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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을 왜왔어요..

Winnipeg101 LV 10 12-25 85

2010. 9. 13. 01:36

 

 

이민을 왜가고 또 이민을 왜 왔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특히, 한국인이 아닌 남미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에 사회불안이 아닌 이상 한국처럼 살기 좋은 나라에서 왜 이민을 캐나다로 왔는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의 대다수 국가들이 치안이 불안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반란군과 싸움에서 적으로 오인되어 살해되기도 한다.

 

동구권의 죠루지아, 보스니아등 내란에 휩싸인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난민 또는  생존하기 위해 이민을 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왜 이민을 가는지 모른다. 실제로 한국인들 사이에도 왜 이민을 가서 고생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말한다. 내나라 내땅이 좋다고들 한다. 실례로 일본의 원숭이의 집단문화만 돌아봐도 살기 척박한 일본땅에서 이민을 간다거나 일본을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간접적으로 의미하고 있다.

 

일본의 겨울 원숭이는 겨울을 지내기 위해 높은 산의 온천에서 지내고 있다. 밖에 온도가 영하 40도라면 온천내에 온도는 영상 20도로 약 60도의 차이가 난다. 그러나 모두가 온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두머리 숫놈 원숭이가 어린 원숭이와 나이든 암놈만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들어가지 못한 원숭이는 얼어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엄격한 규율에 의해 암놈과 어린 원숭이만 긴 긴 영하 40도의 추위의 겨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무리에 버림받는 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일본의 씨름 쓰모를 보아도 한국씨름과 달리 작은 원에서 상대방을 밀어내기이다. 이것은 일본 원숭이처럼 온천 풀에서 같은 무리가 아닌 원숭이를 밀어내고 쫒아내는 것과 같다. 쓰모의 작은 원은 어떤 무리를 상징하고 일본 땅의 심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인은 일본에서 벗어나서 산다는 것 자체가 수치이고 실패자가 됨을 의미하기에 해외에 일본인들은 중국과 한국과 달리 타운이 없이 조용히 산다.

 

 스모의 경기는 단판으로 리그전에 의해 성적이 가장 좋은 두명이 결승전에 출전하는 것이다. 3판 2승제와 무릅을 굻는 것 같은 한국형 씨름과 차이가 많다. 일본 스모는 밀리지 않기 위해 덩치가 커야 하는 풍요를 상징하고 축제를 기원하는 의식이 시합전에 열린다. 이 모든 것이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 일본씨름인 스모를 해석할 수 있다. 즉, 풍요를 벗어난 무리는 가난과 궁핍에 시달려야 하는 패배자이자 수치인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사는 일본인을 무의식적으로 조용하게 산다.

 

반면에 한국인은 북한에 지도자들이 이미 러시아에서 교육받고 3대에 이르는 후계자들도 스위스의 국제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남한의 경우에 일본에 영향력이 큰 경우 사회에 지도자들이 동경대, 와세다대학 출신들이 한국에 많은 지도자역할을 하다가 미국에 영향력이 크면 또 다시 이승만대통령처럼 미국과 가까운사람이 지도자가 되면서 각계 각층에 하버드, 스텐포드 등 미국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층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중국의 영향권 점점 더 커지게 되면 중국의 북경대학이나 유명대학 출신이 또 중국의 지도충과 인맥을 이어서 지도층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의 인맥은 열강 대국의 지원없이는 자립하기 힘들다는 의미가 된다. 북한의 김정일이 어려우면 제일 먼저 방문하는 곳이 과거에 소련이었다면 지금은 중국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약 200만명이다. 그리고 캐나다가 약 20만명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전체 해외교포가 약 700만명 정도로 예상이 된다. 전체 남북한 인구 7천만명의 10퍼센트가 해외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이민의 역사는 단순하게 미국을 가기 전인 임진왜란 이전부터 진행됬다고 보아도 된다. 이민은 어제 오늘이 아닌 아주 오래 전부터 진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민을 갈수 있는 형편이 되면 해외로 나간다는 의미가 된다. 단순하게 잘사는 나라만이 아닌 못 사는 나라부터 치안이 불안한 나라까지 한국인이 살고 있지 않은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북한에도 캐나다에 시민권을 지닌 자들이 선교활동으로 도움을 주고 그리고 거주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치안부재의 나라에 부터 아프리카의 섬까지 모든 곳에 한국인이 나가 살고 있다. 아마도 일본인들보다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자마이카에서 슈퍼하는 한국인부터 뱅글라데시의 옷,신발 공장까지 세계 곳곳에 넓게 퍼져 살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퍼센트가 바로 미국, 중국, 캐나다, 영국, 호주등이며 아시아에는 말레지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까지 각 가지 직업을 하면서 어디를 방문하던 한국음식점에서 된장찌게, 육계장등을 주문할 수 있다.

 

독일 탄광인부로 갔다가 캐나다로 정착한 사람, 그리고 독일에 간호원으로 갔다가 그곳에 눌러 앉은 사람, 뉴질랜드나 브라질로 이민 갔다가 다시 캐나다로 온 사람등 각기의 사연이 있다.

 

여기서 "이민을 왜왔어요?"라는 질문에 제각기 사연이 있겠지만 정답은 없다. 혹시나 더 잘 살아 볼까 하다가 역시나 더 고생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민한 사람들이 한국에 계속 살고있었다면 더 잘 살았을 까? 그것 역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주식이 조금 남으면 팔아치우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그때 그때마다 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캐나다로 이민왔다가 살 곳이 못된다고 한국에 갔다가 또 몇년간 한국에 살다가 적응이 안된다고 또 캐나다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이민을 왜왔냐고 물어보야 뚜렷한 답이 없다. 실제로 어디에 살던 적응하기 힘든 성격 소유자일 수도 있다.

 

한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는 "역마살"이 낀 사람은 정처없이 여기저기 떠 돌아 다녀야 직성이 풀린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기 힘든 젊은이를 볼때 무엇때문에 저렇게 많은 회사를 옮기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사실은 본인은 더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공부하러 왔다가 눌러 앉은 사람, 해외로 여기 저기 떠 다니는 세일즈 맨 또는 공사장 기술자들이 허파에 바람들어 이민 온 사람, 혹시나하고 꿈꾸다가 역시나 하고 개털된 이민자들, 차별이 싫어 왔다고 하다가 더 많은 차별을 받는 이민자들, 맨몸으로 와서 거대한 재산을 일구어 낸 거부 이민자들 모두가 사연은 다르지만 똑같은 질문을 받는 것이 "왜 이민을 왔어요?" 그리고 " 왜 이민을 가서 고생하는지~!" 이다. 이것은 다른 이민족간에도 질문을 하는 것이 바로 " Where are you from?" 이다. 이 질문이 너 어느 나라 출신이냐 이다. 너 어디서 이민왔냐와 같은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이민 2세가 되어도 질문이 계속된다.

 

한국에 이민을 가는 이유는 지난 임진왜란시대 이전 부터 지금까지 지속됬듯이 앞으로 지속될 것이면 단지 그 이민인구가 시대변천에 따라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지만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흥부전에서 박을 타는 순간에 대박을 맞은 것이 논어, 맹자의 중국의 책에 금은 보화와 화초장인 청나라 자기장이 나왔듯이 우리 민족의 무의식에는 이미 외제 물건과 외국교육, 외제차가 좋은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박의 꿈은 바로 외국에서 공부하고 사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외국에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이 잘못됬다고 자리를 잡는 일본문화의 스모같은 것이 정착하기 전까지는 꾸준하게 외국으로 이주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 이유가

- 자녀 교육때문에

-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 쾌적한 환경을 위해

- 유학을 위해

- 돈 벌이를 위해

- 배우자를 따라

- 어학연수를 위해

 

이 모든 것은 핑계일 뿐이다. 한국인들에게 해외로 가려는 것은 욕구의 본능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한국인 촌을 만들고 한국인 사회를 만드는 것 역시 본능적이다. 호주부터 미국에 워싱턴까지 "떡집" 간판은 절대 영어로 안쓰고 순수 한국말로 붙일 것이다.

 

단지, 해외로 이민으로 가고싶어도 갈수 없어서 못가는 것이 형편이 안되어 못가는 것이다.

 

한국인의 삶은 잘 살수 있다는 곳으로 끊임없이 이동되고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시키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직업을 구하고 삶을 개척해 나간다. 그리고 또 중국에 가서 공장도 차리고 식당도 차리고 옷가게도 차리고 삶을 개척해 나간다. 잘 살수 있는 곳을 찿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동을 하는 것이다. 일본의 인구이동이 내부 중심적이면 한국인은 외부 지향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다 사는 곳이 힘들면 듣는 말이 바로 " 왜 이민을 가서 고생하는 지 " 모르겠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살기가 좋고 돈이 되면 무작정 또 떠나는 것이 한국인들이다.

 

이민을 왜왔어요는 서울에 사람이 몰려서 사는 순간부터 이미 듣는 말 "고향이 어디죠?"와 같다.

서울 간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민간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삶에 과정이며 진행형이 바로 "이민 왜가니와 왜갔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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