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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본 드라마 'D.P'

Winnipeg101 LV 10 22-01-10 336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입력 2021.09.30 08:00

 

 

심리학 렌즈 (6)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글에는 드라마 D.P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필자의 PTSD 유발물이라고 불리며 많은 화제를 낳은 드라마 D.P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군에 갔다 오지 않은 여성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공중 보건의로서 보건소에서 군 복무를 한 필자도 군대라고는 4주 훈련이 전부였는데도 분노를 일으키면서 드라마를 시청하였다. 그 분노의 기원은 도대체 무엇일까?

 

D.P에는 너무나 많은 군대 내 부조리와 불합리함이 묘사되고 있다. 상급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후임을 괴롭히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되면 너무나 큰 분노가 솟는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묘사이지만, 우리가 살면서 당해온 많은 불합리함들이 반드시 군대에만 있었을까?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부당함을 당해왔기에 군필자가 아니더라도 이 드라마에 열광하게 된 것은 아닐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불합리함이 더 두드러지게 된 이유를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이 될지 들여다 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군대는 이토록 불합리함에도 조직이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처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상급자와 하급자가 충분히 토론을 하고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서 군대를 움직이는 것이 전쟁에 유리할까? 아니면 불합리하더라도 일단 빨리 결정을 하고 빨리 움직이는 것이 전쟁에 유리할까? 당연히 후자가 유리할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합리적인 결정보다는 빠른 결정이 더 중요한 집단이다. 그렇기에 불합리함을 참고 넘기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D.P에 나오는 대장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하나 있다.

 

‘항명이야? 항명이야? 전시 상황이면 항명은 즉시 사살이야.’

 

라는 말이다. 이 말에 불합리함의 기원이 묻어놔 있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_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D.P.' _ 사진 [넷플릭스]

 

 

군대만큼은 아니겠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실에서 합리적인 결정보다는 빠른 결정이 유리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많은 조직들이 수직적인 계급을 만들어놓고 일방적으로 흐르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것일 테다. 이 시스템의 하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뎌야 하는 시기들이 많았으리라. 그리고 이 시스템의 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불합리함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 하고, 권력을 휘둘러 왔을 것이다.

 

극 중에서 조석봉 일병이 황장수 병장에게 복수를 하면서 나에게 왜 그랬냐며 울부짖으며 물을 때, 황장수 병장의 답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결국 우리 사회가 바뀌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황장수처럼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타성에 젖어 반복하게 되면, 드라마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불합리함이 대물림 되는 또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 하나 있다. 그것은 displacement 즉, 전치라는 방어기제와 관련된 것이다. 속담으로 말하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가 되겠다. D.P 드라마에서도 우리는 선임이 되면 아이들과 잘 지내자라고 다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선임이 되자 똑같이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전치의 핵심은 강한 자에게 당하고 약한 자에게 그 공격성을 푸는 것인데, 이것이 군대 내에서의 불합리함이 대물림 되는 핵심 요인이 된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잘못된 상황을 보면 그 잘못을 한 개인의 문제로 귀인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한정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문제는 반복된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순간 신기하게도 있었던 문제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 사람에게 있다기보다 시스템 속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 사실을 이해해야만 문제의 본질이 해결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껏 많은 처벌이 있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여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_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D.P.' _ 사진 [넷플릭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가 속해서 굴러가고 있는 시스템을 당연시 받아들이지 않는 의문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의문의 궁극적 지점은 D.P의 상병 한호열이 극 중에서 내뱉은 말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나를 왜 낳았을까? 나는 태어난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렇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단 한 번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민주주의, 자본주의, 그 밖에 수많은 여러 시스템에 동의를 한 적이 없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시스템에 암묵적 동의가 강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진짜 이 시스템이 우리를 위한 합리적인 시스템이 맞는지를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느끼는 무의식 속 깊은 불합리함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시스템을 타성에 젖어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만 있으면 이 세상은 불합리한 채 그저 돌아갈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시스템의 어떤 부분이 동의가 되고, 어떤 부분이 동의가 되지 않는지를 모두가 한 번 씩 생각해볼 수 있으면 이 세상이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엉뚱하지만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 기회에 한 번쯤은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다. 부익부 빈익빈이 더 고착화되고 있는 듯한 요즘 시대에는 더 필요한 질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본 글은 쿠키건강TV 마인드온 - 정신과의사 이일준의 심리학 렌즈 35회 ‘정신과 의사가 본 드라마 D.P’ 방송분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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