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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박해수 분)를 통해 본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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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11.14 08:00

 

 

심리학 렌즈 (13)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글에는 오징어 게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 역사 상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오징어 게임. 한국인으로서 기쁜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오징어 게임 이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본다면 씁쓸함도 함께 든다. 물론 오징어 게임의 흥행에는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열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결국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을 건드려야만 흥행을 뛰어넘는 대박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이 건든 무의식은 무엇일까? 오징어 게임은 456억이라는 상금을 두고 목숨을 건 경쟁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극한의 경쟁은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지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목숨까지 걸진 않는다. 아니다. 경쟁에 치여 받는 스트레스가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생각해보면 우리도 목숨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이라는 목표를 향해 목숨까지 걸면서 극한의 경쟁을 하는 오징어 게임을 보며 우리는 ‘현실의 나’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자본주의라는 규칙 하에 극한의 경쟁을 통해 살아가야 한다는 이 명제를 동의하고 이 게임에 참여한 바가 없다. 그냥 태어나보니,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어렸을 때는 이 자본주의가 얼마나 공정하고 평등한 제도인지를 교육을 통해 세뇌받아왔다. 그렇다. 세뇌였다. 막상 어른이 되어 본 게임에 참여하고 보니, 대부분은 공정하고 평등한 줄 알고 살과 뼈를 깎아 가며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 게임장 밖에는 손쉽게 오십억 게임을 하고 있는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_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_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임 진행자인 프론트맨은 유독 공정과 평등을 강조한다. 미리 게임 정보를 빼돌려 공정함이라는 규칙을 깬 참가자를 공개 처형할 때 프론트맨이 했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이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뭔가 교과서에서 본 듯한 말이다. 하지만 그 게임장 밖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철저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돈과 권력을 가진 VIP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뼈와 살을 깎아가며, 공정과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에 희생하고 있지만, 그 수혜자는 나 자신이 아니라, 자본주의 최상층에 위치한 일부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별 노력 없이 편하게 소파에 앉아서 자본주의 개미들의 게임들을 바라만 보면 되니까 말이다. 필자는 오징어 게임을 보며 어쩜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아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징어 게임이 이렇게 큰 흥행을 하게 된 데에는 우리 무의식 속 깊은 곳에 있는 이러한 지점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자본주의가 교과서 상으로는, 그리고 입 번지르르한 정치인의 입으로는 공정과 평등을 강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게임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누구보다 열심히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조상우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징검다리 게임에서 조상우(박해수 분)는 자신의 앞에서 전진하는 것을 머뭇거리는 유리공을 밀어 떨어뜨린 후 징검다리 게임을 통과한다. 이때 성기훈(이정재 분)은 조상우에게 왜 그랬냐며 따지듯이 묻는다. 이때 조상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죽도록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라고. 사실 징검다리 게임을 통과할 수 있었던 8할의 공은 자신이 밀어 떨어뜨린 그 유리공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게임을 보면 알겠지만, 운이 크게 작용을 하지, 노력과 머리는 크게 쓰여지지 않는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어떤 노력과 머리가 필요할까? 징검다리 게임에서 게임의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뽑은 숫자는 어떤 노력과 머리가 필요한 것인가? 구슬 게임은? 그런데 우리는 착각한다. 내가 얻어낸 성과물은 내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시스템 속에서 적응한다. 그리고 시스템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것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있어서 공유드리고자 한다. 최후통첩 게임이라는, 심리 실험에서 자주 쓰이는 게임이 있다.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제안자가 되고, 한 사람은 수용자가 된다. 과학자가 제안자에게 10달러를 주고, 제안자 마음대로 수용자와 그 10달러를 나눠가지라고 한다. 이때 제안자가 제안한 안을 수용자가 받아들이면 그 돈을 나눠 갖게 되지만, 수용자가 거부하면 아무도 돈을 가져갈 수 없는 게임이다. 이때 대부분은 제안자 : 수용자 = 6 : 4의 비율로 나눈다. 물론 9 : 1의 비율로 나누는 게 가장 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이러면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기분이 나빠 제안을 거부해 아무도 갖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제안자도 수용자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대부분 6 : 4 정도로 나누고 수용자도 대부분 이를 수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조작을 하나 가하면 실험의 결과가 바뀌게 된다. 제안자와 수용자를 과학자가 랜덤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고, 아무런 시험을 보게 한 다음에 시험 성적이 높은 사람들을 제안자로, 시험 성적인 낮은 사람들을 수용자로 나누어서 실험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대부분 제안자 : 수용자 = 7 : 3의 비율로 제안자가 더 많이 가져가는 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아무렇게나 본시험과 최후통첩 게임에 도대체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그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잘 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많은 자원을 가져가고, 또 수용자는 거기에 동의를 해준다.

 

아마도 이 모습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많이 닮아 있을 것이다. 필자도 시험을 잘 보면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진짜 뼈와 살을 깎아가며 그 경쟁에 참전을 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물을 얻어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때 했던 공부, 심지어 의대에서 했던 공부조차도 대부분은 지금 여기에서 별 쓸모가 없다. 지금 여기서 필요한 만큼만 공부를 했더라면, ‘청춘이라는 그 중요한 시간에 피와 살을 깎는 그 소모적인 일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라는 자괴감이 든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만큼 노력을 했으니, 내가 받는 보상이 정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딱 조상우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조상우가 시스템에 잘 적응해서 열심히 게임을 해가는 방식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아니, 사실 혼자만 가지는 의문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거기에 참여한 모두가 여기에 대한 의문을 지녔다면 오징어 게임의 결과는 어땠을까? 사실 오징어 게임 참가자의 숙소 벽면에는 그들이 할 게임들이 친절하게도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순서대로. 하지만 이를 본 참가자는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드라마를 보고 있던 필자조차도 주인공이 당장 눈앞의 경쟁자를 이기는 데에만 온 신경이 몰두되어, 벽면의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시스템 안에서 눈앞의 경쟁자만 보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시스템의 입장에서 가장 바라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테니까. 오징어 게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참여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은 정말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이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8회 ‘정신과 의사가 본 오징어 게임’ 방송분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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