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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선택’이란 착각과 오징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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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11.06 08:00

 

 

[정신의학신문 :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 글은 <오징어 게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는 잊지 못할 명장면이 있다. 유명 패션 잡지의 편집장인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분)의 비서인 앤디(앤 해서웨이 분)가 비슷해 보이는 두 가지 벨트 중에 어떤 것을 고를까 고민하는 자신의 상사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장면이다. 미란다는 웃음을 터뜨린 앤디에게 묻는다. 뭐가 그렇게 재밌느냐고.

사진_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사진_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아, 아니에요. 그냥 제 눈에 그 두 벨트는 똑같아 보이거든요. 아시다시피, 저 아직.. '이런 것들(this stuff)'에 대해 막 배우고 있는 중이라...”

 

아, '이런 것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당신은 이런 결정이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생각을 해보죠. 당신은 아침에 샤워를 하고 옷장을 열어요 - 다음에, 예를 들면, 지금 입고 있는 그 볼품없는 파란 스웨터를 골랐다고 치죠. 왜냐면 당신은 스스로가 너무 소신 있는 사람이어서 어떤 옷을 입는지 따위는 별 신경 안 쓴단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모르겠죠. 당신이 고른 그 스웨터는 그냥 파란색이 아니고, 옥색도 아니고, 감청색도 아니고, 실은 cerulian이란 걸요.

 

그리고 당신은 2002년에 유명 디자이너 오스카 데 라 렌타가 처음으로 그 색깔의 가운들로 컬렉션을 열었다는 것도 너무 당연하게도, 모를 거고요. 그 후에 내 기억이 맞다면 입생 로랑이 같은 색의 밀리터리 재킷을 선보였을 거예요 아마? 그러자 그 색상이 여덟 명의 각기 다른 디자이너의 컬렉션에 바로 등장했어요. 그다음엔 백화점 의류들로 그 붐이 번졌고요. 결국엔 이름도 모를, 초라한 "캐주얼 코너"로 흘러들어 가 깜짝 세일을 하는 그 옷을 당신이 어쩌다가 건진 거겠죠. 하지만,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스웨터에는 천문학적인 금액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 있어요.

사진_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사진_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그러니까 당신은 오늘 아침 스스로 그 옷을 고르면서 마치 패션 업계에서 스스로를 배제시킨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당신은 지금 이 방의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골라준’ 스웨터를 입고 있는 거라고요. 물론, '이런 것들(this stuff)' 중에서요.

 

오징어 게임을 처음 봤을 땐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차적으로 감독들의 뛰어난 역량,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한국 영화계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 열풍을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왜냐면 이 전에도 앞서 열거한 이유들을 바탕으로 전 세계 평단의 인정을 받은 한국 영화들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두 영화가 기존의 한국 영화들과 다른 점은, 소수의 매니아 층과 평론가들에게뿐만 아니라, 문화/언어의 장벽을 넘어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특히나 자국의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해져 자막을 읽기를 꺼려하는 미국인들에게서 선풍적 인기를 끈 점은 주목할만하다. 작품 내적인 완성도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작품의 메시지에 공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결과라 생각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에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시리즈 에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그렇다면, 두 작품의 어떤 부분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토록 와닿았던 것일까?

 

확연히 다른듯한 두 작품은 ‘부의 불평등’이라는 커다란 주제와 플롯을 공유한다. 기생충의 박사장 가족과 기택의 가족, 그리고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과 주최측/VIP의 극명한 대립이 두 영화를 아우르는 테마이다. 오징어 게임에서의 대립은 너무 극적이어서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도 빈부격차가 극명했던 미국에서 기생충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점이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더 벌어진 현 경제상황이 오징어 게임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으로 이어졌다는 이론들은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에 의해 이미 많이 다루어졌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조금 다른, 개인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고자 한다.

 

오징어 게임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모든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세 번의 선택의 기회가 그것이다.

 

“자네가 잊은 것 같군. 나는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어. 자네도 제 발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

첫 번째 선택은 게임 참가 여부이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첫 번째 선택은 게임 참가 여부이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빚더미에 허덕이거나,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에게 아무 설명 없이 '게임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초대장이 주어진다. 여기가 일차적인 선택의 갈림길이다. 이 초대장은 참가자들에게는 게임 참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인다. 그렇게 게임에 참가하기로 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90년대 교과서의 '영희'를 본뜬 거대한 인형과 함께하는 아이들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이다. 그리고, 게임에서 패배한 사람은 죽는다 (이 부분은 아무도 참가자들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놀란 사람들은 게임 이후, 진행진에 의해 결정된 사전 규칙에 따라 과반수의 사람들의 동의 하에 게임을 중단시키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두 번째 선택지점으로 보인다.

두 번째 선택: 사람들은 다수결 투표를 통해 게임 중단을 결정한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두 번째 선택: 사람들은 다수결 투표를 통해 게임 중단을 결정한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오징어 게임에서 만약에 이 두 가지 선택,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세 번째, ‘다시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돌아올 수 있다’는 내용에 대한 묘사가 없었다면, 아마 시청자들이 이 시리즈에 그다지 몰입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존에 무수히 봤던, '어느 날 눈떠 보니 다 같이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영화들'과 큰 차별점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이처럼 시청자들로 하여금 진행진이 여러 번의 선택권을 참가자들에게 주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여기서 착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참가자들의 선택이란 것이 사실상은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미란다가 말하는 앤디의 푸른 스웨터처럼, 참가자들의 운명은 이미 일남에 의해 골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서사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시청자들에게 참가자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령, 신체 포기 각서를 쓴 기훈이라든가, 이미 죽을 마음의 준비를 다했던 상우, 그리고 (억울하게)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 알리에게 바깥세상은 목숨을 건 데스매치랑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 선택을 내리진 않더라도 (실제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도 소수지만, 있었다), 최소한 다시 목숨을 건 게임에 참가하기로 한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보기와 달리, 어쩌면 그들에게 실제로는 선택지가 없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이 장치가 없었다면,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이 고어물을 9화까지 보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마지막 선택: 게임만큼 잔인한 게임 밖의 세상은 다시 참가자들을 게임으로 내몬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마지막 선택: 게임만큼 잔인한 게임 밖의 세상은 다시 참가자들을 게임으로 내몬다. 사진_넷플릭스 '오징어게임'

 

기훈이 밤에 불침번을 서는 장면에서 그는 해고당했을 때의 기억들을 재경험한다. 40대 후반에 엄마 현금 카드를 훔쳐 쓰는, 경마에 중독된 루저인 것 같기만 했던 성기훈이라는 사람이, 실은 불과 십 년 전까지 멀쩡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작은 반전일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시청자들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즉, 대책 없어 보이던 성기훈이란 사람도, 인생의 불운들이 연달아 그를 고꾸라뜨리기 전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실제로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뉴욕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로 수련을 받는 동안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사람의 정신 건강이, 더 나아가 건강 자체가, 아니 어쩌면 인생이, 그 사람의 우편번호 (즉, 사는 동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동네의 90퍼센트 이상의 사람이 알코올,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하고, 자연스레 10살 때부터 헤로인에 노출된 아이가 소위 말하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할까.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기택의 반지하집이 뉴욕의 반지하방들과 너무나 비슷하다 생각했다 (실제로 영화처럼, 올해 여름 갑작스러운 홍수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뉴욕의 그 반지하 집들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뉴욕시에서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인들 또한 기생충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여느 한국인처럼 기생충의 성공이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영화 의 홍수 씬은 올해 여름, 뉴욕에서 현실로 재현되었다. 사진_영화 '기생충'
영화 의 홍수 씬은 올해 여름, 뉴욕에서 현실로 재현되었다. 사진_영화 '기생충'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속에서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 성공을 보는 기분은 물론 기쁘지만 알 수 없게 개운치 못하다. 우리는, 그리고 이 세계는, 지금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암울한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강요받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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