까?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 박사 저서 <당신과 나 사이>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진 제공: 언스플래쉬닷컴]
[사진 제공: 언스플래쉬닷컴]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고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이중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즉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 상대에게 전부 흡수되어 내가 없어지거나 상대에 의해 휘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면서 자율성을 지키고 싶다는 욕구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한쪽이 떨어져 있는 상태를 지나치게 못 견디면 다른 한쪽이 고유의 자율성을 침해당한 데에 대한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문제가 생기게 된다.”

 

생각해보니, 같이 있고 싶은 마음과 혼자 있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시절엔 주로 내가 ‘떨어져 있는 상태’를 지나치게 못 견디는 쪽이었다. 데이트를 하다가 집에 갈 무렵이 되면 헤어지기 한 두시간 전부터 울적함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엔 그걸 ‘애틋한 마음’으로 받아주던 남자 친구도 나중엔 집착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나의 상태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질려서 떠났다. 상대의 인생에 개입하려는 것, 선을 넘어가는 것이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발로된 것일 수도 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회상해보건데, 나는 아니었다.

 

그냥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잘 몰랐던 거다. 그래서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으려고 애썼다. 수 년 동안 몇 번의 연애를 더 겪고 혼자 나와서 산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내 안에 상대를 휘두르려는 망나니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  

 

지금 나는 선을 긋는 사람에 더 가깝다. 물론 그게 옳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 선 안에서 꽤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 9시부터 스마트폰은 내게 아무런 ‘알림’을 전하지 않는다. 전화와 메시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한 처사다.

[사진 제공: 언스플래쉬닷컴]
[사진 제공: 언스플래쉬닷컴]

 

코로나19로 인한 비자발적 고립 기간이 지속되면서, 온전히 혼자서 몇 날을 보내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일에 더 능숙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일을 하다가 끼니 때가 되면 식사를 준비해 먹는다. 해질 무렵이 되면 밖으로 나가 반시간 정도 달리고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 들러 간단한 요기거리를 산 후 집에 와서 씻고 와인 한 잔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한다.

 

스스로 만든 단절의 시간이 찾아오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잠든다. 이런 일상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다 보니 타인과 보내는 시간, 만나는 남자의 연락 횟수 같은 것이 관심사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연인을 비롯한 타인의 삶에 품었던 과한 관심과 호기심, 그들의 선택과 결정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 선을 넘어가고 싶은 충동도. 

 

나 자신을 향해 몸을 둥글게 말아 넣는 은둔의 나날에 대해 작가 나타사 스크립처는 “우리는 누구나 덜 사회적으로 느껴지는(내향성이 강해지는)시기를 지나친다. 나는 그 시기에 나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라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달려드는 시기라니. 바깥 세계, 타자, 내가 아닌 대상에게 빠져드는 일의 유익함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지만, 내가 나에게 꽂힌다는 생각은 왜 한 번도 한 적이 없을까?

 

게다가 지금은 온 우주가 그 은둔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거리두기’의 시대인데. 관심이 타인의 행위에 자꾸만 쏠려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종종 감정이 휘둘려서 힘겨운가? 남과 나 사이의 선 주위에서 갈피를 못 잡는 기분에 자주 휩싸인다면 우선 자기 자신과의 ‘선’에 집중 해보길 권한다.

 

넘으면 넘는 대로, 넘지 않으면 또 그런 대로 유익한 것이 돌아오는 유일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뿐이다. 

 

(시사캐스트, SISACAST= 시사캐스트 류진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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