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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톡]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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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향 에세이스트

입력 2021.10.25 03:00


오랜만에 장르적 쾌감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 드라마였다. 전 세계적인 화제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얘기다.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오징어 게임’ 관련 이슈들은 차치하더라도 주위에서 거론되는 횟수만 따져도 이 드라마의 인기는 체감상 엄청나다. 다들 서로에게 “‘오징어 게임’ 봤냐?”고 묻는다. 본 사람이나 안 본 사람이나 스토리와 캐릭터, 게임 룰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 리뷰 유튜브 채널엔 ‘오징어 게임’ 관련 콘텐츠가, ASMR 관련 채널들에도 ‘오징어 게임’ ASMR이 올라온다. 최근엔 시골 사시는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오징어 게임’이 그렇게 재미있다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로 재미있는 거냐?”

‘오징어 게임’을 즐겁게 보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출판계 입문 11년 차 편집자로서 드라마 속 책들을 통해 ‘오징어 게임’의 세계를 훑어보고 싶어졌다. 평소 직업병처럼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책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책 / 밀레니얼톡 삽입 일러스트 /그래픽=김하경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책 / 밀레니얼톡 삽입 일러스트 /그래픽=김하경

이 드라마에서 형사 황준호(위하준)는 오랫동안 실종된 형을 찾고 있다. 빨리 형을 좀 찾아보라는 어머니의 재촉 전화에 준호는 형이 살던 고시원을 찾아간다. 1976년생인 형은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찰청 광역수사대,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를 거쳐 서대문파출소 소장까지 지냈지만 어떤 이유인지 실종 당시엔 ‘무직’이었다. 형이 살다 사라진 고시원 방은 월세가 밀려 있었고, 책상 위엔 문예출판사가 펴낸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과 르네 마그리트에 관한 책이 놓여 있었다. 책꽂이에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반 고흐 관련 책, 그리고 피카소의 청색 시대와 장미 시대를 다룬 ‘The Blue and Rose Periods’가 꽂혀 있었다.

 

이 책들 중에서도 ‘욕망 이론’과 ‘이방인’을 통해 ‘오징어 게임’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욕망 이론’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다양한 곳에서 발표한 서른 편의 논문들을 라캉이 나름의 순서로 재배치한 ‘에크리’를 비롯해, 라캉의 여러 세미나 모음집에서 대표적인 글들을 뽑아 옮기고 긴 해설을 붙여 라캉 주요 사상의 전모를 안내한 책이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 그리고 금기된 욕망 자체를 욕망하는 인간의 무의식에 관해 말한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는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인간 군상의 욕망을 엿보고 싶어하는 또 다른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 책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은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레전드’가 된 작품이다. 갈리마르 출판사의 카뮈 전집 책임 편집자인 로제 키요는 ‘이방인’에 대해 “어처구니없게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한 거부, 자기 스스로의 밖으로 쫓겨난 듯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낯섦, 그리고 이 세계의 불투명한 어둠, 부조리가 여기에 송두리째 담겨 있다”고 했다. 게임에서 지면 납득하기 어려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목숨과 돈을 맞바꿔야 하는 비정한 게임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배신과 암투, 모략으로 얼룩진 스스로의 낯선 모습을 마주한다. 게임 속과 다를 바 없는, 어쩌면 더 가혹한 게임 밖 세계의 어둠과 부조리는 ‘오징어 게임’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준호의 형 인호의 책상 위 책들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축약판이었는지도 모른다. 인호의 책들을 통해 ‘오징어 게임’의 세계는 더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인다. 어쩌면 극 중 인호의 책들과 함께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묻는지도 모른다. 눈앞에 앞으로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갈래길이 있을 때, 당신은 어느 길을 선택하겠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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