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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회 한인교회를 생각하다 (下)

Winnipeg101 LV 10 21-12-10 208

 

교민들이 한인교회에 의지하는 과정

이민사회 내 한인교회는 신도들의 영적 치유에 대한 기대(spiritual needs)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이처럼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또한 권위주의적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한인교회의 또 다른 역할은 교민신도들의 정서적 치유에 대한 기대(emotional needs)를 충족시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Korean ethnicity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Carolyn Morris 외 2인은 크라이스트처치 교민 가정들을 상대로 그들이 이민 생활에서 겪는 사회적 소외감(social exclusion)과 차별을 어떻게 극복해나아가는지를 연구한 바있다. 이들의 연구는 이민자들이 이민생활을 하면서 왜 그리고 어떻게 한인교회를 찾게되는지를 잘 보여주고있다.

 

모든 교민들이 이민생활의 시작부터 작심하고 교민공동체나 한인교회를 찾지는 않는다. 이민 오기전 한국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교민들은 신앙생활을 지속하고 싶어 자연스러이 교회를 찾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들 중에는 현지 교회를 다니면서 현지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과거와 달리 정착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영어라는 장벽에 의해 초기에는 여전히 교민공동체의 gate keeper라고 할 수 있는 직종에 종사하는 한인들에게 많이 의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초기에 교민공동체나 한인교회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계속적으로 교민공동체나 한인교회에만 머물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들이 일정 기간 현지 주류사회에서 현지인들과 접촉을 하면서 그 접촉 경험의 결과 교민공동체 특히 한인교회를 ‘자발적으로’ 찾게되는 과정이다. 초기에 한인공동체 혹은 한인교회의 도움을 구하는 과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한다면 현지사회 정착을 위한 1차 노력을 기울인 교민들이 이후 한인교회를 찾게되는 과정은 교민들에게 있어 종교(religion)와 한국인정체성 (ethnicity)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를 보여준다.

 

기본 정착과정 – 집 구하기와 자녀 학교입학 등 - 을 마친 교민들은 본격적으로 현지사회 적응을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 이들의 머리 속에는 파케하나 마오리 현지인들과 이웃으로서 친분을 쌓아가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현지인이 다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때론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하루종일 우울해지기도 한다. 간혹 주변에 자신과 가족들에게 친절한 키위 이웃을 만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의 친절이 온정주의(paternalism)에 기초한 하향적 박애의 산물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또 자녀 학교행사에 참여하면 키위 학생 엄마들과 반갑게 헬로를 하지만 그 것이 전부일 뿐 행사 내내 혼자만의 어색한 시간을 감내해야 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모든 상황들이 설사 자신에게 적대적이지 않더라도 자신이 겉돌고 있다라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키위사회가 대놓고 자신을 밀어내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그들의 세계 we에 끼지못하는 other, 그 것도 아주 소수의 other임을 자각하게 된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피폐해져가는 상황에서 교민공동체 특히 한인교회는 오아시스같은 안식처로 다가온다. 특히 한인교회는 교민공동체가 제공해주는 내가 여기선 we의 한 부분이구나라는 집에 온 것같은 정서적 편안함(emotional fix)뿐만 아니라 다른 교민공동체는 담아낼 수 없는 영적 치유(spiritual fix) - 절대성을 통한 영적 위로 - 까지 함께 제공한다. 그리하여 일주일 중 5일 혹은 6일동안 현지사회에서의 사회적 소외 경험으로 지친 영혼과 고단한 마음에 대한 위로와 충전을 마치고 다시 현지사회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한인교회 내 한국인 정체성 강조의 위험성

이렇게 한인교회에 가면 같은 민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정서적 편안함과 그리고 더 나아가 현실 이민생활의 번뇌를 초월케 하는 피안의 존재에 의한 영적 무장을 통해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같은 민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정서적 편안함을 통한 재충전의 과정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민족(same ethnicity)이란 장점에 집착할 경우 현지 주류사회에서 other로 취급받으면서 생성된 사회적 소외감으로부터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지키기 위한 반작용(reaction)으로 찾은 한인교회가 이제 역으로 현지 사회를 other world 그리고 현지인들을 other로 여기는 역 타자화(othering)의 진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현지사회와의 융화를 목표로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노력을 했지만 이런 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주지 못한 현지 사회에 대해 상호타자화(mutual othering)라는 보복식 선택은 파국적 평행사회만을 초래할 것이므로 지극히 위험하다. 
 

위 연구의 저자들은 한국 이민자들이 사회적 융합(social cohesion)에 동참하지 못하고 한인공동체 (ethnic community)) 그리고 한인교회(ethnic church)로 퇴각하게 된 책임은 사회적 소외(social exclusion) 원인 제공을 한 현지 주류사회라고 결론지으나 이 결론은 현지 학계와 현지 주류사회에게 던지는 충고 메세이지 교민들은 이와 같은 결론에 동조하면서 주류사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된다. 저자들도 다른 부분에서 한인교회가 현지사회와의 넷트웍 구축의 기회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바있다.

 

만약 한인교회 목사들이 현지 사회에서 other로 취급받아 상처받은 교민신도들에게 현지 키위사회와 키위들을 other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신도들에게 만족감을 주려한다면 이는 잘못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이들에게 “저들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지 이해를 못해요” “우리같은 이민자들 아니면 이 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겠어요?” 와 같은 ‘국뽕’(국가 히로뽕의 약자로 현실적 역학관계를 무시한 심한 자위적 국수주의와 자기민족 우월주의를 일컫는 인터넷 유행어)식 언급으로 위안을 주려한다면 이는 현지사회 소외감이란 정서적 상처에 대한 정면 치료가 아닌 상처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마약 처방일 뿐이다.

 

한인교회는 현지사회에서 인종차별과 사회적 소외 그리고 스테레오타입과 같은 타자화 경험을 하는 신도들에게 위로와 더불어 그 부정적 체험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균형감있게 접근하면서 이를 생산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곳으로서 자리 매김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한인교회 목회자는 신도들이 현지사회에서 겪는 사회적 소외감의 실체와 그 원인 그리고 의미에 대해 조감도와 같은 이해가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이민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가 개인적 민감함인지 아니면 뉴질랜드 사회가 이민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었는지 또 이민자를 향한 이런 차별과 소외감이 없어지기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 사회적 변화인지 등과 같은 사회학적 이해가 있어야한다.

 

허나 서구권 이민사회의 한인교회는 이런 준비가 미흡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전술했듯이 한국에서 파견된 목사의 경우 비록 오기전 이곳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왔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other와의 공존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즉 본인이 타자화(othering)의 대상이 되어 본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그렇기때문에 신도들의 타자화라는 이민사회 내 생활 경험에 대해 같은 경험을 가진 이민자로서 이에 근거한 맞춤형의 인도를 하기 보단 근본주의적 신앙생활에 대한 독려와 더불어 한국적 정체성(Koreaness)과 한인교회 공동체가 제공하는 평안함을 통한 치유와 재충전에 치중하는 한계를 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Uniting Church in Australia
 

이민사회 한인교회가 현지사회와의 공존방식에 대해 경험과 철학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0년대 한국인들의 호주 이민이 본격화되고 한인교회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호주 UCA(Uniting Church in Australia)의 경우 ‘We are a multicultural church’라는 슬로건 아래 소수민족 교회인 한인교회에도 같은 우산 속에서 활동할 것을 제안한다. 이 제안에 대해 한인교회는 한국식 장로회(presbytery)의 결성권 보장을 조건으로 내세운다. 이에 대해 UCA내 참관자는 만약 한인교회에게 UCA 간섭없이 독자적으로 운영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장로회가 허락되면 한인교회의 전체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수직위계질서 요소들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크게 우려를 표명한다.이런 호주 한인교회의 요구는 현지사회와의 사회적 융합 (social cohesion)이나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기본 철학이 없이 자신의 기득권에만 몰두한다는 인상을 지울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한인교회가 폐쇄적 ethnic community의 한 거점으로 남으려는 배경 중에는 비지니스적 판단도 어쩔 수 없이 개입될 것이다. 목사의 수입이 신도숫자에 비례하는 만큼 신도들에게 한인교회라는 초기 인큐베이팅 과정을 마치면 과감히 현지 교회로 가거나 아니면 다문화 교회를 표방하는 교회로 가서 좀 더 현지 사회와 부딪치면서 다른 ethnic group들과의 조우 기회를 많이 가지라고 적극적으로 등 떠밀기에는 한계가 있어보인다. 통상 개신교의 경우 교회 신자가 최소 100명이 되어야 목사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한다. 뉴질랜드 한인교회의 경우 교회 별 신도 숫자를 정확하게파악하기 어려우나 호주 시드니의 경우 1990년 초 기준 한인교회의 약 80프로가 100인 미만의 신도를 가지고 있었고 당시 교회 목사의 2/3가 세컨드 잡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런 목회자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한인교회 대주주임을 자처하는 교민 1세대 남성 신도들에게도 한인교회는 자신들의 사회적 권위를 확인해줄 수 있는 공간이기에 존속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교회 (Korean Philadelphia Presbyterian Church)

 

 

뉴질랜드에 있어 기독교(Christianity)의 의미

한인교회에서 보여지듯 한국의 기독교(Christianity)는 한국 내 기존의 ethnicity의 한 부분인 위계문화(hierarchy)와 결합하면서 ‘한국적 기독교 (Korean Christianity)’를 창출했다. 반면 뉴질랜드의 기독교는 파케하 정착민들이 뉴질랜드로 이주하기 전부터 영국에서 이미 national value로 자리잡은 Western Christianity를 그대로 뉴질랜드 토양에 이식하는 형식이었다. 즉 뉴질랜드의 기독교는 John Stenhouse가 지적하였듯이 뉴질랜드 국가건설 (nation building) 과정 초기부터 이미 국가정체성 (National Identity)의 한 축을 담당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파케하들은 기독교를 통해 단일민족으로서 nationhood를 어렵지않게 형성하면서 사회적 융합(social cohesion)을 이룩하게된다. 다른 말로 뉴질랜드 기독교 (New Zealand Christianity)는 자유주의 (liberalism)와 같은 다른 서구 문화적 가치들과 융합되어 파케하 ethnicity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독교의 유입은 기존 파케하들에게는 이질적 ethnicity의 유입과 다름없는 것이다. 즉 같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파케하들에게는 같은 기독교인이 이민왔다는 인식보다는 자신들만의 기독교를 믿는 다른 ethnic group이 유입된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질적 종교를 가진 이민자와 다를 바 없이 여기면서 심지어 자신들이 구축한 National Identity를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other로 취급하는 것이다.

 

한인교회 포스트 1세대

이처럼 서구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강한 한국정체성 강조 (ethnic nature)의 문제점은 이민 1세대들의 현지 사회와의 적극적인 교류를 저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2세대들의 정체성 충돌(identity conflict)을 막지못한다는 점이다. 한인교회 역사가 오래된 미국의 경우 ‘massive silent exodus’라고 표현될 정도로 한인 2세대들이 한인교회에서 빠져나간다.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교민 2세대의 80프로는 부모와 함께 다니던 한인교회에서 나와 영어권 교회를 다니길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세들의 경우 어릴 때는 부모에 의해 한인교회를 같이 다니면서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야’라고 주입된 한국인 정체성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을지 몰라도 주류사회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자신들 내부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는 다른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중 미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크게 느낀 사람은 현지 교회로 옮길 수도 있으며 또 차별 경험을 겪으면서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Pan-Asian Identity)을 더 크게 느낀 2세는 소수민족들을 상대로 영어로 설교가 이루어지는 교회로 옮겨갈 수도 있을 것이다.또 다른 그룹은 현 서구권의 무종교 인구의 증가라는 세속화 추세에 따라 탈 종교인의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인교회의 존재 의미는 앞으로 2세대들로부터 더 큰 도전을 받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이민자는 계속 유입이 되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역할이 집중된 현재 한인교회들의 생존력은 당분간 유지가 되겠지만 그 것이 건강한 생존의 모습이 될지는 의문이다. 2세대 이후 세대까지 아우를수 있는 ethnic church에 대한 비젼을 가진 한인교회 목회자의 등장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런 비젼을 가진 목회자 – 아마 현지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1.5세대 혹은 2세대 목회자가 이상적일 것이다 – 가 등장하지 못한다면 2세대 이후들은 자신의 정체성 needs에 부합하는 공간을 찾아 떠날 것이다. 문제는 이런 비젼을 가진 젊은 목회자가 등장해도 한국교회 그리고 이민사회 한인교회 특유의 위계질서와 왜곡된 기독교 복종의 미덕을 앞세워 멘토에 해당하는 시니어 목회자의 운영방침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맺음말

이민사회 한인교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은 이민사회 한인교회들은 신도들의 한국인 정체성(Korea identity)을 지키려는데는 매우 열심이지만 현지 문화 혹은 다른 문화와의 교류 그리고 다문화사회로 편입되는 과정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인교회들은 신도들의 현지사회와의 교류를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기보다는 오히려 신도들이 global citizen 그리고 다문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저해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으로는 근본주의적 신앙을 강조하고 정서적으로는 폐쇄적 한국인 정체성을 강조하는 현지사회와의 커넥션에 대한 고려가 없는 현 이민사회 한인교회의 행보는 또 다른 형식의 평행사회(parallel society)를 야기하게된다.

 

이는 사회학자 Portes가 말하는 이민자 후손들의 분절동화(Segmented Assimilation)를 한인교회가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셈이다. 분절동화는 이민자들 특히 다음 세대들이 이민국가의 주류사회에 동화(assimilation)하거나 주류사회의 문화수용(acculturation)이란 길을 선택하기 보단 주류 사회가 아닌 사회의 다른 마이너 영역(segment) – 가령 자신들의 ethnic community - 에 동화하려는 현상을 일컫는다. 가령 한국의 경우 조선족 2세들이 한국사회에 동화하려기보다 조선족 자체 공동체에 동화하려한다면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다. 뉴질랜드의 경우 한인교회가 신도들이나 그 자녀들에게 뉴질랜드 주류사회에 대한 동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문화수용(acculturation)과 공존을 인도하기보다 근본주의적 신앙으로 무장하여 단단한 계란 껍질같은 한인교회공동체 안에만 머물기를 유도한다면 이는 분절동화의 한 형식이 될 것이다. 만약 한인교회가 이런 움직임을 이어간다면 한길수가 지적한 것처럼 물질만능주의에 몰두한 모국 교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셈이며 교회들 자신의 ‘잔이 넘쳐흐르기’까지는 외부의 더 넓은 공동체로 신도들을 인도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Having said that

다양한 ethnic group으로 구성된 현대 사회에서 ethnic identity는 자연스러운 부분이이고 더 나아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ethnic group이 하나의 we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다양한 other들이 공존하는 사회에는 궁극적으로 이 다양한 other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national identity를 지향하는 것이다.우리의 정체성(identity)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임과 동시에 다면적(multi-dimensional)인 것이다.어느 2세대에게는 Korean Identity보다는 New Zealander Identity가 더 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또 어느 누군가에게는 Korean Identity와 New Zealander Identity가 공존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정체성을 가졌던지간에 우리는 뉴질랜드 더 나아가 세계라는 넓은 사회의 사회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은 항상 더 넓은 사회라는 보편성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인교회 신도들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교회를 벗어나 더 넓은 현지사회의 한 사회구성원으로 참여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한다. 현지 주류 사회와의 접촉에서 차별과 소외같은 부정적 경험을 한 신도들이 한인교회에 모여서 신앙을 통해 영원한 진리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모국어로 되새김으로써 영혼을 정화하고 또 동병상련의 경험공유를 통해 정서적으로 힐링하곤 에너지를 충전하여 다시 씩씩하게 현지 사회에 나아가는 싸이클이 이루어져할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인교회는 파케하를 비롯한 여러 ethnic group들이 공존하는 뉴질랜드 다문화 사회속에서 이들과 같이 공존하기 위한 미래 지향적 열린 한국인 정체성을 창출하기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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