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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스산하고 짜릿한 복수와 피해자들의 연대

Winnipeg101 LV 10 23-03-16 205

3월 파트2 공개 앞둔 넷플릭스 ‘더 글로리’
학교폭력 생존 여성의 스산한 복수극
‘멜로퀸’ 송혜교의 인상적 변신
피해자들의 연대는 감동적
잔혹 폭력묘사·상류층 동경 클리셰는 아쉬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1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1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복수극은 인기가 많다. 끔찍한 폭력에서 살아남은 아름다운 여성이 이끄는 복수극이라면 더 그렇다. 익숙하면서도 다루기가 까다로운 ‘학교폭력’을 다룬다면 더더욱 그렇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이 모든 요소를 갖췄다. 고등학생 때 학교폭력을 겪은 문동은(송혜교 분)이 17년간 준비한 복수를 실행하는 여정을 그린다. 지난해 12월30일 공개된 ‘더 글로리’ 1부(8부작)는 폭력에 대한 정치·사회적 분석이나 비판보다 생존자가 겪는 고통, 그 아픔만큼 더 예리하게 벼린 복수의 칼날에 초점을 맞춘다.

 

동은은 비현실적인 캐릭터다.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좁고 어두운 길을 걷는 인물이다. ‘멜로퀸’ 송혜교의 변신은 인상적이다. 화장기도 표정도 없는 얼굴, 무채색 계열의 옷만 입는 이 여자는 17년 전 자신의 삶을 파괴한 가해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살아간다.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나 자신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욕망을 좇는 일에는 관심 없다(“난 분노와 악에 더 성실하고 싶거든요”). 과거에 붙들려 ‘오늘’을 차디찬 얼음 호수 밑에 던져 버린 사람 같다.

 

폭력을 겪었다고 누구나 생존자가 되지는 않는다. 세월이 흐른다고 깊은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절로 샘솟지 않는다. 흉터가 문신처럼 남은 앙상한 몸, 화상 후유증에 신음하면서도 매일매일 고된 노동을 해내던 기억, “우리는 왜 매일 힘을 내야 하는 걸까. 힘내는 거 힘들어. 힘내는 거 지겹다” 같은 대사를 통해 우리는 동은이 어떻게 자신을 일으키고 살아남았을지 상상할 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1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1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많은 시청자가 지적했듯이 동은이 펼치는 복수의 면면은 좀 비현실적이지만, 결국 드라마다. 허구임을 알아도 보기 편안한 작품은 아니다. 고데기로 지지기, ‘담배빵’, 성폭력 등 잔혹하고 노골적인 폭력 묘사로 논란을 불렀다. 상류층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동경·질투가 서사의 주 동력으로 활용되는 것도, 제 자식의 안위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모성 신화’를 불러내는 것도 진부한 면이 있다. 물론 복수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려는 제작진의 계산일 것이다. 폭력이 잔혹할수록 복수의 짜릿함은 커질 테니, 가진 것 많고 오만한 가해자들이 소중한 것들을 빼앗기고 무너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쾌감은 더 클 테니까. 
 

그래도 ‘더 글로리’는 가해자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어릴 적 학대나 차별을 당했다거나, 불합리한 경험을 하면서 쌓인 적대감을 학교폭력으로 분출했다던가 식의 뒷이야기가 없다. 가해자들은 단지 동은이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뿐이다. 비좁고 허름한 셋방에서 홀로 동은을 키우던 엄마는 가해자 측 요구대로 합의하고 합의금만 챙겨 달아났다. 믿었던 경찰과 교사들도 가해자들을 편들거나 방관한다. 심지어 담임교사는 동은에게 왜 신고했냐며 화내고 마구 때리기까지 한다. 아이들을 돌볼 의무가 있는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힘의 구조에 밀어 넣고 방치하는 약육강식의 사회다. 교육 현장에 만연한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스쿨미투’ 운동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인권 감수성보다 경쟁의식과 계급의식을 먼저 갖추기를 권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닮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1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1부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여러 찜찜한 뒷맛에도 ‘더 글로리’를 계속 보게 되는 까닭은 단순히 과거에 사로잡힌 한 여성의 자경단식 정의 구현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연대도 강조한다. 동은은 자신 이전에도 억울한 학교폭력 피해자가 있었고, 학교·사회 구성원들의 방관 탓에 폭력의 역사가 지속됐음을 잊지 않는다. 

 

복수에 동참하는 가정폭력 피해생존자 강현남(염혜란 분)과 동은의 ‘케미’도 훌륭하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따지고 설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세상에 반기를 드는 여자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명랑하지만 명랑할 기회가 없다가 숨이 쉬어져서 가끔 웃게 돼요” 같은 현남의 명대사를 한동안 곱씹었다.

 

“폭력을 겪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엄이나 명예, 영광 같은 것을 잃게 된다. 그 사과를 받아야 원점이고,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제목을 ‘더 글로리’로 지었다. 이 드라마는 피해자들께 드리는 응원이다.” (김은숙 작가, 2022년 12월20일 제작발표회에서)

 

복수의 끝에서 동은과 현남은 잃어버린 존엄을 되찾을 수 있을까. 8부작 ‘더 글로리’ 파트2가 오는 3월10일 공개된다. “사이다, 마라 맛이 파트2에 집중돼 있다.”(김은숙 작가) 

 

“본격적으로 동은과 연진의 싸움이 시작되고 가해자들이 응징당하는 이야기가 다이나믹하게, 눈 뗄 수 없이 펼쳐질 것이다. 모든 떡밥이 회수될 것이다.”(안길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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