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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세상에 태어나 길을 잘못 든 천재들

Winnipeg101 LV 10 22-01-07 274

곽아람 기자

입력 2018.09.22 03:00

 

 


뉴로트라이브

스티브 실버만 지음|강병철 옮김|알마700쪽|3만6000원

 

 

미국 소아정신과 전문의 레오 카너는 1943년 자신만의 세계에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11명의 어린이를 진료했다. 이들은 냄비 뚜껑을 바닥에 놓고 돌리는 것처럼 사소한 행동을 반복하며 즐거워했지만, 아주 작은 변화에도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카너는 이들이 고립된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리스어로 자신을 뜻하는 'autos'라는 말을 따 'autism'이라 명명했다.

자폐증은 인구 전체에 폭넓게 분포하는 매우 오래된 유전자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그러나 자폐증에 대한 연구가 막 시작됐던 시절의 카너는 병의 원인이 정서적으로 얼음장 같은 부모들의 양육 방식이라고 봤다. 열정적으로 떠들어대며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갖는 자폐아들의 특성을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절박한 몸부림'으로 해석한 것이다. 반면 동시대 빈에서 자폐아들을 연구했던 한스 아스퍼거는 이 같은 특성을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획득하는 특수한 지성'이라고 주장했다.

'뉴로 트라이브(Neuro Tribes)'는 자폐증의 역사를 파고들어 편견을 벗겨 내고, 자폐증 환자들을 위한 미래를 모색하는 책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컴퓨터 엔지니어들을 취재하다가 그들의 자녀 중 자폐아가 유독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화 ‘레인맨’에서 기억력이 비상한 자폐증 환자 역을 맡은 더스틴 호프먼. 1988년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자폐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친숙하게 바뀌었다.

 

영화 ‘레인맨’에서 기억력이 비상한 자폐증 환자 역을 맡은 더스틴 호프먼. 1988년 이 영화가 개봉하면서 자폐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친숙하게 바뀌었다.

 

자폐증 아들을 둔 심리학자 버나드 림랜드는 자폐증이란 유전학 및 신경학적 근거를 지닌 선천적 상태라는 개념을 확립했다. 어떤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부모들이 높은 지능과 관련된 유전인자들과 함께 이 병에 대한 취약성을 자녀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추측했다. 따라서 자폐증이란 천재의 잠재성이 전해지는 과정 어디선가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것, 즉 '명석함이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이후 자폐증 딸을 둔 영국 정신과 의사 로나 윙은 '자폐범주형 모델'을 고안해 자폐증이 흔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며, 그렇게 비참한 질병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자폐에 대한 수많은 오해가 희석되는 데는 림랜드, 윙처럼 자폐증 자녀를 둔 부모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한몫했다.

 

대중문화도 통념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1988년 개봉한 영화 '레인맨'은 자폐증 환자인 형(더스틴 호프먼)과 비범한 기억력을 가진 형의 능력을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동생(톰 크루즈)의 이야기다. '레인맨'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자폐인'은 대중적으로 친숙한 주제가 됐다. '레인맨' 개봉 다섯 달 후인 1989년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선 '기능적으로 뛰어난 자폐증 환자들'을 주제로 학회가 열렸다. 이 학회의 특별 연사는 말했다. "저는 자폐증을 겪는 44세 여성으로 축산 장비 디자인 부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일궈 왔습니다. 일리노이대학교 동물과학부에서 박사를 마치고, 현재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동물과학부 조교수로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템플 그랜딘. 자신이 자폐증이라고 공개한 최초의 성인(成人)이다. 동물과 유대감을 느끼는 자폐적 특성이 자기 직업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 그녀의 존재는 자폐증 환자들을 수용소에 보내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통념을 바꿔놓았다. 자폐인을 그들에게 적합한 '환경' 속에서 살도록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대면 접촉을 어려워하는 자폐인들에게 온라인 시대의 도래는 큰 힘이 됐다. 저자는 별난 구석을 인정하는 실리콘밸리 문화가 '괴짜' 자폐인들이 자리 잡는 걸 도왔다고 분석한다. MIT에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부 과정을 개설한 수학자 존 매카시는 아스퍼거증후군의 여러 전형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전자 게시판인 '커뮤니티 메모리'를 개발한 리 펠젠스틴도 아스퍼거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저자는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으로 자폐증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컴퓨터처럼 인간도 운영 체제가 다양하며, 자폐인들은 남다른 운영 체제를 갖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자폐증의 원인을 밝혀내겠다는 목표 아래 엄청난 돈을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자폐인과 가족들이 지금 좀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700쪽 분량이지만 풍부한 예시, 등장인물들에 대한 전기(傳記)적 서술이 책장을 쉬이 넘어가게 하는 동시에 자폐에 대한 편견의 담벼락도 넘어서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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