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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 남과의 비교가 내 삶을 괴롭힐 때 ‘선 긋기’

Winnipeg101 LV 10 22-01-06 287

2021.01.23 06:00

 

 

′비교′가 내 삶에 있어 유용한 지점을 넘어 불행만 가져다주고 있다면, 효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비교'가 내 삶에 있어 유용한 지점을 넘어 불행만 가져다주고 있다면, 효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며 그들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으라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와 비슷한 것이 ‘하향비교(downward comparison)’로 자신보다 더 상황이 나쁜 사람들을 떠올리며 상대적으로 위안을 얻는 행위를 말한다. 이 반대는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로 자신보다 상황이 좋은 사람들과 비교하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상향비교는 우울과 불안을 불러오는 반면 (흔히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는 말들이 상향비교에 해당된다) 하향비교는 단기적으로 정서적인 이점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향비교 역시 장기적으로 좋은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상향비교가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많은 이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충분히 잘 하고 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서 나보다 더 뛰어나고 행복한 것 같은 사람을 보고 이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방금 전까지 멀쩡해 보이던 내 삶이 초라해 보이고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것만 같은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게 비교의 진정한 해로움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객관적으로 내 삶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더라도 나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등장하면 갑자기 삶이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골치아픈 사실은 삶에는 다양한 측면이 존재하고(일, 연애, 취미활동, 건강, 인간관계, 외모 등) 따라서 각 잡고 찾으면 누구나, 심지어 빌 게이츠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한두 분야에 있어 자신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비교하는 뇌를 장착하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반드시 불만족 포인트를 찾게 된다.   


이렇게 실제 삶의 만족도와 상관없이,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단지 머리 속으로 어떤 삶을 ‘준거’로 삼느냐에 의해서 내 삶의 만족도가 180도 뒤집어 질 수 있다는 점이 우리의 주관이 가진 대단한 힘인 동시에 큰 문제점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 같은 연예인들도 자기는 누구보다 키가 작다거나 피부가 별로라며 얼마든지 진정한 불행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상향비교에 대해 경고하는 말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향비교를 하더라도 굳이 불행해져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세상에 나보다 여러 분야에서 잘난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전세계 1등을 차지하는 것은 확률적으로 불가능이다. 올림픽 10관왕이라고 해도 삶의 다른 영역들, 가령 인간관계, 행복한 가정, 인성, 정신적 여유, 적은 스트레스, 휴식, 취미 활동 등 모든 것을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수천 가지의 요소들 중에서 단 하나만이라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또한 나보다 잘난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서 해서 내 삶이 갑자기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의 전체 파이가 정해져 있어서 마치 제로섬 게임처럼 누군가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해서 내가 그만큼 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삶에 있어서 추구하는 가치도 사람들마다 달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무엇(매력적인 외모?)이 내 삶의 만족도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삶의 어떤 한 가지 요소만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한다면 몰라도(돈, 지위 등) 사람들의 행복은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돼 있고 모든 이들이 일직선 상에 나열돼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몇몇 요소에서 누군가의 삶이 더 나아 보인다고 한들 이는 나나 그 사람의 삶에 대해 매우 제한적인 정보를 줄 뿐이다. 어쩌면 문제가 되는 것은 비교 자체보다도 겉으로 보이는 단편적인 정보를 삶 전체로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자신보다 여러면에 있어 더 잘난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세계관’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경우 이런 정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났다는 정보(또는 내가 그렇다고 믿는 것)이 “그래서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라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항상 존재해왔을 뛰어난 누군가를 내가 지금 발견했다고 해서 내 삶에 당장 큰 변화가 생기나? 이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 내 삶이 더 나아지나? 내 삶에 아무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이 정보에 대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비교를 통해 동기부여를 한다든지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비교가 내 삶에 있어 유용한 지점을 넘어 불행만 가져다주고 있다면, 비교의 효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학자들은 비교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동기부여하는 데 있다고 본다. 예컨대 다들 90점을 받았는데 나 혼자 60 점이라면 나는 좀더 분발해야 한다. 반면 다들 40점을 받았는데 혼자 60점이라면 나는 매우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비교의 진정한 역할이자 존재 이유다. 


따라서 비교를 시작하고 그래서 '나는 무엇을 더 열심히해야겠다'거나 반대로 '덜 신경써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면 이미 비교의 기능을 충분히 누렸으므로 그 이상은 선을 넘는 것임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의식적 사고능력’이 존재하는 이유 역시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생각이나 감정 등을 어느 정도 ‘목적’에 맞게 통제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 된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 내장된 나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능들이 과열되거나 오작동 할 때 내게는 이를 다스릴 책임과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주변 정보들을 수집해서 우리의 사회적 위치와 이에 대한 잠재적 위협 요소들에 대한 알림을 보낸다. 따라서 자꾸 비교하게 되고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의 경우 이러한 자동적 경향성이 선을 넘으려 할 때, ‘이 사람이 나보다 이런저런 것을 더 잘 한다는 정보가 지금 내게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도움이 되곤 한다. 또 실없는 짓을 하고 말았다며 웃어 넘기곤 한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모토는 ‘이미 가뜩이나 불행한 삶에 나까지 앞장서서 불필요한 불행을 얹히지 말자’다. 비교가 대표적인 예다. 내가 내 머리 속에서 만든 실체가 없고 따라서 겪을 필요도 없는 불행인 셈이다. 물론 비교를 통해 자극받을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삶에 실제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이 생각은 ‘똥 같은 것’이라며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이 좋겠다. 

 

※관련기사

Suls, J., Martin, R., & Wheeler, L. (2002). Social comparison: Why, with whom, and with what effect?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1, 159-16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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