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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인 행동이 내게 주는 이익 - 호구가 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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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12.13 08:00

 

 

[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진화론의 적자생존을 오해하면 강한 개체만 자손을 남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당시의 환경에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게 된다는 이야기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크고 강한 공룡 대신 포유류가 득세하게 된 것은 변화된 환경에서 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로서는 한 개체의 강약보다는 유전자를 공유한 집단으로서 세대를 이어 유전자가 전달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혼자는 약하더라도 무리를 이루어 서로 도우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한 개체의 생존에는 유리하지 않은 이타적인 행동이 유전자 수준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이죠.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에게 먹이를 나눠주는 행동이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동물의 돕는 행동이 동질 유전자집단에 직접적으로 유리한 방향이라면, 인간의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할 것 같습니다. 뇌가 커지면서 더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유전자를 퍼뜨리기에 전혀 유리할 것 같지 않은 일도 벌어집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데도 자손을 남기지 않기도 합니다. 평생 힘들게 번 돈을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기부하는 것도 복잡한 사고를 하는 인간이기에 가능할 것 같습니다.

 

‘죄수의 딜레마’를 생각해봅시다. 공범으로 의심되는 두 명을 분리하여 조사합니다.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6개월만 징역을 살면 됩니다. 둘 다 자백하면 양쪽 다 3년씩 갇혀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서로 협조적일 것이라 기대하고 자백하지 않는 것이 유리해 보입니다. 그런데 상대가 자백하고 나는 자백하지 않으면 나는 10년을 갇히고 상대는 바로 풀려난다고 해봅시다. 상대도 같은 제안을 들었을 것입니다. 나로서는 자백을 하는 것이 유리해집니다. 협조를 기대한 상대를 배신하게 된다면 나는 바로 풀려납니다. 서로 배신해서 둘 다 3년씩 갇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배신당하고 혼자 10년을 갇히는 일은 없습니다. 서로 협력해서 6개월씩만 갇히는 것이 전체적으로 유리하지만, 상대가 협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게 유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1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협력하면 서로에게 큰 이득이 생기고, 나만 배신하면 혼자 이익을 챙기고, 둘 다 배신하면 작아진 이득을 챙기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말이죠. 이럴 때 어떤 전략으로 대처하는 것이 가장 큰 이익을 줄지 세계의 수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자들이 대결을 펼쳤습니다. 최종 승리자는 팃포탯(Tit-for-Tat)이라는 매우 간단한 전략이었습니다. “협력을 제안하고 상대도 받아들이면 지속한다.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대응한다. 언제든 상대가 협력을 제안하면 배신하지 않는다.” 이 방법은 관대하거나, 욕심을 부리거나, 확률을 계산하는 여러 변형된 전략들보다 더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실제 사회에서는 죄수의 딜레마처럼 선택이 1회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같은 사람과 같은 게임을 반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경영사상가 애덤 그랜트는 베스트셀러 ‘기브앤 테이크’에서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더 많이 베푸는 기버(giver), 더 많이 받기를 원하는 테이커(taker), 받은 만큼만 되돌려주는 매처(matcher)로 분류합니다. 사업가, 전문직, 영업사원 등 다양한 직종을 조사한 결과 가장 성공한 그룹은 기버였습니다. 가장 실패한 그룹도 기버였습니다. 둘의 차이는 ‘테이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느냐’입니다. 서로 베풀거나, 적어도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과 협력할 때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상냥한 사기꾼에게 휘말리면 끝없이 퍼주다 나락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기버이지만 상대가 테이커로 확인되면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똑같이 복수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기버, 매처와 협력하여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지능, 언어, 공감능력을 통해 서로 협력하여 더 많은 것을 이루도록 진화했을 것입니다. 타인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한 사람은 피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하지는 않더라도 평판이 나빠집니다. 요즘처럼 연결된 사회에서는 평판의 속도도 빠르고 광범위합니다. 유명해진 연예인이 SNS에 학교폭력의 과거가 드러나며 몰락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반대로 모르는 사람을 도운 누군가의 미담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남을 돕고 있는 동물 사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다른 종의 동물을 돕는 사진들을 보면 신기하고 흐뭇합니다. 돕기는 나와 유전자를 공유한 개체로 제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와 연결된 것들로 확장이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좁게는 나와 가족에서 시작하여 지역사회나 민족을 넘어 인류나 자연으로 넓혀질 수 있습니다. 동료를 돕는 행동으로부터 나의 평판이 좋아지는 것이 직접적인 이득을 얻는 방법이라면, 기아 문제나 자연보호를 위한 봉사와 기부는 자신 혹은 다음 세대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게 만드는 간접적인 방책일 수 있습니다. 내 삶에 무리가 되지 않는지, 테이커에게 착취당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며 ‘기버의 행동’을 지속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 칼럼은 부산은행 사외보 2021년 12월호에 ‘이타적인 행동이 내게 주는 이익 - 호구가 되지 않기’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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