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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 불안한 실존. 죽음의 충동. -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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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11.30 08:00

수정 2021.11.30 11:47

 

 

정신과 의사와 함께 보는 넷플릭스

[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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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선 그 놀이를 오징어라고 불렀다.

승리하기 위해서 공격자는 오징어 머리 위의 작은 선 안을 발로 찍어야 한다.

 

이 때, 수비자에 밀려 선을 밟거나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그래,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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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도입부이다. 나레이션은 향수 어린 리코더 소리와 함께, 그 시절 그 놀이의 룰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마지막엔 ‘너 죽었다!' 라며 무심히 외치던 그 시절의 말을 빌려 탈락한 친구들의 운명을 무겁게 읊어준다.

 

다시 한번 더 섬뜩하게 내뱉는다. 탈락하면, '죽는다'

 

[오징어 게임] 속 참가자들은 탈락하면 진짜로 죽는다. 피를 튀기며 즉사한다. 그들은 왜 목숨을 내놓고 끔찍한 살인게임에 참가하는 것일까.

 

이러한 류의 많고 많은 데스게임 작품들 중 오징어 게임이 돋보이는 지점은 참가자들의 자발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제발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이들을 주최측은 민주적인 투표로 돌려 보내준다. 하지만 가장 먼저 집에 돌려보내 달라고 한 사람마저 결국 다시 돌아온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이 살인 놀이에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말로 내놓는다. 그리고 죽는다. 진짜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_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_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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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를 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2화의 소제목은 '지옥'이다. 돌아간 현실은 판타지 같던 오징어 게임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하다. 그리고 비참하다. 그 지옥을 목도하며, 관객은 참가자들의 선택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나라도 게임으로 돌아가고 싶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공감하게 된다. 오징어 게임은 그래도 456억을 벌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그들은 456억을 벌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었을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단 한 번만 주춤해도 총탄에 즉사하는 그곳에서 456억을 버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돌아가는 것이었을까?

 

오징어 게임으로 되돌아가는 그들의 마음은 정말로 '큰돈을 벌어와 떵떵거리며 살아야지!'라는 포부로 설레고 있었을까? 아니면 스스로 도살장에 걸어 들어가는 듯한 비탄함과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

 

오징어 게임으로 돌아가는 이들, 아니 돌아가야만 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큰돈을 벌어서 인생 역전을 하지 못할 바에는, 그러니까 이대로 계속 이렇게 살 바에는 그냥 죽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있었을지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상우는 정말로 자살을 하려던 참이었다. 사실 상우뿐만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을 향해 되돌아가던 그들 모두, 자살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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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의 창시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 중 죽음을 향한 충동이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기본적인 생존 본능과 성적인 충동(에로스)으로 해석했다고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후기에 이르러 그 두 가지 본능에 더해 또 하나의 본능적 에너지를 도입했다. 그것이 바로 타나토스, 죽음 충동이다. 무생물적 존재에서 비롯된 인간은 누구나 다시 무생물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 죽음과 파괴를 향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타나토스에 대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지나치게 사변적이라는 비판을 종종 받기도 한다. 현재 정신분석적 치료의 주류에서는 외면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에게 동물적인 생존 본능과 더불어 그 정반대인 죽음 본능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무척 흥미롭다. 그만큼 수많은 철학자들의 고찰이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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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살을 하는 존재이다. 꼭 자살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분명 이모저모를 통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가곤 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가.

 

살고 싶더라도 우울과 고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음으로 밀려나는 결과일 수도 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무언가를 지키거나 이룩하고자 하는 신념의 발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깊은 심연에는 죽음을 향한 충동이 있을 수 있다. 스스로 의식의 촛불을 끈 채 무념무상 무의식의 존재인 흙이나 돌멩이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 말이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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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와 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존재한다.

 

그럼 차이점은 무엇일까.

 

돌멩이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고뇌하지 않는다. 특별히 무슨 노력을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존재할 수 있다. 그 어떤 고통도 노력도 없이 존재할 수 있다. 돌멩이는 아무 의식 없이 그냥 거기에 그렇게 존재한다.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의식과 자아는 그냥 존재할 수 없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가 의미하는 바는, '생각할 수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구도 혼자서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해야 하고, '누군가'에 의해 생각되어진다. 무언가, 누군가가 없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되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나의 의식과 자아는 고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고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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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는 투자 실패로 수십억을 빚졌다. 새벽 또한 돈만 있으면 가족을 데려올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돈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도둑질까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상우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빚이 아니라 어머니와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었다. 생선가게를 하시는 어머니가 가게를 잃고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이었다. 새벽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또한 가족들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데려온 남동생의 원망이었다.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남북으로 갈라졌다는 죄책감이었다.

 

알리가 몇 달간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손가락까지 잃어가며 일했던 것은 고향에서 데려온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함이었다. 기훈의 가장 큰 고뇌와 두려움이 딸과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다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자명하다. 심지어 인간미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덕수에게도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믿던 부하의 배신이었다. 오징어 게임에 들어와서도 보여주지만 덕수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부하들의 인정이었다.

 

그들을 오징어 게임이라는 자살 게임으로 밀어 넣은 것은 결국 마지막 남은 '누군가'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그 존재를 잃으면, 그 존재의 인정과 사랑을 잃으면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그것을 잃게 되면 스스로의 존재를 어떻게 지켜내고 증명해야 할지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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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나 라캉 같은 철학자들은 '죽음 충동'을 곧 의식이 없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충동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는 누구나 돌멩이가 되고 싶어 하는 본능적 충동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존재를 빚지고 있다. 따라서 불안하다. 갚을 수 없는 그 빚을 갚으며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되다. 그렇기에 그 고됨이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우리를 계속 자극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고된 노력 없이도 그냥 존재할 수 있는 존재, 돌멩이와 같은 존재를 부러워하는 충동을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돌멩이가 되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 돌멩이, 의식이 없는 존재, 비인간화된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충동이 있다. 어른들이 이따금씩 술을 부어 의식을 지우고자 하는 것도,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탈락한 친구에게 스스럼없이 ‘너 죽었다!’라며 무서운 말을 하는 것도, 모두 무의식 깊은 곳에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비인간화와 죽음의 충동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의 의식을 파괴하고 돌멩이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을 품고 살아간다. 고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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