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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왜 주위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

Winnipeg101 LV 10 03-27 143
  • 2014. 3. 17. 07:22
  • 책으로 보는 세상

 

 

 

 

우리는 누구나 착하고 친절한 사람을 좋아한다. 

고약하고 심술궂어서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보다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해를 가하기는커녕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착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착한 사람은 왜 주위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에서

바로 그 선의(善意)가 주위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자신은 좋은 뜻에서 행하는 일이라고 해서 타인에게도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자 참으로 유아적인 발상일 수도 있음을 짚고 있다.

아니, 심지어 저자는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적당히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자신이나

주변사람들을 덜 불편하게 만들 뿐 아니라 스트레스도 덜 받는 삶을 사는 지름길"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착한 사람이 주위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니?

얼핏 납득이 안 가는 말처럼 들리지만,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가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지난주에 올린 포스팅 <세 번 결혼하는 여자와 착한아들콤플렉스>에서와 같이 

결혼 후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착한아들 역할에 충실하다가 

정작 자신의 아내와 자녀를 불행에 빠뜨린 남자들도 그 말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립하지 못하면 실제로 착한딸, 착한며느리, 착한아내,

착한남편, 착한엄마, 착한아빠콤플렉스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착하게 사는 것이 가장 원칙적인 삶의 자세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선의가 자칫 주위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차원으로까지

가게 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착함>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족이나 친구, 혹은 직장동료들 중에 지나칠 만큼 착한 사람 때문에

대략난감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가장 흔한 예는 자신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지나치게 착한 사람 옆에 있다 보면

상대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경우다. 예전 직장 동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무슨 일에나 앞장서고, 윗사람 말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예스맨인데다,

누가 어떤 부탁을 하든 거절하는 법이 없는 그를 다들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그는 언제나 산더미 같은 일에 파묻혀 허덕였고,

때로는 주변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으면 일을 끝내지 못하는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일을 나눠 한 셈이 되고 말아서, 주변사람들은 일은 일대로 하고

공은 그 친구에게로 돌아가니 씁쓸해하기도 했다.

 

이처럼 선의는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큰 부담을 주기도 한다.

또 하나, 정이 많아서 쉽게 남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은

도움을 받는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도 엄살을 부리고 남한테 기대게 한다는 것이다. 
또 이와 반대의 경우, 예를 들어 연세드신 어르신은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은데, 
착한 사람이 노인을 공경한다는 마음에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면 그분은 아예 기력을 잃을 수가 있다. 
즉 잘해주려고 한 일이 상대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오히려 가장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서라도 남이 원하는 나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 경우 천성이 착한 사람은 자신이 그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마음으로는 싫은데도 좋은 척하며 살다 보면 기를 탕진해

결국 아무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없게 되는 폐해가 생길 수도 있다.

 

"평화는 선인, 즉 착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지되지 않는다.

반면에 악인들 사이에서는 평화가 가능하다"고 어느 가톨릭 사제는 말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한 부분을 충부히 인식할 때

겸허해지게 마련이며, 상대의 마음을 알고 조심하고,

쉽게 화를 내거나 책망하지 않으려고 주의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의란 분명 인간이 가진 위대한 덕목이지만, 사람에게 내재된 밝고 어두운 양면을

잘 분별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은 피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극단적인 악인과 극단적인 선인은 똑같이 주변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심도있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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