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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우정에도 마음의 안전거리가 필요해

Winnipeg101 LV 10 22-01-28 354

입력 2016.05.18 01:50

수정 2016.05.18 02:56
 

 

자꾸 의지하는 동료가 불편한 40대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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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부모처럼 돌봐달라는 동료 부담스러워)

47세 주부입니다. 아이 키우느라 일을 쉬다가 6개월 전부터 다시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거기서 만난 동료와 친해지게 됐습니다. 어느 하루 동료의 집에 놀러 갔는데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는 저에게 “나한테도 애들한테 하는 것처럼 대해주면 안 돼?”라고 묻더군요. 그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그가 답답하게 느껴져 ‘나는 너와 친구로 지내고 싶고 부모처럼 의지하는 건 부담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동료는 자신이 업둥이라고 했습니다. 동료가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며 ‘심리적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와주고 싶지만 그러다가는 왠지 제가 지칠 것 같고, 그 친구가 원하는 걸 못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과거에도 제게 관심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의지하게 하는 성향이 제게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그 친구는 제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왠지 믿게 되고 따라가고 싶다고 합니다. 과거에도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저에게 의지하거나 바라는 걸 느끼면 부담스러워집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의지하는 관계를 원하는데 제게는 그런 기술이 부족한 걸까요.


A. (자유를 침범하는 우정 오래 못가)

우리는 모두 따뜻한 관계를 원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의지해서 그 따뜻함을 얻으려는 사람의 경우 의존적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을 보살피면서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주도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사연을 주신 분은 주도적인 경향이 강하고, 그 동료는 의존적 성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의존성이 강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의지할 만한 상대를 잘 찾아냅니다. 그래서 주도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 주변엔 의존적인 분들이 모여들 가능성이 큽니다.

주도적인 사람은 자신에게 어느 정도 의존하는 분들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관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만족감도 생기기 때문이죠. 그러나 의존 정도가 지나치면 저항감이 생깁니다. 우정이 지속되려면 적절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공간이라는 게 뭘까요. 이와 관련해 케임브리지대 인류학 교수 엘런 맥팔레인의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우정은 존중과 예의에 기초합니다. 그 존중과 예의는 밀접함에 근거하지만 동시에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때 거리 두기는 타인의 개별적 주체성, 이를테면 개별적인 욕구와 필요, 그리고 그 사람의 사회적 공간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의 시간과 공간, 욕망을 강제로 침범한다면 그것은 육체적 학대 못지않은 심각한 폭력입니다. 그만큼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공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린 하나라고? 우린 다른 사람이야

‘너 저 친구와 가깝니?’라는 질문을 우리는 종종 합니다. 둘 사이의 친밀도나 우정의 정도가 궁금할 때 던지는 질문입니다. 우정이 생기기 위해서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져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지식이 늘고 마음 상태에 대해서도 공유하게 됩니다. 친구와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최고의 형태는 침묵이라고 하죠. 우정이 깊어지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이렇게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실제 물리적 거리도 가까워집니다. 만나는 횟수도 늘어나고 취미나 여러 활동을 함께하게 됩니다. 비밀이 없고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단짝 친구가 되는 거죠.

외로운 인생에 이런 단짝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단짝 친구라도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내 자유가 상대방에 의해 침범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입니다. 두 사람이 아무리 가깝고 잘 맞는다고 해도 모든 것이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 때문에 따뜻함을 느끼지만, 여전히 우리는 다른 사람인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정이 유지되려면 두 사람 사이에 적절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우정을 추구하는 사람 중에 친구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100의 우정을 줬는데 상대방은 80만을 주어 섭섭하다. 그래서 100을 요구했더니 떠나가 버렸다’는 겁니다. 완벽한 우정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움을 더 크게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공간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밀함과 더불어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적정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논리적인 설득보다 ‘밀당’이 효과적

설득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방이 이쪽 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여러 가지로 깨우쳐 말함’입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고 이것이 행동까지 변화시키도록 기대하는 거죠. 논리가 결합한 강력한 권유를 하면 상대방이 설득될 것이라 기대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약을 꼭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약물 투여의 중요성을 여러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열심히 설명하면 대부분 환자는 계속 멀리 도망갑니다. 그래서 제가 포기하고 ‘더 고민해 보시고 자연 치유가 잘 안 되면 다시 찾아오세요’라고 하면 오히려 그때 찾아옵니다. 정말 약을 안 먹어도 되겠냐고 걱정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다시 약을 드시겠냐고 물으면 다시 약은 먹기 싫다며 뒤로 물러나 버립니다. 밀고 당기는, 밀당의 연속인 셈이죠. 설득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에너지 소모가 심합니다.

설득은 심리학적 관점에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은 물론이고 나를 설득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도 어렵고 금연·금주도 어려운 것입니다. 해야 하는 것을 몰라서 안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설득이 어려운 이유는 논리적 권유에 대한 저항 때문입니다. 저항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의 이중성 때문인데요. 이중적인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가지는 것을 양가감정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살을 빼야 한다와 나는 살을 빼기 싫다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살을 빼자’ 나에게 권유를 하면 반대쪽 마음이 ‘흥. 빼기 싫어.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데’ 저항하게 됩니다.

양가감정의 저항 심리는 스스로 독립된 존재로서 느끼는 자유를 지키려는 본능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도 바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만큼 자유가 중요한 욕구인 거죠. 사람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원하면서도 막상 상대방이 조언을 해주면 상대방의 생각이 내 생각으로 침투해 나를 조정하고 내 심리적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느껴지면서 저항하는 마음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시간 내서 열심히 조언해주었더니 고마워도 안 하고 심지어 잘난 체한다며 본인 뒷담화 하고 다니는 친구 때문에 속상해서 화병으로 오신 분, 사람의 양가감정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거죠. 상대방이 저항을 보이면 더 강한 권유로 압박하기 쉬운데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저항감은 더 커져 관계 자체가 나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소중한 상대방을 설득하고 싶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기다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대방에게서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스스로 나올 때까지 경청하고 기다려 줄 때 저항감 없는 설득이 시작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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