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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을 위한 심리학1 -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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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06.14 08:30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1

 

 [정신의학신문 :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결혼에 대해 집에서도 주변에서도 슬슬 압박을 주는데, 지금까지의 성취는 그냥 저 혼자 노력하면 되는 것들이었지만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배우자의 가족 친척들까지 다 감당해야 할 것만 같고, 여성인 저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을 것 같고…. 먼저 결혼한 선배들 중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렇다고 결혼 이외의 삶의 방식은 잘 떠오르지 않아서 겁이 나기도 해요.”

서른 살, 결혼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다. 

결혼은 인생이라는 타임라인에서 늦기 전에 꼭 깨야 하는 퀘스트일까? 아니면 속박일까?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성과와 각본의 함정

 

우리는 인생을 사회에서 제공하는 ‘성과와 각본’대로만 살아가게 되기 쉽습니다. 성과란 취업이나 결혼, 자녀 계획 같은 결과물이고 각본은 사회가 그 나이의 그 성별에게 기대하는 삶의 방식이나 역할 같은 것이죠.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여서 스물네 살에 제일 값어치가 높고, 스물여섯 살이 되는 순간 가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는 농담이 자주 사용되던 때가 있었어요. 성차별에 나이 차별까지 더해진 이 표현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많은 이가 이런 표현들의 영향을 받았고 사회화된 불안을 얻었습니다. 나이를 먹는 건 개인이지만, 그 나이의 그릇, 역할, 감수성을 결정하는 주체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각각의 나이에 대한 감수성을 개인에게 심어줬고 그래서 자기 나이에 맞는 자신만의 자격이나 역할, 정서를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개인 사정으로, 또는 자기 의지로 선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무 큰일도 일어나지 않았지요. 이처럼 우리가 선을 넘어도 생각보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사회 역시 처음에는 선을 넘는 걸 못마땅해하다가, 나중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받아들이는 날이 올 겁니다. 여자 나이를 케이크에 비유한 위의 농담도 이제는 그런 말을 하는 이가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러니 사회의 시선에 너무 속지 않았으면 해요.

 

그때그때의 나이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요. 이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과정입니다.

 

 

인생은 패키지가 아니다 

 

삶을 기획할 때는 가장 먼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원하지만 장벽이 있어 체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일이 하기 싫은 것인지를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이 두 가지를 구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삶에는 여전히 제약이 많지만 과거에 비하면 비교적 자유가 늘어났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도 결혼은 옵션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생존의 어려움이나 사회적 낙인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거쳐야 하는 필수 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렇게 된 건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가 정한 선을 넘었던 덕분입니다. 그들의 용기와 노력 덕분에 자라난 자유를 잘 키워나가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려면 세분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세상은 보통 개인이 할 일들을 패키지로 제안하는데, 그것을 전부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안에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있기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고 무엇이 싫은지 판단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싫은 건지, 되돌리기 어려운 계약을 하기가 싫은 건지, 가족이라는 경제적·심리적 공동체를 만들기가 싫은 건지, 책임이 늘어나는 것이 싫은 건지,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반대로 누군가가 내게 의존하는 것이 싫은 건지, 결혼한 여성에게 기대하는 성 역할, 즉 동등하지 못한 가사, 양육,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부여받는 게 싫은 건지, 자녀를 갖기가 싫은 건지.

 

이렇게 결혼이라는 단어를 잘게 나누어 따로따로 생각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이 좀 더 선명해집니다. 과거에는 결혼을 하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점차 취할 것은 취하고 거부할 것은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사회가 개인의 욕구를 다소 늦게 반영하기에 이런 선택을 할 때 종종 걸림돌을 만나기도 하겠지만, 모든 것을 지레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_freepik사진_freepik

 

 

나만의 새로운 각본을 써나가려면

 

인생의 방향을 정할 때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플롯을 고르는 것보다 새로운 각본을 써나가는 데에는 더 큰 모험이 따릅니다. 그래도 점차 다양한 선택지와 가능성이 생기고, 자신의 새로운 길을 하나의 모델처럼 보여주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으니 힘을 내보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길이 결코 완벽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방식도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고, 각자의 삶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SNS)에 많이 드러냅니다. 그러니 많은 정보를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간접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며 불안을 줄이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추상적인 바람을 실현한 사람을 보면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는 과도기예요. 기존 방식이 여전히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닌 그런 시기이지요.

 

비슷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보통 학교, 직장, 주거지를 중심으로 알게 된 사람은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면 주변의 방식만을 정답이라고 여길 수도 있죠.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벗어나서 다양한 주제의 소모임, 스터디 등에도 참여하면서 적극적으로 미래를 설계해보세요.

 

요즘은 가족의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이 나오는 시기죠. 전통적인 가족도 있지만, 가까운 친구들과 이웃해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1인 가족을 꾸릴 수도 있지요. 다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가족이라 부르든 그렇게 부르지 않든, 끈끈한 네트워크든 느슨한 네트워크든, 같이 살든 아니든,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삶에서 늘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새로운 인생 각본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실망시키기 싫어 고민이 되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땐 빨리 실망시킬수록 좋습니다. 여태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살다가 갑자기 실망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겠죠.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라는 걸 명심하세요.

 

선택은 늘 어렵습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 위에 있는 빵을 포기해야 하기에 후회나 미련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요.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 빵을 더 많이 만들어 자신이 놓친 길을 뒤돌아보지 않도록 하는 거죠.

 

 

결혼을 고민한다면

 

결혼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면, 결혼 후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손해를 고려해야 합니다. 예비 배우자와 각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조건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경제적 관점이든, 심리적 관점이든 결혼을 해도 이것만은 누릴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견디기 힘들어하는지 모르면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 하나마저도 누리지 못하는 결혼생활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다른 사람들은 결코 당신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매일 배우자와 살아갈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자신의 선택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생각해보세요. 나중에 후회해도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더욱 억울하기만 합니다. 인정받거나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마음에는 반드시 보상심리가 따르거든요. 철저히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세요.

 

결혼을 선택했다면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합니다. 자칫하면 결혼에 따라오는 모든 것들을 하나의 패키지로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거든요. 어떤 면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인생의 새로운 각본을 쓰는 일보다 더 어려울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도 가치관에 대한 협상 의사가 조금도 없는 배우자, 또는 배우자를 둘러싼 환경을 마주하면서도 ‘뭐 사람은 좋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후회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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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상대가 나의 가치관을 허락해주는 사람이 아닌 나와 한 팀이 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세요. 그리고 팀 안에 다른 사람(부모님, 친구들, 익명의 타인 등)을 넣지 않을 만한 사람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인으로서 자신이 새로 구성할 가족과의 유대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과거 양육자와 적절한 분리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양육자와 적절히 분리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상대가 부모의 행동에 지나치게 불안해하거나 책임감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배우자인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지를 알아보면 됩니다.

 

사실 이 질문들은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던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배우자보다 부모를 훨씬 더 친근하게 여기지는 않나요? 배우자를 내 뜻대로, 그리고 내 부모님의 뜻대로만 하려고 하지는 않나요?

 

또한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약간의 불편함을 주더라도) 궁극적으로 우리 팀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분은 마지막 질문에 명쾌하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에 수록된 에피소드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가요」에서 발췌·편집했습니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부속 의료원에서 수련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12년간 1천여 명이 넘는 내담자를 만났으며, 여성들이 지닌 다양한 상처에 사회 환경 및 젠더 이슈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고 이 문제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했다. 

 

현재 광화문에서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위주로 진료하면서, 개인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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