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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관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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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사이도 사소한 일로 틀어지고 만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 때문이다.

BY 에디터 전소영-피처 | 2016.02.23
 

 

 

 

선은 선(善)이다

 

“웃자고 한 말에 왜 그리 죽자고 덤비고 그래.” “네가 너무 편해서 그랬어.” 이미 감정은 상할 대로 상했는데 상대가 사과 대신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웃자고 한 그 말은 전혀 웃기지 않았고, 편해서 했다는 말은 무례해서 듣기 곤혹스러웠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너무 사소하고 미묘한 지점이라 괜히 화내서 관계만 껄끄러워질까봐, 혹은 소심하다고 질타 받을까봐 마음에 담아두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넘어간다고 한들 그 관계가 완만히 풀리는 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그 편을 택한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듯, 선 역시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부모 자식 사이라 해도, 혹은 연인과 친구 사이에서도 안전거리 확보는 필수다. 그 거리를 넘어서면 부딪히기 마련이다. 

 

며칠 전 한 여자 연예인의 이름이 SNS와 인터넷 뉴스를 도배했다. 선배 연예인에게 반말을 섞어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나를 싫어하냐’고 되물으며 상대에게 보냈던 눈빛은 보너스였다).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 그 언행은 오해를 샀다. 그리고 그녀는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애교라고 이해하기엔 ‘선’을 넘어버렸다. 무엇보다 상대가 그 애교를 받아들일 만큼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고, 그럴 여유도 없어 보였다. 최근엔 한 개그맨 이름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낄낄대며 웃자고 떠들었던 말은 차마 들어주기 힘들만큼 거칠고 상스러웠으며 저질스러웠다. 농담이었다는 변명이 통할 리 만무했다. ‘선’을 넘어도 너무 넘어버렸다. 

 

선을 지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관계에서 38° 경계선만큼 확고하게 선을 긋는 게 배려 혹은 매너라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선을 되레 벽이라 느낀다. 그러나 그건 상대를 완벽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상대가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인지 탐색하는 시간 동안만큼은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선 넘은 넌, 이제 안녕

도 넘은 행동을 일삼는 이들과의 관계 회복은 대체로 불가능하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버린 이들과는 조용히 작별을 고하는 편이 낫다. 

 

설문조사는 <싱글즈> 홈페이지 (www.thesingle.co.kr)에서 3월 30일부터 4월 15일까지 진행했으며 589명이 응답했다. 

 

지나치게 선을 지켜 관계가 멀어진 적 있다. 45% Yes 

친할수록 선을 지켜야 한다 96% Yes 

 

 

약점을 약점 잡히는 순간 

평소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다른 부서 팀장이 있었다. 각 부서에서 한 명씩 차출돼 함께했던 프로젝트에서 만난 팀장이었다. 똑 부러지고 합리적인 그의 모습을 보며 롤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종종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고삐가 풀린 것일까? 난 그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모두 쏟아냈다. 며칠 전에 했던 소개팅, 연락만 하며 지내고 있는 썸남, 요즘 마음이 가는 남자 등에 대해 말하자 그는 흥미진진해했다. “너는 매력이 넘쳐서 조만간 좋은 남자 만날 거야.” 내가 그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반응만 보였던 터라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팀장과 같은 부서에 있는 친한 동기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너한테 말해야 할 것 같아. 점심시간에 팀장이 D선배한테 ‘처럼 문란하게 굴지 마라, 싸 보인다’라고 했어. 그 사람한테 무슨 얘기든 하지 마.” 동기와 내가 친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떠들었다니! 나를 무시하는 태도인 것은 물론, 이 사실을 내가 안다고 한들 상사인 그에게 항의하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아는 행동이었다. 이야기를 전해듣는 내내 사람을 잘못 본 내 눈을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이성을 잃고 광분했다. 그러나 이내 침착하게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를 고민했다. ‘너는 그냥 옆 팀에 앉아 있는 개XX다!’ 스스로 세뇌를 시키며 그에게 철저히 형식적으로 대할 것을 다친 나의 영혼에 맹세했다. 서지연(가명·28세) 

 

 

네 시간은 금이고, 내 시간은 똥이냐 

야근을 밤낮 없이 하는 마케팅 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실 ‘야그너’에게 저녁 시간은 귀하다. 1~2시간만큼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 만족을 위해 노력한다. 공을 들여 회사 근처 맛집을 찾고, 메뉴를 고르며 잠시나마 행복에 젖는다. 그날, 일 년 중 명절 때만 보는 사촌언니가 회사 근처라며 전화를 했다. 남자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뜬다며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오랜만에 보는 언니인데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다. 선물 받은 영화 티켓 2장을 들고 언니를 만났다. 그때 시각이 저녁 6시. 서둘러 식당에 도착해 메뉴를 골랐다. 남자친구를 몇 시에 만나느냐는 질문에 “6시 40분”이란다. 메뉴가 나오는 데만 20분. 아무리 먹성 좋은 나여도 20분 동안 뜨거운 쌀국수를 ‘클리어’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작 40분 만나러 온 거야? 그렇게 시간이 뜨면 차라리 서점에서 책 보면서 기다리지.” 타박 섞인 원성에도 언니는 웃으며 “괜찮아, 얼른 먹어”라고 해맑게 답했다. 빨대로 빨아들이듯 국수를 들이켜고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남자친구와 약속 시간을 30분만 미뤄라. 정 뭣하면 이곳으로 오라고 해”라며 갖은 말로 설득했지만 사랑에 ‘미친’ 이 언니는 줄행랑치듯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버렸다. 물론 만나자마자 건네준 내 호의 섞인 영화 티켓 2매를 들고.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한 건 언니인데 실컷 이용당한 이 기분은 뭘까. 언니야, 우리 이렇게 친한 사이였니? 안 하던 거 하지 말고 지금처럼 우리 앞으로도 일 년에 딱 두 번만 보자. 강민정(가명·31세) 

 

 

반말과 막말 사이 

회사에 친하게 지내는 3살 어린 동기가 있다. 입사한 지 6개월 됐을 때쯤, 마음도 잘 맞고 요즘 보기 드물게 착한 친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와 개그 코드가 잘 맞아 둘이 메신저를 시작하면 복근 운동이 절로 될 만큼 재미있었다. 깍듯이 존대를 하는 그 친구가 예뻐서 기분 좋게 말했다. “동기인데 너무 존대하지 마. 부담스러워. 편하게 말하자, 우리.” 봉인 해제가 된 기쁨 탓일까. 그녀는 조금씩 선을 넘더니 급기야 며칠 전엔 남자친구에 대해 고민 상담하는 나에게 “언니 너무 지랄맞다”고 하는 거 아닌가. 첫 번째 경고를 줬다. “지랄맞다니. 아무리 우리가 친한 사이여도 그건 할 말이 아닌 것 같아.”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그녀를 과대평가한 것일까.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고 하자 “내가 들어도 언니 좀 재수없는데?”라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 외에도 업무 실수를 했다고 하면 “XX 같아”, 바보 같은 행동을 하면 “또라이야?”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쯤 되니 편하게 말 놓으라고 했던 내 말을 거두고 싶다. 내가 만든 덫에 스스로 걸려든 느낌이다. 이젠 입만 열면 비속어에 막말을 해대니 점점 그 동생과 말하기가 꺼려진다. 딱히 업무 얘기 외엔 그 어떤 대화도 그녀와 나누지 않는다.열심히 선을 긋고 있다. 지서연(가명·30세)

 

 

 

대중교통 이용 시 지켜야 할 선

일찍이 알아두었다면 지하철, 버스에서 날마다 기록을 경신하는 비매너 인간들은 애당초 없었을지도 모른다. 

 

1 백팩은 내려두세요 

만원 버스에서 백팩은 거의 무기에 가깝다. 백팩을 멘 사람이 갑자기 몸을 돌리면 그 곁에 있는 사람 얼굴을 때리기도 하고, 통로에 있으면 걸리적 거려 사람들에게 불편을 준다. 이어폰이 백팩에 걸려 차에서 같이 내리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백팩을 손에 들거나 선반에 올린다. 혹은 자신의 발밑에 두는 것이 예의다. 

 

2 좌석을 뒤로 젖힐 땐 양해를 구하세요 

젖혀지는 좌석이 있는 고속버스나 비행기, 기차를 탈 땐 뒤에 앉은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매너다. 앞에 앉은 사람이 뒤에 누가 앉아 있든 상관하지 않고 무턱대고 의자를 젖혔을 때 느껴지는 불쾌감은 누구나 있을 터. 특히 비행기의 경우 뒷사람이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내 돈 주고 탔는데 무슨 상관?’ 이런 태도는 부디 접어두시라. 

 

3 손잡이 하나는 양보하세요 

사람이 많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양손에 손잡이를 꽉 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거칠게 핸들을 돌리는 운전자에 대한 불신 탓이라는 걸 알지만 만원 버스에서는 뒤에 탄 사람들을 위해 손잡이 하나는 양보하길 권한다. 그게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 좋다. 버스가 급정거, 급회전했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넘어진다면 당신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까, 넘어도 될까?

 

선을 넘으면 더 각별해질 것도 같고, 지키면 중간은 될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선을 넘으면 무례한 것 같고, 지키면 멀어질 것 같다.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선’이 애매하다. 

 

 가족편/ 엄마에게 이자 받아도 되나요? 

돈벌이를 제대로 하면서부터 부모님이 자녀에게 기대는 일이 많아진다. 외식해도 계산은 자녀가 해야 도리고, 가족 여행을 가도 계획은 물론 경비까지 자녀의 몫이 된다. 조금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취업하기 전까지 부모님께 빌붙어 밥만 축내던 백수 시절을 생각하면 이 정도 베푸는 것쯤은 괜찮다고 여긴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돈을 꾸는 상황이 발생하면 조금 곤란하다. 액수가 크면 클수록 갈등은 커진다. 자식에게 빚지기 싫어하는 부모일수록 어떻게든 그 돈을 갚으려 하고, 당장 원금 상환이 어렵다면 이자라도 건넨다. 그 돈을 받으면 어쩐지 냉정한 딸내미가 된 것 같고, 안 받으면 괜스레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커질 것 같다. 넉넉하게 돈이 있다면 선뜻 드릴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부모 자식 간에 돈 거래를 시작하면서 점점 어색해지는 건 어쩐지 씁쓸하다. 

 

가족편 / 엄마면 다 괜찮나요? 다 큰 딸에게도 엄마는 ‘애기’라는 말 종종 한다. 엄마 눈에는 서른 넘어 일찍이 노화가 진행된 딸을 보면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뗐던 그 순간이 오버랩되는 거다. 사춘기 때쯤 진작에 있어야 할 선을 분명히 긋지 않아 이런 일들이 생긴다. 딸이 샤워 중인 욕실 문을 벌컥 열고, 짜증 섞인 딸의 원성에 “어때! 엄만데!” 이 한마디면 상황은 종료된다. 아무리 화내고 잔소리를 해도 소용없다. “아으~ 어때? 엄마가 요만할 때부터 다 봤는데?” 단둘이 있을 때는 보란 듯이 속옷만 입고 집 안을 종횡무진하는 엄마를 보면 비명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럴 때 엄마 입에서 나오는 말은 자동 응답기처럼 반복된다. “엄만데 뭐 어때?” 정말, 엄마면 다 괜찮은 건가. 

 

연인편 / 남친 엄마 생일은 어떻게 보내나요? 남자친구 부모님의 생일을 알게 되면 모른 척 지나가기도 애매하고, 아는 체하며 세심하게 챙기기에도 부담스럽다. 그동안 왕래가 충분한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왠지 이래저래 찝찝한 느낌이 든다. 결혼한 부부라면 시부모의 생일 선물을 마땅히 챙겨야겠지만, 연인 사이라면 다르다. 그 선물의 의미가 많은 것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른들 눈에 혼기 꽉 찬 나이대 연인에겐 고민스러운 일이다. 남자친구 손에 생일 선물을 들려 보내면 잘 보이고 싶어 미리부터 아부 떠는 기분에 자존심도 상하고, 선물을 두고 왈가왈부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가득 짐을 안고 있는 기분이다. 괜한 기대감만 심어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남자친구의 존재감 없는 여자친구가 된 것 같고. 이 기회에 점수를 따느냐 무심한 여자친구가 되느냐다. 그 선을 넘으면 남자친구와 나의 관계 성격이 달라질 테니 말이다. 

 

친구편 / 쓰레기 만나는 내 친구, 그냥 둘까요? 정말 부질없는 참견이자 오지랖이라는 걸 알면서도 절친의 남자친구가 너무 밉다. 친구와 관계가 친밀할수록 감정은 쉽게 전이된다. 왜 내 친구가 만나는 남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연락 두절돼 잠수를 타거나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속을 썩이는 걸까. 이 정도는 약과다. 업소를 다녀와 꼬리가 잡히고, 동거까지 해놓고 다른 여자와 바람 나 줄행랑을 친다. 내 남자도 아닌데도 열불 나는 마음 숨길 수가 없다. 옆에서 아무리 뜯어말리고 훼방을 놔도 껌딱지처럼 다시 만나는 그 둘. 제3자로서 막장 드라마 보듯 있으려니 친구의 불행한 푸념을 끝없이 들어줘야 하는 데다 그런 친구가 불쌍하고 안쓰럽다. “그 남자랑 당장 헤어져!”라며 닦달하기엔 지나친 간섭 같다. 급기야는 “그 남자랑 안 헤어지면 너 다신 안 만나!”라는 무리수를 두는 일도 생긴다. 

 

회사 동료편 / 상사와 휴가를 보낸 적 있나요? 회사가 아무리 일하는 곳이라고 해도 인간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다. 특히 공통적으로 느끼는 ‘절대악’ 같은 상사가 존재한다면 유대 관계는 더욱 끈끈해진다. 회사에서 내내 붙어다니는 것도 모자라 퇴근 후에도 시간을 보내며 심지어 휴가까지 같이 내는 관계는 어떨까? 휴가를 가서는 회사 얘기에 꽃을 피우고, 회사에서는 사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회사 동료(상사). 분명 일장일단이 있다.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나의 편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지겠지만 공과 사의 구분이 허물어진다. 일적으로 꺼려지는 얘기는 못한다. 반대로 도움을 받아 일이 빨리 해결될 수도 있다. 누구 하나라도 애인이 생기면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건 회사를 다니는 건지, 여고를 다니는 건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과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맞는지 도통 모르겠다.

 

 

 

선을 뛰어넘는 관계가 되고 싶다

 

너무 깍듯하면 어쩐지 거리감이 생긴다. 도무지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사람, 어떻게 그 간극을 극복할 수 있을까. 

 

Case 1 개념일까 강박일까 돈과 시간에 대한 개념이 투철한 친구 K는 매사에 너무 칼 같아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항상 약속시간 전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린다. 보통은 제시간에 도착하지만 간혹 내가 시간 계산을 잘못하거나 늦잠을 자서 늦게 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미안해서 밥을 사지만, 카페에서는 100원 단위까지 더치페이한다. 사실 더치페이가 깔끔하고 합리적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돈 버는 회사원이라면 1차는 내가, 2차는 네가 내는 관계가 더 정겹고 아름답지 않은가? 일단 난 정서적으로 그게 더 마음이 편한데 이 친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계산하기 전에 매번 ‘카드로 반반 긁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모양 빠진다. 김고은(가명·29세) 10원까지도 정확히 나눠서 편하게 더치페이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 뱅크 월렛까지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의 친밀함을 떠나 돈에 관해서는 확실하고 싶어한다. 친구에게 거리감 느끼는 것을 애먼 더치페이에 핑계를 대고 있다. 더치페이 안 하고, 밥 잘 사주는 친구는 나중에 뭔가 바라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친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돈, 시간 관념에 철저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걸 지키지 않았을 때 불같이 화를 내기 때문이 아닐까. 친구에게 조금 더 이해를 구해보는 편이 낫겠다. 

 

Case 2 친해지고 싶은 남자친구 사귄 지 두 달 된 남친과 진도가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스킨십만이 아니라 그를 향해 열린 내 마음의 문도 그렇다.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친구는 내외한다 싶을 정도로 매너가 좋았다. 찻길 안쪽으로 나를 걷게 하고, 우산 쓰며 걸을 땐 왼쪽 어깨를 모두 희생했다. 그러나 밤 10시 이후에는 카톡 한 번 날리지 않아 헷갈리게 했다. 나를 좋아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러던 중 그는 커피 한 잔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쿠폰 개수만큼 만나고 나서야 내게 사귀자는 말을 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왜 밤에 연락하지 않냐고 물으니, 예의란다. 깜짝 놀라며 “초죽음될 만큼 피곤하지 않으면 그 시간에 잠자는 성인은 별로 없다”며 심야 연락을 종용했다. 나보다 5살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성은 씨, 식사는 하셨어요?” “주말에 시간 괜찮으세요?”라며 깍듯하게 존대를 하는 그. 나중에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순간에 “키스해도 돼요?” “가슴 만져도 돼요?”라고 물어볼 것 같다. 남친아, 정말 너와 친해지고 싶다! 이성은(가명·30세) 결국 스킨십이 해결해줄 거다. 남녀 사이의 벽은 스킨십 하나로 와르르 무너지게 돼 있다. 또는 말다툼 한 번이 관계에 친밀감을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가볍게 삐치고, 풀어주고, 투닥투닥하면서 서로를 파악하게 되는 법이다. 다만 지금 ‘너무 매너 좋은 내 남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오래 사귄 후 그 매너가 허상임을 알았을 때 오는 실망감이 크지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시종일관 매너 있는 좋은 남자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Case 3 국정원만 알 것 같은 그녀의 사생활 늘 얘기 잘 들어주는 친구 E와 안 지 10년째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더 좋아하는 게 그녀의 큰 장점이지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가까워지기 어렵다. 요즘 사귀는 남자 이야기, 회사 상사 뒷담화, 가정사 등을 다 털어놓는 여느 친구들과 달리 E는 둘러댈 뿐이다. 한번은 “네 얘기도 좀 해봐. 이직한 회사는 어때?”라고 물으니 “응 뭐, 괜찮아” 정도의 대답뿐이다. E의 생일날 저녁 메뉴를 고르라고 해도 “너네 먹고 싶은 걸로 정해”라며 양보한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청첩장을 들고 와선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10년 넘은 지기들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친구. 마음은 열지 않고 몸만 함께 있는 것 같다. 고은영(가명·32세) 친구가 입을 열지 않는 이유는 진짜 별 고민 없이 사는 단순한 성격일 수 있고, 타인을 잘 못 믿어 자신이 이야기한 것들이 약점이 될까 두려워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타인과 부딪히기보단 둥글게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어떤 경우든 10년을 알고 지낸 사이라면 말수가 없을 뿐 음흉하고 의뭉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면, 그저 곰 같은 친구라 여기고 받아들이길. 

 

Case 4 선배님, 선배님, 우리 선배님 늦깎이 신입사원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는 몇 살 차이 나지 않지만 나보다 연차가 꽤 높은 선배가 있다. 그분이 내게 깍듯하게 존대를 해 곤란하다. 존중해주는 말도 자격지심 탓인지 곱씹게 된다. “부탁드렸던 거 하셨어요?” 나와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대리님의 말이다. ‘부탁’이라는 단어만 빼면, 이게 어찌 후배에게 하는 말이라 볼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나이 많은 신입사원이라 의식되는 것도 많은데 좀처럼 말 놓지 않은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다. 서로 극존대를 하다 보니 가까워지려야 가까워질 수도 없다. 말 편하게 해달라고 부탁도 했지만, 그때뿐이다. 벌써 입사한 지 10개월. 우리 이제 좀 친해지지 않았나요? 서진영(가명·32세) 배부른 소리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입해서 보자면 <미생>에서 강 대리가 장백기에게 대하던 장면을 떠올려보시라. 존대를 하면서도 업무 지시할 때는 단호했다.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존댓말을 사용해도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있다. 최대한 상대가 당신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업무적인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 친해질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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