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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울고 교육에 웃는 자영업자 코리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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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르포·캐나다의 한국인·한국인 사회

기사입력 | 2005.04.21 14:45

 

 

그렇다면 과연 캐나다에는 한국계 교민이 얼마나 살고 있을까? 캐나다에 사는 한국계 교민은 미국에 비해 훨씬 적다. 영주권자 혹은 시민권자의 자격으로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교민이 150만 명 가량인 데 비해, 캐나다는 10만이 조금 넘는다. 1990년 이후 약 10년간 새로 이민을 가는 한국인의 수도, 연도별로 편차가 매우 크기는 하지만, 미국행이 해마다 1만명 안팎이었고 캐나다행은 5000명 안팎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몇 년간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이 급증해 1999년에는 처음으로 미국행을 앞질렀다는 보도가 있었다.

나라의 크기를 감안하면 미국은 캐나다에 비해 이민의 문호가 좁다. 미국으로 신규이민을 가려면 ▲가까운 연고자의 초청을 받아 긴 세월(경우에 따라 10년 이상) 기다려 비자를 받거나 ▲거액의 돈을 투자하거나 ▲특별한 직능이 있어 고용초청을 받는 경우 등으로 한정돼 있다. 캐나다는 가까운 연고자가 없거나 적은 돈을 묻어 둘 사람도 받아들인다.

 

10만 명이 조금 넘는 캐나다의 한국계 교민 중 5만 명 가량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온타리오 주 광역토론토(토론토 및 그 인접 도시)에, 3만 명 가량이 세 번 째로 큰 도시인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광역밴쿠버(밴쿠버 및 그 인접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 밖에 캘거리(앨버타 주), 에드먼튼(앨버타 주), 몬트리올(퀘벡 주) 등에 각각 2000∼4000명의 한국계 주민이 산다.

 

한국계 교민의 수에 관한 믿을 만한 통계는 한국 외교통상부, 캐나다 주재 한국 공관, 그리고 캐나다 각 도시의 한국 교민회 어느 곳에도 없다. 실제로 교민 수의 집계는 어려운 일이다. 국내에서 이민 출국신고를 모으면 될 듯하지만 캐나다로 왔다가 제3국으로 나가는 사람과 제3국에 갔다가 이 나라로 오는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2세·3세 등 후손의 출산은 한국 당국에 신고조차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미신고 역이민자(이민 왔다가 되돌아간 사람), 불법체류자 등의 요인까지 있어 더욱 헤아리기 어렵다.

가장 최근의 센서스는 1996년 5월 실시돼 98년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캐나다 전체 한국계 주민 수는 6만4840명이고, 그 44%인 2만8555명이 광역토론토에, 26%인 1만7085명이 광역밴쿠버에 산다. 이 수치를 기초로 집계 누락 요인과 조사일 이후 신규이민자, 역이민자, 자녀출산 등을 감안해 ‘대강’ 추정한 수치가 이 글에 나오는 교민 수다. 이들 상주 교민 외에 수만 명 수준의 한국인 유학생(주로 어학연수자)도 이 나라에 와 있다. 그러나 유학생은 체류기간이 짧고, 주거 이동이 빈번해 집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 센서스를 통해 캐나다 내 한국교민의 약 70%가 토론토와 밴쿠버 두 도시에 집중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 뿐 아니라 캐나다로 새로 오는 이민자 대다수가 대도시로만 몰리는 경향을 보인다. 소도시 또는 벽지로 인구가 분산해 국토를 균형 있게 가꾸려는 것이 한국은 물론 캐나다에서도 중요한 정책 과제이고, 이민 당국도 이를 위해 몇 가지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나 성과는 신통치 않은 것 같다.

 

한국인 캐나다 이민의 역사도 살펴보아야 할 사안이다. 오늘날의 캐나다 땅에는 프랑스인이 먼저 식민지를 개척했다. 7년전쟁(1756∼1763년)에 진 프랑스가 북미지역에서 손을 털고 나간 후 그때까지 주로 오늘날의 미국(동부)에 해당하는 지역만 차지하고 있던 영국이 캐나다의 동부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때부터 주로 영국계 주민들이 이 땅으로 새로 이주해 왔다.

19세기 말부터 캐나다 서부에 정착할 필요성이 커졌다. 그냥 놔두면 미국이 캐나다 서부를 차지해버릴 기세였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는 영국계(앵글로 색슨)만으로 서쪽에 정착할 주민을 채울 수 없어 ‘앵글로 색슨보다 훨씬 열등하다’고 믿었던 영국 이외의 유럽(동유럽·남유럽)인의 이민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유색인종의 유입은 이민법을 통해 사실상 금지했다.

이민법에서 유색인종 차별조항은 1962년에야 완전히 없어졌다. 이는 복 받은 땅에 사는 혜택을 세계 만민과 함께 누리자는 뜻이었다기보다는 당시의 국제정세 때문으로 해석된다. 냉전 상태에서 세계가 동·서 진영으로 양분되자 유색인종이 대부분인 제3세계 사람들을 가급적 친서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이 먼저 이민법의 인종차별 조항을 삭제했고 캐나다·호주가 이를 뒤따랐다.

이때부터 유색인종의 캐나다 이민이 급증해 1990년대 이후 이민자의 인종구성은 백인이 30% 이내이고 아시아계가 50∼60%를 차지한다.

 

한국인 캐나다 이민 역사

그러나 오랜 기간 백인 위주로 이민을 받아온 결과, 1996년 센서스에서 이 나라 전체 인구(2853만) 중 소수민족(유색인종)으로 조사된 사람의 비율이 12%에 불과하다. 다만 소수민족 신규이민자가 주로 정착하는 대도시에서는 그 비율이 매우 높아 광역토론토는 32%, 광역밴쿠버는 31%가 소수민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인들의 캐나다 이민도 1962년 이민법 개정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캐나다 한국 교민 중 초기이민 세대라고 볼 수 있는 1960∼70년대 이민자는 크게 세 부류로 갈라진다.

첫째 부류가 전문직 종사자, 특히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들이다. 당시 캐나다는 부족한 의료인력을 이민으로 충당하던 때여서 그들이 이민법 개정에 따른 기회를 가장 먼저 잡을 수 있었다.

 

둘째 부류는 파독광원(派獨鑛員) 출신들이다. 경제가 암울하던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 정부는 외화획득과 실업해소의 일거양득을 노리고 서독의 탄광에서 일할 젊은이들을 대거 내보냈다. 그 무렵에 한국의 간호사도 많은 수가 서독으로 갔다. 파독광원 중에 계약 기간 3년을 채우고는 귀국하는 대신 제3국행을 택한 사람이 많았다. 이들의 제1 희망 행선지는 미국이었으나 비자 얻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던 캐나다로도 많이 왔다. 최종적으로 캐나다에 온 파독광원들이 최소 300명쯤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셋째 부류는 남미로 갔던 이민자들이다. 1960년대 초부터 한국인들이 남미의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볼리비아 등지로 대거 이민했다. 이들은 대개 농업이민자 자격으로 떠났으나 현지에서 분양받은 땅이 농사짓기 어려운 미개간지인지라 이내 도시로 나왔고, 이중 상당수가 미국 혹은 캐나다로 옮겨 자리잡았다.

이들 초기 이민자들을 핵으로 그 친척들이 캐나다로 이주해 왔다. 현재 캐나다는 연고초청에 의한 이민을 직계 존비속으로 제한하고, 초청자의 의무(피초청자의 경제적 자립 보장 등)를 까다롭게 해 가급적 그 수를 줄이려하지만 당시에는 “호적등본에 이름이 함께 오른 사람이면 다 부를 수 있다”고 까지 말할 정도로 연고초청의 문호가 넓었다.

이들 세 부류 이외에 뒷날(1979∼1982년) 매니토바 주 위니펙의 봉제업체들이 한국의 근로자(주로 여성) 약 400명을 초청한 것도 이 나라 한국교민 수가 증가하는 데 큰 변수가 됐다.

 

초기 이민과 그들의 연고초청에 의한 이민이 1970년대 중반까지 활발하다가 그 뒤 약 10년간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은 소강상태를 맞았다. 이는 당시의 한국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이민을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이곳 교민사회에 알려져 있다. 3공 정부가 유신 이후 반체제운동의 보루인 재외교민사회를 더 부풀리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상황이 바뀌고 캐나다의 이민제도 중에 경제이민이라는 범주가 신설(1986년)된 것을 계기로 1987년부터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이 다시 활성화됐다. 

경제이민이란 캐나다 노동시장에 꼭 필요한 인력이 아니라도 이 나라에 와 자영업을 하거나 일정 기간 돈을 묻어둬 결과적으로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이 나라 연방정부가 신설한 이민 유형이다.

캐나다 정부는 해마다 20만 명 안팎(1990년대 기준)의 신규이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새 이민자가 끊임없이 와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구조여서 앞으로도 이민의 문호를 갑자기 좁히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여성의 출산율은 평균 1.6명으로 거의 고정돼 있어 만약 신규이민의 유입을 차단하면 인구가 줄어들게 되므로 경제 문제를 떠나서도 이민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캐나다 해마다 20만명 이민 받아

게다가 급진전하고 있는 인구의 노령화 현상을 중화시켜야 하고, 또 해마다 고급두뇌가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충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 이민의 영입은 캐나다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들이 늘어가는 데 따른 사회적 저항 때문에 무작정 이민의 수를 늘릴 수도 없다.

한국은 매년 이 나라에 신규로 이민 오는 인원의 국적별 랭킹에서 10위 안에 든 적이 없었으나 1998년 처음으로 8위, 1999년에는 5위를 차지했다. 1999년에 중국·인도·파키스탄·필리핀 순으로 1∼4위를 기록했다. 2000년에도 총 7602명의 한국인이 이민 와 역시 5위를 차지했다.

캐나다 이민법은 이민자의 유형을 크게 ▲숙련기술인력(skilled worker) ▲경제이민(business class) ▲기타(가족초청·난민 등)로 나누고 있다. 1999년에 이 나라로 온 한국인 신규이민자는 동반가족을 포함해 모두 7212명이며 이중에 숙련기술인이 54.1%인 3901명, 경제이민이 37.4%인 2700명, 기타가 8.5%인 611명인 것으로 이 나라 이민부는 집계했다. 경제이민만 놓고 보면 1999년 이 범주의 이 나라 총 이민자(1만3010명) 중 한국인이 20.8%로 1위를 차지했고, 타이완·중국·홍콩·이란 등이 그 뒤를 따른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바람직한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상(像)을 상정한다면 땅 좁고 인구 많은 한국에서 이루기 어려운 꿈을 캐나다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오지의 천연자원개발, 관광개발, 농업진흥 같은 일선에 나서거나 그 이론을 제공하는 일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캐나다의 한국인들이 두각을 나타낸다고 볼 수는 없으나, 2세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한국에서 적당한 사람이 새로 올 경우 우수한 품성이 빛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영어(또는 프랑스어)실력과 캐나다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가급적 젊으며, 진취적 기상을 갖춘 사람들이 많이 온다면 본인의 삶도 풍성해지고, 캐나다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우수인력이 빠져나가는 손실도 있겠지만 인구 압력이 줄고 해외에 교두보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고국에도 이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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