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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의 장미 주인공과 실제인물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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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후, 이야기 

2020. 10. 19. 01:56

 

 

 

베르사유의 장미는 일본의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가 마리앙투아 네뜨를 주제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 어느 평범한 여자의 초상(1932)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요.  주인공은 가상인물인 오스칼과 실존인물 마리 앙투아네트로 18세기 프랑스 대혁명까지의 주변 상황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만화가, 이케다 리요코

 


 잡지 마가렛에 1972년부터 1973년까지 연재를 하였는데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1973년 일본의 한 여고 교실. 수업 중 한 여학생이 고개를 파묻고 훌쩍이기 시작하자 같은 학급의 모든 학생이 잇달아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학생이 울먹이며 답했다.

 

“오스카가 죽었어요.”

 

 

 

1.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 
베르사유 장미의 주인공으로 앞으로 소개해 드릴 다른 인물들이 실제 인물임에 반해 가상의 인물입니다.  작중 생몰년도는 1755년 12.25 ~ 1789.7.14.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자르제 백작은 실존인물인 프랑스 육군 장교 프랑수아 오귀스탱 레니에 드 자르제(Francois Augustin Reynier de Jarjayes,1745~1822)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1970년대 일본에서 금발의 미소년 배우로 인기를 끌었던 스웨덴의 배우, 비에른 안드레센이 모델이라는 설이 있는데요 얼핏 보아도 정말 닮았습니다.  이 배우는 아쉽게도 젊었을 무렵 몇 편의 영화를 찍고 일본에도 방문하였지만 연예인의 생활을 일찌감치 그만 두어 리즈 시절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없었는데요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생활을 하시다가 최근 다시 영화 활동을 하시는데 그냥 중간에 안 쉬고 계속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배우, 비에른 안드레센

 


 자르제 백작의 여섯 번째 막내딸로 태어났으나 자르제 백작은 후계자를 원했기 때문에 아들로 길러집니다. 훗날 쟈르제 백작은 이 일을 크게 후회하지만 결국 오스칼 본인은 그것이 주어진 운명인 것 마냥 받아들입니다. 사람마다 아름답다는 말을 빼놓지 않을 정도로 남녀노소 신분을 막론하고 인기 있는 치명적 매력을 지닌 미녀. 또한 검술, 사격, 승마 등 무인으로서의 능력은 기본이고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6개 국어 능력과 바이올린,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등 악기도 잘 다루는 등 팔방미인. 동전 한 닢 가지고 다니지 않을 정도로 청렴결백하며,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도와주는 따뜻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다 지는 주인공으로 실력, 집안에 인성까지 갖춘 인싸 캐릭터입니다.  사관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근위대장 시절 황태자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총애로 근위 연대장이자 여백작 지위로 임명되지만, 흑기사 사건 이후 사임하고 프랑스 위병대로 옮긴다. 한때 페르젠을 짝사랑을 했지만, 단념하고 후에 항상 자신의 곁에 있던 앙드레를 사랑한단 걸 깨닫습니다. 천성이 군법을 존중하는 강직한 군인 귀족 장교이지만 평소에 서양의 고전서, 루소나 몽테스키외 등의 사상서를 주로 읽고 평민들의 피폐한 생활을 겪게 된 후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고 아버지와 갈등하다 프랑스 평민의 비참한 현실을 깨닫고 혁명에 가담합니다. 바스티유 습격 당시 혁명군 편에서 포격을 지휘하다가 적군이 쏜 총탄에 결국 전사합니다. 

 

영화, 레이디 오스카

 


베르사유의 장미를 실사 영화로 만들어 졌는데요. 1979년 "레이디 오스카"라는 영화인데,  원작 만화 인기에 힘입어 일본 자본이 들어간 프랑스 영화입니다. 팬이시라면 보고 싶으시겠지만 아마 좀 후회하실 것입니다. 감독도 무슨 3류 쌈마이 감독도 아니고 "자크 데미"라고 쉘부르의 우산을 만든 나름 이름 있는 감독인데 영화는 아주 개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오스카 역할을 맡으신 배우도 카르리오나 맥콜이란 분이신데 남장 여성의 좀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분이면 좋았을 텐데 애니메이션과는 너무 다릅니다. 역시 비에른 안드레센을 어떻게 꼬셔서라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뒤바리 부인실제 뒤바리 부인

 


2. 뒤바리 부인 

베르사유의 장미에 나오는 첫번쨰 악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실제 인물로 만화에서 처럼 루이 15세의 마지막 애첩, 정부입니다. 본명은 잔 앙투아네트 베퀴(Jeanne Antoinette Becu)이지만 보통 마담 뒤바리, 바리 벡작부인이라고 불립니다. 만화에서는 세련 대고 악랄하고 표독한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외모는 순박한 시골처녀에 나름 따뜻한 하고 소탈한 편이었습니다. 루이 15세가 가장 사랑했던 정부 마담 드 퐁파두르와 다르게 신분이 매우 낮아 매춘부 출신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리 앙뜨와네트와는 처음에는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요.  루이 15세의 애첩으로 루이 15세의 공주들하고 사이가 좋지 않아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공주들이 악평을 한대다가 마리 앙뜨와네트의 친정인 오스트리아는 당시에 매춘을 금지할 정도로 윤리적으로 엄한 분위기인데 이거 결혼하고 프랑스로 오니까 왕비도 아니고 시아버지 애첩이 곱게 보일 리가 만무하죠. 실질적으로 뒤바리 부인이 루이 15세의 왕비에 가까웠지만 신분이 낮아 먼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말을 걸 수 없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데 끝까지 말을 안 걸어주니까 루이 15세에게 가서 울고불고 하소연을 하자 루이 15세는 며느리를 불러서 타이르거나 말리는 대신 오스트리아 대사를 소환해서 공식적으로 따집니다 친정에서 뭘 배우고 왔냐 이런 식이죠. 마리아 테레지아는 더럽지만 일단 외교라는 것도 있고 첩이라는 것이 자기네와는 안 맞지 마 프랑스 왕실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 편지를 보내고 마리 앙뜨와네트는 보자리 부인에게 오늘은 베르사유 궁에 사람이 정말 많군요라는 말을 하게 되고  보바리 부인은 승리를 하고 의기양양하지만 시간이 흘러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죽게 되고 죽기 전에 고해성사를 하고 싶어 하자 신부가 보바리 부인을 출궁해야 해주겠다는 말에 아무리 왕이지만 그것도 건강했을 때나 일이지 죽기 전에 사람은 누구나 나약한 법이라 이때 궁전에서 나와 수녀원으로 갔다가 루브시엥 성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지만 루브시엥 성에 머물고 있었는데 직접적인 공격을 당하지는 않았고. 1792년에 혁명이 피로 물들기 시작하자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런던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뒤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하게 되는데  부동산을 처분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때는 극렬 과격파인 자코뱅파가 권력을 가지고 있어 하두 귀족들을 죽여서 귀족도 부족해 부르주아 상인까지 잡아 죽이던 시기에 파리로 돌아갔으니 바로 잡혀서 처형을 당하게 되는데요. 이미 나이가 든 노인으로 뚱뚱해진 노부인이라 끝까지 격렬하게 저항을 해서 여러 명이 겨우 붙잡아 교수형을 집행했는데 마지막 말이 잠깐만 할 말이 있다 잠깐만 가지고 있는 보석을 다 주겠다를 외치지만 결국 목이 잘리었는데 이때 교수형을 집행한 망나니는 샤를 앙리 상송이라느 사람인데 망나니 직업 가문으로 공교롭게도 이 사람에게 마리 앙뜨 와네트와 루이 16세의 목을 날린 동일한 망나니입니다.  왕의 애첩이지만 무슨무슨 부인 이러는데요 특이하게도 왕의 애첩이 되려면 미혼이 아닌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법률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뒤바리 부인, 드 퐁파두르 부인 같은 부인이 붙는 것인데 남편은 부인을 이용해 출세를 해서 좋았을지 아니면 속으로는 루이 15세에게 아내를 빼앗겨서 울분에 찼을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당시 정서상 그냥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잔느실제 잔느

 


3. 잔느 발로아 드 라 모트 (Jeanne de Valois-Saint-Remy, "Comtesse de la Motte") 
만화에서처럼 실제 마리앙뜨와 네트를 곤경에 빠뜨린 목걸이 사건의 범인 잔느 드 라모트가 실존인물인데요. 만화에서 보면 로자리의 언니로 얼굴에 눈물점이 있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를 이야기할 때 목걸이 사긴 사건을 빼놓고 말을 할 수가 없는데요. 국왕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인 뒤바리 부인을 위해 왕실 보석상인 뵈머에게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다이아몬드들을 모아서 목걸이를 만들어 오라 명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가 지천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재료인 다이아몬드를 구하고 2800캐럿, 600개를 가지고 만드는 도중에 국왕이 사망을 하게 되고, 값비싼 재료의 목걸이를 팔 곳이 없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보증금 이런 거 없이 물건을 만든 다음 국왕이 돈을 주는 것이 관례여서 난처해서 마리 앙뜨와네트에게 대신 사달라고 하였지만 프랑스 재정 상태를 알고 있던 앙뜨와네트는 거절을 합니다. 그런 거 살 돈 있으면 함대나 한 척 더 사겠다고 말을 했는데 지금 봐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좀 촌스런 디자인으로 스카프 같다고 평했습니다. 한편 이 당시 파리에는 루이 로열이라는 추기경이 있었는데(만화에서는 대주교로 나옴) 엄청난 부자에 집안은 좋아서 출세를 했짐나 인간 자체는 별 볼 일 없어서 오스트리아 대사로 있던 시절 마리 앙뜨와네트와 루이 16세 결혼을 반대했지만 묵살당했고 이 때문에 마리 앙뜨와네트와 어머니 마리 테레지아를 험담하고 다니고 그걸 또 걸려서 이런저런 이유들로 마리 앙뜨와네트가 경멸하고 있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후 로앙 입장에서는 출세길이 막힌 것이나 다름없고 어떻게든 마리 앙뜨와네트의 마음에 들고 싶어 여러 가지 호의를 보이지만 다 무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알아챈 잔느는 희대의 사기극을 준비합니다. 왕비가 실은 목걸이를 가지고 싶은 데 여건상 갖지 못한다 추기경이 대신 사서 선물로 주면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지만 사람은 역시 믿고 싶은데로 믿기 마련이라, 잔느의 계략대로 움직입니다. 잔느는 마리 앙뜨와네트의 편지라고 자기가 대신 써서 가짜 편지를 주기도 하고 밤에 숲 속에서 마리 앙뜨와네트를 닮은 사람을 데려와 추기경을 만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해서 결국 목걸이 추기경이 사게 만들고 돈은 나중에 왕비가 주는 형식으로 말을 하여 잔느가 왕비에게 대신 전해준다고 하여 목걸이를 받았고 그녀는 그 목걸이를 외국에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보석값을 주지 않자 보석상 우선 마리에게 보석을 구매해 줘서 너무 고맙다 덕분에 파산을 면했다고 감사인사를 보내고 목걸이 금액이 즌어지면 자기는 기다릴 수 있다고 편지를 보내자 마리 앙뜨와네트는 일가다가 뭔 헛소리야 하고 벽난로에 던져버렸다가 아무래도 찜찜해서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게 하였고 이 사기극은 들통이 났습니다. 재판은 깔끔하게 사기꾼 잔느를 잡아 유죄 선고하고 감옥에 넣었지만 백성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당시에도 있었던 타블로이드 가짜 뉴스로 왕비와 추기경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추기경이 왕비를 위해 값비싼 목걸이를 사주고 방탕하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며 지낸다 소문은 너무 앙뜨와네트에게 안 좋게 났는데요. 목걸이 사건은 그녀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는데, 한편 잔느는 감옥에 갇혀있다가 나중에  프랑스혁명 당시 어수선한 틈을 타서 소년으로 변장하고 탈출한 후,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한 후 파리에서 빚쟁이들을 피하다가 1791년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신 이상의 발작으로 창문에서 떨어져 35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마리 앙뚜와네트실제 마리 앙뚜와네트

 


4. 마리앙투아네트가 왜 죽어야 했을까? 
프랑스 왕실이 빚더미에 앉은 것이 왕비가 벌인 호화로운 파티, 과소비 이런 왕족들의 사치와 향락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이유는 잦은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영국과의 경쟁으로 인한 미국 독립전쟁 지원, 그리고 7년 전쟁으로 프랑스는 경제위기가 이어지고 있어 세금은 계속 오르고 물가상승으로 식량 부족으로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던 차에 외국 그것도 얼마 전까지 적국에서 온 왕비는 사람들의 호의를 얻지 못했습니다. 1997년 우리나라 국민들의 과소비와 과도한 해외여행으로 IMF가 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죠. 마리 앙뜨와네트의 취미가 프티 트리아농에서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프티 트리아농은 루이 15세의 후비 퐁파두르 후작 부인을 위해 지은 것으로 완공 당시 후작 부인은 이미 사망한 후여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주어졌는데 그녀는 이곳에 왕자와 공주를 데리고 가서 정원을 가꾸거나 가벼운 농사를 지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백성들이 분노하였습니다. 자신들의 고단한 농사일을 왕비가 코스프레 엉터리로 흉내 낸다고 모욕감을 느껴서였는데, 마리 앙뜨와네트는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무엇을 해도 안 좋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게다가 운도 좋지 못했습니다. 루이 16세의 동생 프로방스 백작과 아르투아 백작은 룽16세가 아이를 갖지 못하면 왕권을 위협하게 되는데 훗날 그들은 루이 18세, 샤를 10세로 왕위에 오릅니다. 오늘날 포경수술을 해야 한다 할 필요가 없다 하여 한떄 논쟁이 된 적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루이 16세는 필요했었던 것 같습니다. 1770년 5월 16일 프랑스 황태자 루이 오귀스트와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을 했습니다. 열다섯열네 살 어린아이들이었는데, 결혼 이후 계속해서 아이를 갖지 못하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 가운데 별의별 악의적인 소문이 다 돌았었는데, 공식적인 증거는 없지만 추정상 포경수술이 필요했던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국왕인 루이 15세는 손자 루이 16세를 라송이라고 하는 의사에게 남성을 검진받게 하는데 그는 포경 수술 치료 전문가이며 나름의 수술법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결혼 후 8년이 지나 국왕 부부는 1778년 장녀 테레즈가 태어나고 총 4명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당시 왕실에 악의적인 소문을 내는 사람들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랜 기간 아이가 없다가 갑자기 아이들을 출산한 것을 두고 간통을 통해 아이를 낳았다고 주장했지만 현대 DNA 검사를 통해서도 그렇고 모두 친아이들이 맞습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는 두 명의 아들과 딸을 가졌는데요 첫째 딸인 장녀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는 혁명 당시 10대 소녀로 백성들의 동정을 받았고 정치적으로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아 외가인 오스츠리아로 보내져 70대까지 장수를 하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부모님이 단두대에서 죽임을 당하고 남동생에 대한 원망 등 트라우마로 불우하게 인생을 살다가 아이를 낳지 않고 죽습니다. 첫쨰 아들 도팽 루이 조제프는 척추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고 죽습니다. 막내 소피 엘렌 베아트리스는 태어난 1년도 되지 않아 죽습니다, 당시 유아 사망률이 높은 시기라서 이를 왕실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차남 루이 샤를(루이 17세)도 감옥에서 죽습니다. 발표는 폐결핵으로 죽었다고 나와있지만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들어가서 보니까 온 몸에 어마어마한 멍자국이 있었습니다. 맞아 죽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강제로 부모와 떨어지고 난폭한 구두수선공 앙투안 시몽이라는 사람에게 많은 폭행을 당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왕자는 감옥에서 지속적인 정신적 육체적 학대와 협박을 당했는데요. 특히나 어머니 마리 앙뜨와네트와 근친을 했다는 진술을 강요받고 결국 시인을 하는데 이 때문에 어머니 마리 앙뜨와네트의 사형이 결정되었고 큰 누나 마리 테레즈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왕자는 힘든 감옥 생활과 구타 속에서 사망을 하게 되는 데 그때 그의 나이 10살이었고 부르봉 왕가는 대가 끊기게 됩니다. 이후 오랜 기간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 감옥에서 살아남은 진짜 루이 17세라고 사기를 치고 다녔는데 다 사기꾼들입니다. 루이가 죽고 난 뒤, 그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가 루이 17세의 심장을 몰래 훔쳤는데, 프랑스 왕실이 전통적으로 묘지와 예배당으로 사용해온 생 드니 교회의 지하 묘실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이 심장이 두고두고 진위 여부가 가려지지 않았으나, 루이 17세의 모후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리카락과 같이 DNA 검사 결과 서로 일치하여, 진짜 루이 17세의 심장으로 밝혀졌습니다.

 

루이 17세

루이 17세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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