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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1세대 이민자 안재창 (1) '호러스 앨런의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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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9

 

 

‘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은 1902년 미국 하와이로 가는 첫 번째 이민선에 올랐던 안재창의 일생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안재창은 1세대 이민자로 미주 한인사에서 굵직한 흔적을 남긴 인물인데요. 김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1902년 12월 22일 조선 제물포항. 통역 안정수와 정인수를 포함한 총 122명이 일본과 북중국을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일본 선박 켄카이마루를 타고 제물포항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미국령 하와이 호놀룰루로 가는 최초의 한인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20명은 신체검사에서 떨어져 실제로 태평양을 건넌 사람은 안재창을 포함해 102명이었습니다.

 

한인들이 하와이로 떠나게 된 것은 1898년 미국에 합병된 하와이의 경제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열대에 있는 하와이 군도는 사탕수수 재배에 유리한 자연환경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외국 노동자들이 필요했다고 한인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씨는 설명합니다.

[녹취: 한인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하와이 사탕수수 농사가 노동집약적이고 하와이 군도에서는 본토와 비교해 인구가 적어서 외국에서 노동자들을들여와야 하는 그런 처치에 있었어요.”

 

미국 정부는 이런 상황을 값싼 중국인 노동자들을 들여와 해결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에 근심거리가 되는데요. 다시 안형주 씨의 설명입니다.

 

[녹취: 한인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19세기 중반부터 중국 양자강 유역의 싸구려 노동력을 들여왔는데, 그 수가 5만 명에 이르러 그들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3년 계약 후에 재계약을 하지 않고 대도시로 가서 노동력을 싸게 제공하여 노동시장을 파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미국 본토에서도 발생했습니다. 미국 본토에 있는 도시에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미국 연방의회는 1882년 ‘중국인입국거부령’을 만들어 중국인 이민을 차단했습니다.

 

1898년 우여곡절 끝에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되면서 더 많은 자본이 하와이 사탕수수 산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요. 당시 하와이 사탕수수 업계가 새로운 노동력으로 눈길을 돌렸던 것은 일본인들이었다고 안형주 씨는 설명합니다.

[녹취: 한인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떠나간 중국인들을 대체하기 위한 노동자들을 데려왔는데, 일본남서부에서 노동자들을 데려오게 됐습니다. 이들은 외지에 나가 품팔이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와이에 들어간 일본인 노동자 수는 최대 3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하와이를 합병하고 자국 노동법을 하와이에도 적용하자 그동안 하와이에서 관행이었던 3년 계약이 불법이 됐습니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임금이 2배인 미국 본토로 대부분 떠나갔습니다.

 

이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일본인 노동자들을 대신할 유순하고 값싼 노동력을 찾게 되었고, 결국 19세기 말부터 농장주들 사이에서 한인들이 대체 노동력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 조선에 온 미국 선교사들은 한인들이 매우 순종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씨는 선교사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녹취: 한인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1890년대 중반에 조선에 와서 선교를 한 미국 선교사들은 한인들을 기독교를 쉽게 받아들이고 참을성이 많고 근면하고 오랫동안 상류계급의 억압을 받아 순종적이며 중국인보다 가르치기 쉬운 민족이라고 봤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피조물이고 평등하다는 평등 사상은 조선인들을 열광하게 하였고, 그동안 지켜 오던 전통적 방법을 주저 없이 내려놓고 열심히 서양식 방법으로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한인 노동자들을 데려오기로 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동맹회는 그 일을 담당할 적임자를 구하는 데 고심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사탕수수 농장주 가운데 한 사람이 한국으로 가는 주한미국공사관 서기 호러스 앨런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한인들의 초창기 하와이 이민을 도운 호러스 앨런.(위키피디아)

한인들의 초창기 하와이 이민을 도운 호러스 앨런.(위키피디아)

 

의사 출신이었던 앨런은 갑신정변 당시 칼에 맞아 다친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해줘 고종의 신임을 받고 있었던 사람으로 한국과 미국의 유대관계를 견고히 하기 위해 미국의 한국 투자를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농장주들은 앨런을 통해 한인 이민을 추진했고 앨런도 한인들이 하와이에 이민 가는 것을 주선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당시 앨런은 사탕수수 농장주들에게 농장주들이 한인 노동자 이민에 필요한 재정 부분을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체계적으로 이민 사업을 실행하려면 4단계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낭독: 앨런] 첫째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한인 노동자들을 모집할 사람을 뽑아서 전국에 모집회사 지부를 세워야 합니다. 셋째 하와이사탕수수 농장주 협회가 미국 연방정부와 하와이 이민국이 한인 노동자 수입을 묵인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앨런은 미국 오하이오주 은행가이며 주지사인 조지 네쉬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주한 미국 공사가 됐습니다. 그러자 앨런은 네쉬의 의붓아들인 데이비드 데쉴러에게 한인 노동자를 모집하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앨런 공사는 1902년 3월 말 한국으로 돌아와 고종 황제를 알현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인 노동자들을 하와이로 이민 시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건의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황제가 수긍할 만한 몇 가지 설명과 제안을 했습니다.

 

[낭독: 앨런] 폐하! 하와이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 조처가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중국인이 못 가는 미국으로 한인들이 이민 갈 수가 있습니다.

 

앨런은 중국인 입국금지 조처가 내려지고 일본인들이 대거 미국 본토로 빠져나간 상황에서 한인들의 하와이 이주가 가능하다고 고종을 설득한 것입니다.

 

[낭독: 앨런] 이민자 모집과 송출 책임자로 미국인 데이비드 데쉴러를 추천합니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미국의 윌리엄 매킨리 전 대통령, 국무장관 셔먼, 또 세브란스 병원에 기금을 낸 세브란스 박사와 같이 오하이오주 출신입니다. 더군다나 폐하의 다섯째 아드님이신 의화군이 유학 간 곳도 바로 오하이오주 아닙니까?

 

앨런은 이렇게 데쉴러의 임명에 오하이오주와의 지연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조선의 급박한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조선에서는 1898년부터 연이은 가뭄과 홍수로 큰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했습니다. 거기에 1901년에는 더 전국적인 가뭄으로 기근이 계속되면서 민심이 흉흉했기 때문입니다.

 

[낭독: 앨런] 폐하! 연이어 든 흉년으로 식량 사정이 악화해서 백성들이 크게 고생하는데 이민을 보내면 그만큼 나라의 어려운 식량 사정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 살림에 도움이 되고 백성들이 폐하를 자비로운 군주라고 칭송할 것입니다.

 

앨런은 그러면서 이민자 송출이 황실 재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낭독: 앨런] 이민 여권 발급 부서를 외부가 아닌 황실 재정 담당 부서인 궁내부 산하에 두고 여권 발급에 들어오는 수수료를 확보해 황실 재정의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이어 앨런은 하와이 이민 실현이 국제정세에 유리할 것이라고 고종 황제를 설득했습니다.

 

[낭독: 앨런] 폐하! 하와이 이민이 실현되면 미국과의 관계 방식이 한 가지 더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과의 관계를 자꾸 늘리면 미국이 한국 상황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두게 될 것입니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 관심을 둘수록 일본의 침탈 야욕을 억제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고종 황제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앨런 공사가 고종황제에게 하와이 이민을 진언한 지 7개월 만인 1902년 11월 15일 데쉴러는 하와이 이민 모집 및 송출 사업의 전권을 부여한다는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16일 해외로 ‘수학 유람이나 농공상공으로 외국에 여행하는 한인에게 여행권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유민원을 궁내부 산하에 신설하라'는 고종 황제의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렇게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은 하와이 사탕수수 업계가 앨런 공사에게 부탁해 앨런이 고종황제를 설득하고 고종황제가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 승인함으로써 성사됐던 것입니다.

 

'인물로 보는 미주 한인사’, 오늘은 ‘안재창’ 1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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