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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회 한인교회를 생각하다 (上)

Winnipeg101 LV 10 21-12-10 294

머리말

 

 

그 상징성으로 인해 호주 일간지뿐만 아니라 한국 온라인 미디어에서도 기사화 된 사건이 있었다. 2010년 호주 Sydney에 있는 Denistone East Uniting Church는 기존 신도들에게 지난 58년간 영어로 진행되었던 일요일 영어 예배는 신도들의 참여가 없음에 따라 전면 중단되고 대신 수요가 많은 한국인 신도들을 위한 주심 장로교회의 한국어 예배들로 대체된다는 발표를 한다. 합리주의를 기본 철학으로 삼는 유러피안 호주인들에게 신도가 없어 예배서비스를 중단한다는 것은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라 씁슬하지만 받아들여야하는 합리적 결론이긴하지만 그 자리를 아시안 이민자들이 준비된 것처럼 채운다는 현실은 현지 미디어에서 기사화할 만큼 여러 질문들을 그들에게 던지는 듯하다.

 

2010년 3월 21일 Denistone East Uniting Church 에서 열린 마지막 영어예배 (출처: 오마이뉴스)
 

이전까지 Uniting Church의 건물을 빌려 한국어 예배를 진행했던 시드니 주심 장로교회  (출처: The Daily Telegraph)

 

이 사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호주는 기독교 인구가 줄어드는데 뉴질랜드는 한술 더 뜨는 상황이다. 호주의 2016년 센서스에서 응답자 중 약 52%는 기독교인 그리고 30%는 무종교인이라고 대답한 반면 뉴질랜드 경우 2013년 센서스에서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채 49%가 되지 않았는데 이는 2006년 센서스 당시의 약 56%에서 7% 줄어든 숫자이다. 반면 무종교인은 2006년 약 32%에서 2013년 약 39%로 7% 증가했다. 단순 유추를 하자면 이 7%의 차이를 만들어 낸 응답자들이 7년 사이 기독교를 떠나 무종교인에 된 셈인데 이 무종교 응답자들의 약 81%가 뉴질랜드 출생자들임과 동 기간 뉴질랜드 출생 기독교인들이 76프로에서 약 73%로 감소한 것을 고려했을 때 이 들 대부분이 파케하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할 것이다.

 

반면 이 기간 아시아 출생 기독교인 비율은 3.8에서5.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센서스에서 드러난 아시안 기독교인 인구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필리핀 약 3만7천, 중국 약 3만4천, 인도 약 2만 2천 그리고 한국 약 2만. 즉 아시안 기독교 신자의 절대 숫자는 늘었지만 뉴질랜드 전체적으로는 줄어드는 동향을 보여주고 있다. 한 국가 내 55% 이상의 인구가 기독교 신앙생활을 할 경우 이 국가를 기독교 국가(Christian country)라고 할 수 있는데 뉴질랜드는 이런 측면에서 비기독교 국가인 셈이다. 더구나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할 사람들 중 교회를 규칙적으로 가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한인 이민자 교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낸다는 속담을 연상시키는 위 호주 교회의 신도 구성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서구 이민자 사회에서 한인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은 현지 유러피안 원주민의 쇠약해져가는 신앙 생활과 대조적으로 매우 활발하다. 2013년 센서스에 의하면 뉴질랜드 한국 교민의 약 57%가 기독교인이며 이 중 개신교인은 약 33%인데 이는 한국 내 기독교인 비율이 2018년 현재 약 28%, 이 중 개신교인 비율이 약 20%임을 감안하면 유의미하게 높은 비율이다. 
 

오클랜드 기준 한인 교회의 숫자는 측정 기준에 따라 달라져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지만 뉴질랜드 한인 기독교 포탈을 자처하는 웹사이트 (https://www.onechurch.nz/directory)의 뉴질랜드 한인교회 주소록을 참조하면 약 21,000명이 살고있는 오클랜드 지역에 96개의 기독교 기관/단체가 등록되어있다. 이들 기관/단체의 대표는 목사, 전도사, 사관 그리고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정기적으로 주일예배 서비스를 하는 곳과 하지 않는 곳이 혼재되어 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기독교 언론 크리스챤 투데이에 따르면 2018년 현재 4,454개의 교회가 그리고 호주의 경우 205개의 한인 교회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졌다.

 

이토록 이민사회에 한인교회 (Korean ethnic church)가 많은데에는 – 전 교민의 신도화를 기대하는 혹자에게는 이 숫자가 많지 않을지 모르겠다 - 여러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한인교회 직접적 운영자인 목회자를 둘러싼 Push and Pull factor들을 살펴본 후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역할에 대해 고찰을 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 내 목사후보자의 양산과 탈출구 뉴질랜드

기독교 연합신문 아이굿뉴스에 의하면 비공식 통계로 한국에서는 한 해 최소 7천명의 목사후보생이 쏟아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끊임없이 증가할 것같았던 개신교 신도 숫자도 2012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졸업생은 이와 무관하게 통제가 안되면서 개신교 Heyday 시절과 다름없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신도 100명 교회의 부교역자를 뽑는데 수십장의 이력서가 쇄도할 정도로 목사후보생들의 취업(사역교회 찾기)이 힘든 상황이다. 이와 같은 신규 목회자를 둘러싼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불균형 상황에 대해 개신교 내에서는 미국의 신학교 협의회(ATS:Association Theological School)과 같이 일원화된 학위 인증기관이 없이 각 교단별로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기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허나 문제의 원인에 대해선 공통되게 인식하지만 해결 방안을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각 교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후보생들은 국내 취업 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해외 시장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 이민 역사가 오래된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에는 일찍부터 이 이민 사회에 눈길을 돌린 목회자들이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1974년 호주 이민 시장이 개방되면서 호주 역시 한국 목회자나 지망생들에게는 또 하나의 취업 시장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1987년 이민법 개정 이후 개방된 뉴질랜드 이민으로 뉴질랜드도 한국 목사후보생들의 취업 리스트 국가에 포함되게 된다. 그리고 미국 호주 뉴질랜드를 거쳐 오는 동안 한국의 교단에서도 소속 목사나 목사후보생의 해외 파견절차에 대한 노우하우가 쌓이면서 좀 더 수월하게 이들 해외 목회 희망자들과 현지 스폰서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Pull factor도 있다. 뉴질랜드에서 목회자로서 일을 하면서 영주를 하고 싶은 사람은 일단 Religious Worker Work Visa를 신청하는데 이는 Work Visa의 일종으로 첫 신청으로 2년까지 스폰서를 해준 종교기관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며 이후 다시 한번 이 비자를 신청해서 총 4년까지 뉴질랜드에 체류할 수 있다. 이 기간 중 3년동안 Religious Worker Work Visa 상태를 유지하면서 종교활동을 한 사람은 영주권 (Religious Worker Residence from Work visa)을 신청할 수 있다. 영주권을 일단 승인받게되면 다른 웍비자를 통해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처럼 다른 직업에 종사할 수있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얻게되어 더 이상 종교인일 필요는 없게된다.

 

이 Religious Worker Work Visa가 다른 일반 Work Visa와 다른 점은 해당 업무 자체가 비영리성 종교활동임을 인정받아 다른 Work Visa에 비해 급여나 노동시간 등과 같은 발급 조건이 까다롭지 않다는 점이다. 즉 적정 스폰서를 확보할 경우 Work Visa를 상대적으로 쉽게 받을 수 있으며 3년 뒤 영주권 역시 다른 영주권 카테고리 심사시 적용하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녀의 경우 신청자가 충분한 수입이 없어도 스폰서가 자녀까지 스폰서할 경우 신청자가 웍비자 소지 기간 동안 자녀들도 학생비자를 받을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젊은 한국 목회자 희망자에게 뉴질랜드는 목회라는 커리어와 동시에 서구권 이민생활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는 기회의 땅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역할

목사희망자가 아무리 많아도 기본적으로 이들을 필요로 하는 시장, 즉 수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민사회의 한인교회에 대한 수요는 분명 있으며 이 수요는 인구 대비 한국사회보다 많다. 이렇게 한국과 비교, 많은 수요가 있는데에는 이민사회만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한인교회의 역할이 있기때문이다

 

미국 목사 Gilford T. Monrose에 의하면 교회는 사람들의 영적(spiritual), 물질적(physical) 그리고 정서적(emotional) 필요(needs)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 역할 구분에 의하면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첫번째 역할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목사의 설교 그리고 성경 공부 등을 통한 영적 치유(spiritual fix)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이민사회인만큼 한국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일반적 사회생활에서 기인하는 마음의 상처 외에 이민자로서 주류사회와의 부정적 접촉 경험 – 가령 인종차별 - 을 통해 생기는 소수민족 이민자로서의 심적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주류사회 파케하 중심의 교회보다는 같은 경험을 하는 한국인신도로 구성된 이민자교회가 더 적합한 힐링의 장소가 될 것이다.

 

두번째 역할은 비신도 교민들도 겪어봤을 교민들의 초기 정착도움 서비스 기능이다. 한국의 교회와 달리 이민사회 한인교회는 보다 더 복합적 기관(multidimensional Institution)이다. 위의 영적 치유가 교회에게 바라는 영적인 도움(spiritual needs)이라면 정착도움 서비스는 비종교적 현실적 도움(physical needs)이다. 마가복음 8장 1절-9절사이에 보이는 예수의 행적 - 광야에서 4천명을 배불리게 먹였다- 처럼 신도들의 일상 생활에서의 물질적 필요라는 비종교적 영역의 도움 요청에 응답함으로써 이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민 초기 작은 교회 목사는 신도의 렌트집 구하는 것부터 중고자동차구입 그리고 자녀 학교 입학 알선까지 이민생활의 모든 면을 안내해주는 가이드역할을 수행했다.

 

세번째 역할은 두번째 현실적 도움과 맞물려 정착 이후 교민공동체의 거점 역할이다. 교회를 통해서 신도들사이에서 구직 구인 및 비지니스 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신도들의 비지니스 간 호혜협력 관계가 이루어지도 하고 사적으로 신도 집안 간 혼사가 오가기도 한다. 또한 새 이민자는 교회를 통해서 교민사회로의 수월한 진입이 가능하게된다. 교민사회에는 교민들의 공동체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가령 한인식품점이나 취미활동회같은 다양한 형태의 교민 결집형태가 있다.하지만 한인교회만큼 규칙적으로 자발적 동원능력을 가진 교민공동체 거점 역할은 다른 곳에서 찾기힘들 것이다.

 

허지만 한인교회의 교민공동체로서의 역할 중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민사회 한인교회가 한인신도들에게 한국인 정체성- ethnic identity, Koreaness- 을 반복적으로 확인을 시킴으로써 집에 온 것같은 정서적 평안(emotional needs)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 수행을 통해 한인교회는 교민들이 기대하는 물리적 그리고 정서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된다.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특징

이처럼 이민사회 한인교회들은 영적 물질적 그리고 정서적 needs를 가진 교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서구 이민사회에서 한인교회가 현지 교회들과 차별화되는 특징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호주 한인 사회학자인 Monash University의 한길수(Gil-Soo Han)와 뉴질랜드 Victoria University의 Andrew Butcher 그리고 Carey Baptist College의 George Wieland 등의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서구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공통된 특징은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영적 치유과정과 교회문화는 근본주의적(fundamentalist)이고 보수적(conservative)이다.반면 신도들의 이민생활에 필요한 현실적 물질적 도움은 매우 세속화(secularized)되어있으며 정서적 치유과정에서는 ethnicity identity - Koreaness- 를 적극 활용한다.

 

 

한인교회 내 권위주의

학자들은 한인교회(Korean ethnic church)의 보수성과 권위주의를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이들에 의하면 한인교회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면에서 목사가 추장(Matai)와 같은 권위를 행사하는 사모안 이민자 교회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한인교회 내에서는 조직의 운영방침에 관한 결정은 대부분 장로정치(gerontocracy)로 상징되는 1세대 남성신도에 의해 결정되며 많은 경우 1.5 혹은 2세대 그리고 여성은 이 과정에서 배제된다.

 

이와 같은 1세대 남성 중심의 한인교회 문화는 1세대 남성들의 이민으로 인한 그들의 사회적 지위 변화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1세대들이 한국의 수직적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한 세대들이라는 사실을 떠나 이들이 뉴질랜드와 같은 서구권에 이민 올 때는 잘 알려졌다시피 자신들에게는 좀 더 정신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기대함과 동시에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려는 이유가 크다. 허나 이민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종의 아노미(Anomie)를 겪게된다. 한국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주변으로부터 일정 존경을 받던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자신이었는데 이민생활 시작과 동시에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급격하게 겪으면서 어느덧 주변인(marginalized)으로 몰락한 자신을 발견하게되는 것이다.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로 그리고 현지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또 때론 아무 이유없이 아시안이란 이유만으로 현지 주류 사회구성원으로부터 부적절한 대접을 받으면서 자존감의 추락을 경험한다. 그리고 뉴질랜드와 같이 수평적 인간관계가 보편화된 리버럴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르신대접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된다. 여기에 더해 이민생활의 연차가 지나면서 한국을 떠나올 때 자신과 직장생활 혹은 사회생활을 같이했던 동기들이 이제 한국사회에서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있음을 발견하게된다. 그 기간동안 자신은 미세먼지없고 스트레스없는 사회에서 잘 살아왔고 자녀들이 훨씬 인간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되새기며 자위해보지만 자신의 나이에 걸맞는 사회적 권위와 존경이 없는 현지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좌절감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갈증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런 1세대들에게 한인공동체 특히 한인교회는 자신의 잃어버린 자존감과 사회적 권위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준다. 한인교회 내에서 일정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이 주류 사회에서 가지기 힘들었던 사회적 지위와 권위 그리고 자신의 나이에 걸맞는 공경대우를 받음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또 이민 초기에는 자녀들을 삶의 모든 측면에서 안내하고 이끌었으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언어적으로나 현지 지식과 기술 측면에서 부모와 자녀 간 역학관계(power relations)의 역전 현상을 겪으면서 무너진 가장의 권위도 한인교회에 들어오는 순간 다시 되살아나게 된다. 이런 이민 1세대 남성들의 한인교회 활동을 통한 자존감의 회복과 유지 시도는 한인교회 내 가부장적 문화를 고착화시킴과 동시에 한인교회가 배타적 ethnicity (ethnocentric) 조직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인교회의 가부장적(patriarchal) 문화

2000년 뉴질랜드 교민사회 및 한인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사회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20여명의 신도를 거느렸던 오클랜드 개척교회 한인 목사 Luke Lee의 폭력적 exorcism(구마의식)으로 인해 한인 여성신도가 숨진 사건이었다. 그 여성신도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며 시신을 방치했다가 이웃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 이 목사는 1심에서 과실치사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2005년에 열린 항소심에서 피해자가 사전에 이 마귀퇴치식에 동의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무죄로 판결이 번복된 채 사건이 종료되었다. 이 항소심 판결이후 뉴질랜드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여성 피해자가 왜 그토록 Luke Lee 목사에게 복종적이었는가였는데 가장 큰 이유로 한인교회의 가부장적(patriarchal)문화를 손꼽았다.

 

교회 내 가부장적 문화는 단지 이민사회 한인교회에 국한되지않는다. 기독교타임즈에 따르면 한국교회 내 성 평등지수는 2.91로 오히려 교회 밖 사회 성평등지수 3.58보다 낮게 나타났다. 그리고 경찰청이 발표한 2011-15년 성범죄 검거자(아마 전문직군에 한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에 따르면 검거자 1,258명 중 종교인이 450명으로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 종교인에는 타 종교인도 포함되나 개신교 목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교회 내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남성 목회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교회의 절대적인 위계관계 속에서 목사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이 용납되지 않기때문이다.

 

한국교회 내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발언을 한 어느 목사
 

성경에서는 남녀가 믿음 안에서 동등하다고 전파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장 28절). 개신교는 서구로부터 한국에 전파된 종교이고 서구의 리버럴리즘은 아시아권보다 훨씬 이전부터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내 개신교 교회와 서구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가부장적 문화는 성경의 가르침 영향도 아니고 이민사회의 문화탓도 아닌 오롯이 한국개신교와 한국교회의 문제로 귀착된다. 즉 ‘한국적 기독교’의 문제인 것이다.

 

 

한인교회 개신교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화

이런 상황과 맞물려서 이민사회 한인교회는 한국 내 교회처럼 수직적 권위주의 문화가 보편화됨과 동시에 근본주의적(fundamentalist) 성향을 띠게된다. 느슨하고 덜 열성적이고 타협적이며 세속화된 것처럼 보이는 유러피안 교회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목도하면서 절대적인 헌신과 믿음을 강조하는 religious fundamentalism에 치우치는 경향을 띤다. 이는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서구화되어가는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보여줄 수 있는 이민 1세대 남성의 몇 안되는 영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러피안 신도 중심의 현지교회에서는 보기 힘든 매일의 새벽기도 그리고 관상(contemplation)기도나 묵상(meditation)기도 대신 19세기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올 때 미국 선교사들이 선교방식으로 도입한 미국 부흥회에서 사용되는 통성기도 방식을 더 열정적 신앙인의 기도 형식으로 믿으면서 이를 고집하는 것도 이런 근본주의적 경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통성기도하는 한국의 목사들(출처:NEWS M)
 

이런 이민사회 한인교회 신앙의 근본주의화 성향은 이들 교회 목사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신학공부와 훈련을 마친 한국출신 목사들이라는 사실에 의해 더 강화된다. 즉 이 한국출신 목사들은 현지에 대한 지식이나 문화 그리고 더 나아가 현지 주류사회 교회에 대한 이해가 약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이민사회의 교민 신도들에 대한 영적 치유(spiritual fix)는 자연스러이 교민들이 현지 사회와의 접촉과정에서 경험하는 현실적인 needs에 대한 맞춤 치유가 되기보다는 원칙적이고 근본주의적 치유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목회자가 이민사회에서 신학교육 과정을 이수하거나 혹은 성장과정을 거친 1.5세대 혹은 2세대가 아닌 순수 한국출신일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우려점들은 아래에서 짚어볼 현지사회에서의 Korean ethnicity의 배타성(exclusiveness)과 단절성(segregation)의 공고화이다.

 

 

한인교회의 고질병, 분열(Schism)

시쳇말로 한국이민자가 가는 곳에 반드시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가 설립된 후엔 반드시 분열이 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호주 시드니 한인사회을 사분오열시켰던 시드니 Strathfield의 UCA 한인교구의 분열은 이런 모습의 대표적인 예다. 한인교회의 분열(schism)은 그 원인으로 당사자들은 대외적으로 신학적 견해 차이를 내세우나 내부인들의 전언이나 학자들의 관찰 결과로는 그렇지않다. 

 

많은 경우 한인교회의 실질적인 대주주를 자처하는 이들은 전술했듯이 교회활동을 통해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지키고 싶어하는 이민 1세대 남성들인데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교회가 운영되지 않을 경우 목사를 교체하거나 아니면 따로 독립해서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고 새로운 목사를 한국에서 초빙하는 형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외에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교인 숫자로 자신의 세과시를 하고싶어하는 권위주의적 목사들도 유입되면서 목사들 간 알력이 이런 분열상에 일조를 하기도 한다. 즉 목사의 권위와 신도의 권위 간 충돌 그리고 제한된 신도를 둘러싸고 목사와 목사들 간 이해관계의 충돌 등이 한인교회의 분열에 일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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