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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 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 (1) '신사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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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미주 한인 가운데 굵직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의 생애를 소개함으로써 100년이 넘어가는 미주 한인사를 정리합니다. ‘인물로 돌아보는 미주 한인사’가 선정한 첫 번째 인물은 하와이 사진신부였던 천연희입니다.

 

1964년 자신의 카네이션 농장에 앉아있는 천연희. (사진제공=일조각)

1964년 자신의 카네이션 농장에 앉아있는 천연희. (사진제공=일조각)

 

1915년 2월 28일. 천연희는 어머니와 언니의 송별을 받으며 고향 진주를 떠났습니다.

 

그는 마산을 거쳐 부산에서 일본 시모노세키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기차로 고베까지 갔습니다. 그는 고베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에 배를 타고 13일이 걸려 이해 6월 20일 마침내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습니다. 천연희는 훗날 직접 쓴 기록에서 일본을 떠날 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배 나루에 당도하니 청청한 넓고 넓은 태평양 바다가 보인다. 그중에 배가 보인다. 이름은 시베리아다. 배에 올라 요코하마에 당도하였다 한다. 거기서 선객을 실었다. 다른 선객들과 함께 시베리아호를 타고 쏜살같이 태평양 바다로, 한국과일본을 작별하고 둥실둥실 물고개를 넘고 파도에부닥치면서 사흘을 갔다."

 

천연희를 실은 시베리아호는 천연희같이 일본에서 미국 하와이로 가는 사진신부들을 싣고 있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 조선에서 미국으로 사진신부가 건너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1908년 미국과 일본이 체결한 신사협약이었습니다. 한국 대진대학교 김지원 교수는 신사협약이 원래 일본인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김지원 대진대학교 교수] “주된 내용은 뭐냐면 일본이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일본인이나 한인노동자들에게 여권 발급을 중지하라는 거에요. 그래서 미국으로의 이민을 제한해 달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걸 국가가 서명해서 협정을 맺게 돼요.”

 

그런데 이 신사협정에 예상치 못한 조항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을 배려해 이미 미국에 들어와 있는 노동자나 그의 부모, 자녀, 배우자에게는 계속 여권을 발급한다는 항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일본에 있는 부인은 미국에 있는 남편과 결합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애초에 미국인들은 이미 결혼한 일본인 남성이 본국 부인을 데려와 재결합하는 방식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진결혼이 성행하게 됐습니다. 결혼 상대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 사진을 통해 배우자를 고르는 방안이 등장한 것입니다. 특히 결혼을 위해 미국으로 가려는 한인 여성들은 일본으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아 미국으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독신남자의 사진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고 미국으로 이주하는 이른바 사진신부가 생겨났습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첫 한인 사진신부는 1910년 12월 2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최사라로 당시 23세였습니다. 신랑은 당시 38세의 사업가 이내수로 두 사람은 호놀룰루의 한인 감리교 목사 민찬호의 주례로 이민국에서 혼례식을 거행했습니다. 대진대학교 김지원 교수는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사진신부가 약 1천 명이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김지원 교수] “한인 사진신부는 1910년 11월부터 1924년 이민법으로 중단될 때까지 왔는데, 당시에 하와이와 캘리포니아가 두 거점이었거든요. 당시에 하와이에는 약 951명, 그리고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는 115명의 사진 신부가 이주했어요. 그래서 총 1천 66명이라는 대략적인 통계가 있는데, 하와이 쪽은 약간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사진신부의 이주는 1924년부터 전면 중단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미국 안에서 다시 부상한 일본인 배척 움직임 때문이었다고 김지원 교수는 설명합니다.

 

[녹취: 김지원 교수]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니까 급속하게 일본인 배척 운동이 재개되는데, 주된 이유가 신사협정의 결과 때문이었어요. (왜냐하면) 미국 정부가 신사협정을 체결한 주된 목적이 일본 정부가 자발적으로 일본인 이민을 중단시키도록 배려한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결과가 정반대였어요.”

 

즉 일본인 이민을 규제하고, 본국에서 이미 결혼한 여성을 미국으로 데려와 가족이 결합할 것으로 예상했던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사진결혼을 통해 많은 여성이 미국으로 이주하고, 일본인 2세마저 급증하자 일본인을 배척하려는 움직임이 일본인 배척 운동의 본산지였던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강력히 전개됐던 것입니다.

 

일본인 배척주의자들은 신사협정 폐지 등을 요구하면서 일본인 이민 배척이 연방법으로 제정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1924년 이민법 내 배척조항에 따라 일본인 이민이 전면 배척되고, 사진신부도 중단됐습니다.

 

그렇다면 한인 사진신부들은 왜 미국행을 택한 것이었을까요? 20세기 초 하와이에서 한인들이 발행한 ‘국민보’의 사설은 이 문제에 대한 단서를 주고 있습니다.

 

본국을 떠나는 것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으되그것을 함께 합하여 말하면 애국성이다. 본의는 대개 외국 유람을 애국지사의 남편을 얻어그의 힘을 의뢰하여 공부도 더하고, 사업도 경영하며, 다른 대조선 독립에 성공한 부부가 되기를희망함이다.”

국민보 사설은 이렇게 애국성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기는 자신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와 연관돼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김지원 대진대학교 교수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이주한 한인 사진신부 25명의 사례를 연구해 본 결과, 이주 동기가 원래 알려진 것보다 다양했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김지원 교수] “주된 이주 동기가 학업에 대한, 교육에 대한 욕구였다는 것이죠. 25명 중에서 15명, 그러니까 60%가 교육이 이주동기였고, 그다음으로는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3명, 그리고 결혼이 2명, 경제적인 이유가 2명, 그리고 (나머지는) 알려지지 않음 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진결혼이었음에도 결혼이 아주 작은 이주 동기였음을 알 수 있죠.”

 

김지원 교수는 이런 연구 결과를 보면, 당시 한국 여성들의 수동적인 모습과는 달리 사진신부들의 자기 삶에 대한 적극적인 선택 의지가 강력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천연희도 자신의 기록에서 사진신부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그때는 외국 희망에 사랑이고 무엇이고 아무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고 자유의 나라에 생각밖에 없었다. 시집을 가서 남편과 사랑하고 살겠다는마음은 둘째요. 외국 가는 것이 번째가 되어 서둘러 주선하였다. 하와이 오면 천당에 오는 알고, 미국이면 천당인 알고, 일본사람들 보기 싫으니까 보고 내자유를 찾아간다고 좋아했다.”

 

천연희는 가난과 기근에 시달리는 답답한 현실을 떠나 ‘부유한 나라 미국’ 또는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문옥표 명예교수는 천연희의 미국 이주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녹취: 문옥표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그때당시 나라를 빼앗기고, 집안도 어렵고…, 전통적으로 남녀차별이 있으니까 여자아이들을 공부도 할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고, 그런 데서 그런 (하와이사진신부) 이야기가 나오니까…, 여자들은 그저 자유롭고 부유한 나라 미국으로 가면 공부도 수있고, 돈도 많이 있을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던 같습니다.”

 

문옥표 교수는 또 천연희는 그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배움이 없었던 소녀가 아니었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문옥표 교수]천연희 경우는 다른 사람하고조금 다른 거는 당시에 여성들 취학률이 굉장히낮았고, 거의 공부하는 여자들이 없었을 , 천연희는 그대로 기독교 계통 학교에서 6 정도공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황이 달랐죠.”

 

20세기 초 하와이로 이주한 사탕수수 노동자들에게 사진신부로 간 다른 여성들과 비교하면 천연희는 가정 형편이 나은 편이었고 교육도 받은 여성이었습니다. 거기에 천연희의 미국 이주를 막을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없었다는 점, 또 많은 자식을 잃고 기독교로 개종한 어머니가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천연희가 사진신부로 가는 것을 허락한 덕에 천연희는 하와이 사진신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연희를 부푼 꿈을 안고 자유의 나라 미국으로 향했지만, 고된 인생길이 천연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물로 보는 미주 한인사’, 오늘은 ‘하와이 사진신부 – 천연희’ 1편을 보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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