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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1세대 이민자 안재창 (4) '본토 대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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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9

 

 

'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시간입니다. 오늘은 1902년 미국 하와이로 가는 첫 번째 이민선에 올랐던 안재창 네 번째 시간으로 안재창의 본토 대평원 생활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최초 한인 이민자들을 태운 미국 상선 갤릭호 (한국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

최초 한인 이민자들을 태운 미국 상선 갤릭호 (한국 국가기록원 소장 사진)

 

첫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에 왔던 안재창은 10개월 동안 첫 한인 이민자들이 보내진 모쿠레이아 농장에서 일하다가 호놀룰루와 한인 노동자들이 많은 에와 농장과 가까운 ‘와이파후’ 농장으로 1903년 11월에 옮겨 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인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씨는 안재창이 미국 본토에 이주할 기회를 본격적으로 엿보기 시작한 것은 하와이에 도착한 지 3년 반이 지난 1906년 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안재창이 미국 본토로 가려고 했던 것은 본토에 더 큰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한인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4년 일하면서 돈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와이 농장의 임금이 하루에 75전이었는데, 그의 두 배인 1달러 50전인 미국 본토로 가기를 원했고 미국 본토에 가서 자유기업제도를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당시 하와이에 와서 서부 간선 철도를 놓는 철도회사 노동자 모집에 응하지 않고 화물선을 타고 미국 본토에 동료들과 밀입국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두 번째 모험이었습니다.”

 

안재창은 1907년 이른 봄에 동료들과 화물선을 타고 본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그는 일거리가 많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떠났습니다.

 

안채창은 1907년 6월부터 1910년까지 유타주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약 1년 반 동안은 뜨내기 노동판에서 일하다가 1908년 경제공황이 오기 전에 노동판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씨는 안재창이 이후 정원사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안형주 씨] "미국 본토에 1907년에 밀입국한 안재창은 노동판을 떠돌아다니지 않고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북쪽 갈랜드에서 정원사로 정착하여 저녁에 성인 학교에 가서 영어를 배우고 돈을 모아 농장을 임대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지런하고 깔끔해 그가 가꾼 정원은 이웃에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와이 농장에서 함께 일했던 최경오가 안재창에게 네브래스카주 링컨으로 와서 함께 농사를 짓자고 제안합니다. 당시 최경오는 또 다른 한인사회 지도자인 박용만과 네브래스카주 농장에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안재창은 미국 대평원에서 믿을만한 사람들과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하고 링컨으로 이주했습니다.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씨는 이는 안재창의 세 번째 모험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안형주 씨] "안재창이 네브래스카로 간 것은 당시 재미 한인 지도자였던 박용만이 둔전병 독립군을 연구하여 농업에 관심이 많았고, 미국 정부가 건조한 대평원에 건지 경작법, 혼합 재배, 사료 재배, 대평원에서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 재배 연구 등 활발하게 농산물 재배를 연구하고, 농부들에게 봄에 농사에 필요한 돈을 꾸어주고 추수 후에 갚거나 봄에 농작물을 일정 가격으로 구입하는 등 새로운 재정 방안을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재창이 링컨에 가서 박용만을 만나고 박용만이 투자한 농장에 합자하여 농장을 경영하게 된 것은 안재창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박용만에게서 농장을 소유하게 되는 절차를 배우고, 한인소년병학교 출신이며 네브래스카 농과대학 졸업생이었던 정양필과 한시호에게 과학적으로 농사짓는 방법을 배웠으며 그들과 동업자가 되어 주식회사도 세웠습니다.

 

안재창이 네브래스카 대평원 지대에서 농사를 지을 당시 많은 한인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민사 전문가 안형주 씨는 이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개척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녹취: 안형주 씨] "한인들이 미국 대평원으로 가게 된 것은 미국 대륙 횡단 철도가 19세기 말에 완성되면서 동부 백인들은 날씨가 좋은 기회의 땅인 서부로 이주해 왔지만, 20세기 초 한인들은 반대로 동양인이 많은 서부에서 동양인이 없는 동쪽으로 일자리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 중부 대평원의 백인들이 원하지 않은 변두리 땅과 일자리를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남의 고용인이 되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자립하여 실업 자강을 추구하는 초기 이민자들의 개척정신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특히 1910년경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많이 한인이 살았던 것은 박용만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국으로 유학 온 한인들은 미국 서부 관문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 대동공보 사장인 문양목으로부터 링컨으로 가서 박용만의 조언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 일자리를 얻으러 링컨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1914년 안재창은 현찰 차용 형식으로 빌린 링컨 농장의 계약이 끝나자 새로운 모험에 나섭니다. 바로 회사를 세우고 동업자들과 직접 농장구매에 나섰던 것인데요. 이는 그의 네 번째 모험이었다고 안형주 씨는 설명합니다.

 

[녹취: 안형주 씨] ​"1914년 링컨 차용농장이 만기가 돌아오자 안재창은 네 번째 모험인 한인농업주식회사를 세우고 취지서를 재미 한인 신문인 ‘신한민보’에 발표했습니다. 그는 콜로라도주 웰드 카운티의 한적한 캘러턴 그릴리 설탕회사의 사탕무 찌꺼기를 버리는 폐기장 옆구리의 싸구려 땅을 매입했습니다. 이런 외딴곳에 농토를 사서 토지를 개간하고 미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 양배추, 상추. 호박, 오이, 당근 등을 재배하여 인근 작은 도시에 팔았던 것입니다."

 

당시 안채창이 동업자들과 함께 신한민보에 발표한 한인농업주식회사 취지서는 미국에 이민 온 지 10년이 넘은 자신들의 처지와 환경을 돌아보고 의지를 다지는 글이었습니다.

 

[낭독: 한인농업주식회사 취지서] 뿌리가 없으면 열매따기를 바라지 못할 것이고 곡식을 심지 않으면 추수하기를 기약하지 못할지니 만사 시작이 없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으니 그러면 우리가 오늘부터라도 사업의 기초를 잡지 않으면 오늘 내일 금년 명년 십 년 이십 년 지나 몇백, 몇 천년 후에라도 금일 형편에서 한 걸음을 떠날 수 없는 것이 사람마다 의심치 않을 일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한인농업주식회사는 재미 한인의 주식회사로는 처음으로 1918년 결산보고를 하고 이윤을 주주들에게 분배하고 해산했습니다. 당시 신한민보에는 다음과 같은 관련 기사가 실렸습니다.

 

[낭독: 신한민보 기사] 네브래스카주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몇 해 전에 농사주식회사를 조직하고 자본금을 모집하여 콜로라도 캘러턴에 토지를 사서 몇 해 동안 큰 이익을 얻었으므로 장차 그 회사의 사업을 일층 더 확장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팔아 이익금을 나누어 가지고 다시 더 좋은 실업을 경영할터이라 하더라.

 

이 기사에 따르면 한인농업주식회사가 성공적으로 농사를 지어 이익을 배분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한인농업주식회사는 농토 개발에 성공해 토지 가격을 높인 뒤에 이를 매각 처분해 주주들에게 이익을 분배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한인농업주식회사를 해산한 이후 안재창은 다섯 번째 모험에 나서는데요. 다시 안형주 씨의 설명입니다.

 

[녹취: 안형주 씨] "농지를 개간한 경험을 얻은 안재창은 다섯 번째 모험인 농지개간회사 ‘코리안 농척회사’를 1920년에 세우고 네브래스카에서 알게 된 한인들과 합자하여 콜로라도주 덴버시 외곽에 2만 달러를 주고 미개간지를 구입하여 나무와 바위를 제거하고 진입도로와 농도를 만들어 수리시설도 넣어서 농장을 만들어 팔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재창의 다섯 번째 모험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그는 여섯 번째 모험에 나서게 됩니다.

 

[녹취: 안형주 씨] "그러나 투지 구입 과정에서 과잉 투자로 운영 자금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카고의 한 동포가 수천 달러를 투자하여 코리안 농척회사는 곤경을 면할 수 있었고, 안재창은 네브래스카 농과 대학을 졸업한 한시호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디트로이트로 가서 여섯 번째 모험인 중국 음식 도매업을 정양필과 1921년에 도전하였던 것입니다."

 

'인물로 보는 미주 한인사', 오늘은 '안재창' 4편으로 안재창의 본토 대평원 생활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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