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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캐나다적인 것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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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면적은 997만 제곱킬로미터이며 인구는 3430만 명(2011년 기준)이다. 캐나다는 70개가 넘는 인종으로 구성된 나라다. 밴쿠버는 홍콩의 중국계 이민이 급증해 180만 명의 인구 중 40만 명 정도가 중국계여서 "홍쿠버"로 불리기도 한다. 캐나다는 국토가 워낙 넓은 데다 지역 정체성이 강해 사실상 전국을 커버하는 전국지가 없다. 캐나다 제1의 일간지인 <토론토 스타>도 지방지다. 캐나다에서 제일 오래된 신문은 1844년에 창간된 <글로브 앤드 메일>로, 이 신문은 1998년 6월까지 캐나다에서는 하나뿐인 전국지였다.

 

1971년에 카나다 총리 피에르 트뤼도는 캐나다가 다문화주의 나라라고 공식 선언했다. 미국이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민자들을 모아 '미국 정신'이라는 한 용광로에서 녹여내는 '도가니melting pot 나라'라면, 캐나다는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그대로 용인하는 '모자이크 나라'로 불려왔다. 이는 캐나다에 특별한 국가적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캐나다의 다문화주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가니 문화와 모자이크 문화 사이에서 도가니 문화를 선택하는 비중이 높아진 것이다. 1985년 여론조사에선 56퍼센트가 모자이크 문화를 택하고 27퍼센트가 도가니 문화를 꼽은 반면, 1995년 조사에선 모자이크 문화 44퍼센트, 도가니 문화 40퍼센트로 나타났다.

 

1990년대 이후 정당들도 사회주의 정당이자 원내 세력이 가장 약한 신민당 만이 일관되게 다문화주의를 지지할 뿐 다른 거대 정당들은 모두 다문화주의를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이민자의 약 80퍼센트가 유색인종인 데다 다문화주의가 국가를 분열시키는 역기능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적인 문제와 관련해 캐나다가 구체적으로 당면해 있는 최대 문제는 프랑스어권인 퀘벡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다. 1660년대 초 프랑스는 영국보다 먼저 캐나다 땅에 들어와 퀘벡을 중심으로 식민지를 개척했지만, 영국과의 7년 전쟁에서 패배하자 1763년 북미 영유권을 포기하고 철수했다. 그때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남은 프랑스 정착민들이 영국 치하에서 오늘의 퀘벡을 이룬 것이다.

 

퀘벡은 캐나다 연방을 이루는 10개 주 가운데 하나로, 캐나다 인구의 25퍼센트, 면적의 15퍼센트, 국민총생산의 2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소외와 차별을 이유로 30년 넘게 분리 독립을 외쳐왔다. 퀘벡의 인구 700여만 명 중 프랑스계는 82퍼센트로, 상류층은 영국계가 차지하고 있다.

 

이 분리 독립운동에 불을 지른 건 1967년 캐나다 독립 100주년 기념행사차 캐나다를 방문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이다. 그는 76세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몬트리올 시청 발코니에서 열광하는 1만여 군중을 향해 다음과 같은 선동적인 연설을 했다.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발설해서는 안 될 한 가지 비밀을 얘기하겠습니다. 오늘 밤 여기서 그리고 퀘벡에 오는 동안 줄곧 나는 어떤 자유의 분위기 속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중략) 몬트리올 만세, 퀘벡 만세, 자유 퀘벡 만세, 프렌치 캐나다 만세, 프랑스 만세!"

 

세계의 여론은 드골의 선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프랑스의 <르몽드>조차 그의 선동을 캐나다 내정에 대한 '잔인한 간섭'이라고 논평했다. 프랑스 정부는 공식적으론 드골이 "자유 퀘벡"이라고 말한 것은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그들 고유의 문화를 표현하는 자유를 의미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아무도 그 변명을 믿지 않았다.

 

드골의 선동 이후 퀘벡의 분리 독립운동이 탄력을 받았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퀘벡 주 주민의 절대 다수가 정말로 분리 독립을 원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1980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된 주민 투표에서 분리독립안은 모두 부결됐다. 다만 1995년 주민 투표 때는 찬성 비율이 49.4퍼센트에 이르러 연방 정부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와 관련해 송철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이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 묘하다. 어느 정당이 퀘벡 주 독립 실현을 기치로 내걸고 출현해 주민들의 지지를 충분히 확보한다. 그런 다음 이 정당은 연방과의 교섭을 통해 퀘벡 주를 캐나다에서 분리하는 일에 나선다. 그러면 이제는 주민들 사이에서 시기상조라는 반대 여론이 형성된다. 갑자기 맥이 빠진 그 정당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고 유권자들에게 항변한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식의 줄다리기가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던 무엇도 '멍석을 깔아놓으면 안 한다'는 한국 속담을 연상시키는 퀘벡 주민들의 이런 변덕은 퀘벡 주 정치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2000년 3월 퀘벡에선 '인종 청소' 논쟁이 벌어졌다. 영어판 전국 월간지 <토요일 밤>3월 호에 실린 [더 춥고 더 하얗다Colder and Whiter]란 기사가 퀘벡 주 주도인 퀘벡 시 주민의 98퍼센트가 프랑스계 백인인 것은 '이민자와 소수민족을 배척하는 도시의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주민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 기사는 "한때 번화했던 중국 타운, 활발했던 유대인과 아일랜드계 커뮤니티들이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라며 "비백인, 비가톨릭, 비프랑스계 소수민족이 퀘벡 시를 떠나는 근본적 이유는 이들을 배척하는 도시 분위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프랑스계는 물론 영국계 퀘벡인들도 반박하고 나섰다. 퀘벡의 영국계 주민 단체인 '영국계 퀘벡인의 목소리'는 "퀘벡 시의 상당수 인구가 프랑스계 백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다른 도시 주민들보다 더 인종차별적이라거나 고의적으로 외부인들을 몰아낸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아니, 영원히 계속될 것이 틀립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갈등은 주로 '언어 전쟁'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후버연구소의 아널드 베이크먼은 2001년 <워싱턴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퀘벡 주의 분리 독립을 쟁취하려는 일념에 불타는 이들은 날로 늘어나는 영어 사용 주민들로 프랑스어가 질식당하는 것을 막으려고 결연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가운데 퀘벡 주민들은 국경을 넘어 밀려드는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홍수에 빠져 있다. 그런데도 740만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프랑스어 사용자들 중에서 아무도 방해전파를 발사해 남쪽 국경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런 문화 침투를 차단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퀘벡 주 민족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지키고자 하는 열정은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다수 인종의 압력 속에 미국인들이 영어를 영구히 지키고자 하는 취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퀘벡 주의 프랑스어 친위대가 입법권을 동원해 영어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주민들이 그들의 언어를 공공장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본권을 탄압하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이어 베이크먼은 "이들 프랑스어 친위대의 언어 경찰은 프랑스어를 지키려는 열정에서 퀘벡 주의 엄격한 언어 법령을 고지식하게 적용하고 있고 이 때문에 가끔 실소를 자아내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컨대, 언어 법령은 상점 간판에 영어를 사용할 경우 프랑스어 글자의 3분의 1 크기로 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벌금과 기타 영업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중략) 몬트리올에서 주 7일, 하루 18시간씩 일하며 어렵게 편의점을 꾸려가고 있는 파키스탄계 부부는 그들이 퀘벡 주 법령에 규정된 만큼 고객들에게 유창한 프랑스어를 사용하지 못한다며 프랑스어를 공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다른 한 아시아계 식당 주인은 영어로만 쓰여 있는 맥주잔 받침을 사용하다가 적발돼 하마터면 7000달러를 벌금으로 낼 뻔했다. 그리스에서 이민 온 한 주민은 자기 승용차에 영어로 '수도-난방 수리'라고 쓴 광고판을 달고 다니다가 적발돼 벌금 처분을 받았다. 그는 벌금을 내지 못해 연장을 압류당하고 차는 경매 처분됐다."

 

2008년 도시 형성 400주년 기념 축제를 앞두고 퀘벡 시에서 다시 도시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났다. 프랑스어권 퀘벡 주 분리주의자들이 퀘벡시 건설을 '캐나다의 기원'으로 홍보하면서 캐나다의 기원이 프랑스 문화에서 시작했음을 과시하려 하자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는 이 축제를 퀘벡 주 독립의 정당성 홍보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불쾌함을 나타냈다.

 

캐나다 내부의 갈등을 떠나 국가 차원에선 미국의 영향력이 캐나다의 정체성에 대한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 전 총리 장 크레티앵은 "많은 미국인들이 캐나다를 텍사스 주나 오하이오 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또 다른 주로 여기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미합중국의 한 부분도 아니고 또 그렇게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굳이 이런 말까지 해야 할 정도로 캐나다의 상황이 딱한 것이다.

 

1997년 2월 10일 캐나다 부총리(겸 문화유산부 장관) 실라 콥스는 캐나다 문화 산업을 질식시키는 미국의 문화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고 할리우드를 겨냥해 무역 전쟁도 불사할 것을 선언했다. 콥스는 캐나다의 연예 산업·출판계 대표 서른세 명과 문화 정상회담을 한 뒤 회견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미국의 문화 부문 규제 조치의 시정을 거듭 촉구하고 이를 위해 프랑스와 연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콥스는 캐나다 정부가 미국 잡지의 캐나다판 확산을 막기 위해 신설한 세금에 대해 미국이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경책을 쓴다면, 우리도 강경책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미국이 미국 영화의 중국 내 해적판 제작에 항의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기준은 캐나다 예술가들의 작품이 미국 내에서 해적판으로 제작되고 있는 데도 적용돼야 할 것"이라면서 캐나다 공연 예술가들의 미국 내 시디 녹음과 라디오 방송 등 판권 침해 사례를 단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1999년 3월에도 콥스는 미국의 연예·오락 산업이 캐나다를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은 약한 학생들을 괴롭히는 골목대장이다. 그런데도 우리 딸은 미국이 항상 훌륭한 정치를 하는 나라로만 알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콥스의 개찬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캐나다의 그런 딱한 처지에 대해선 미국 신문들도 수긍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2000년 9월 5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캐나다가 경제·사회 등 분야에서 급속하게 미국에 의존하면서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1989년에 두 나라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뒤 급속히 통합되기 시작해 2000년 현재 캐나다의 대미 수출액은 캐나다 내 주들 사이의 거래액 합계를 능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넘나드는 상품과 용역의 총액은 하루 10억 달러가 넘었으며 이런 통합 흐름과 미국의 장기 호황 여파 등으로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캐나다 출신 고급 인력 2만 5000명이 미국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또 몇 년 전까지 캐나다 토론토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던 캐나다 기업 300개 가운데 3분의 2가 지금은 미국 거래소에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이런 경제 통합 가속화에는 갈수록 벌어지는 미국과 캐나다의 경제력 격차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캐나다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에 비해 30퍼센트 이상 뒤처진 상태고 10년 뒤에는 50퍼센트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는 캐나다인 다수가 앞으로 20년 이내에 자국 화폐 대신 미국 달러화가 통용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렇게 대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한 세기 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정치 통합에 대한 지지도 캐나다인 사이에 확산했는데, 한 여론조사에서는 캐나다 국민의 51퍼센트가 미국 의회에 대표를 보내야 한다고 답했으며 3분의 1은 미국과 나라를 합치는 데 반대 의사를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약 10년 뒤에 실시한 조사 결과는 좀 달랐다. 2009년 5월 조사에선 캐나다인의 90퍼센트가 캐나다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로 여기고 있을만큼 국가적 자부심이 매우 강하며 85퍼센트는 미국인과 캐나다인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답변했다. 여론조사관 피터 도놀로는 "이번 조사를 통해 캐나다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불안정하며 정체성이 불확실 하다는 일반적 속설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이웃인 미국과의 합병을 원하는 사람도 13퍼센트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87퍼센트는 모두 반대했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가장 중요한 상징 두 가지를 선택하라는 항목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48퍼센트가 아이스하키를 꼽았으며 이어 다문화주의(36퍼센트), 의료보장제도(33퍼센트), 평화 유지 전통(27퍼센트), 공용어가 두 개라는 점(18퍼센트)을 꼽았다. 영국연방 국가로 영국 여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전통과 관련해 응답자의 65퍼센트가 현 엘리자베스 여왕이 퇴위하면, 영국 왕실과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고 답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특히 프랑스어권인 퀘벡 주의 경우 86퍼센트가 관계 단절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높은 대미 의존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캐나다인들은 '진짜 캐나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권진선은 그 이유에 대해 "캐나다는 200년 남짓한 짧은 역사를 고유문화가 아닌 복합 다중의 문화 기반 위에서 건설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접 국가인 미국의 영향력은 매우 지대해서 캐나다 토박이들조차도 캐나다 문화와 미국 문화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톱 10 광고주 중에 1위를 비롯해 일곱 개 광고주가 미국 국적 기업이다. 캐나다는 구조적으로 광고를 많이 만들 필요가 없는 나라다.

 

"혹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 대단한 뉴스는 아니겠지만, 놀랍게도 캐나다는 분명 사회주의 국가고 미국은 두말할 것 없는 자본주의 국가다. (중략) 캐나다에 와서 가장 놀랐던 일 중 하나는 캐나다에는 '가격 비교 사이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경쟁을 유발하고 소비를 촉진시키는 자본주의적 가격 경쟁은 캐나다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중략) 캐나다의 광고 활동이 부진한 결정적 이유는 캐나다 경제의 주춧돌인 핵심 산업이 광고가 필요한 2차 제조업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1차 산업이라는 점이다."

 

캐나다에게 과연 국가 정체성이라는 게 있긴 한 걸까? 더그 비어즐리는 "캐나다인들은 뚜렷한 국가 정체성을 원하지 않는다. 대부분 돈과 평범함을 숭상하는 이 냉담한 나라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열망마저도 그저 일시적인 국면인 듯, 한 세대에 한 번 몰려왔다가 바위투성이 해변을 쓸고 나가는 따스한 파도인 듯 여길 뿐이다"고 주장했다. 마가릿 애트우드는 <캐나다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에서 "캐나다인 한 사람이 느끼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캐나다란 무엇일까? 캐나다에 미국과는 다른 그 무엇이 과연 있는 걸까? 만약 '캐나다적인 것'이란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임재철은 캐나다가 배출한 흥미로운 예술가의 면면에서 '캐나다적인 것'을 추측은 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셜 매클루언, 글랜 굴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우선 떠오르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상식인의 관점에서 괴이한 작품 세계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다. 캐나다에 대한 통념이 흔히 환기하는 안정되고 중산층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먼, 표현의 과격함이 이들의 작품에는 있다. 특히 굴드의 경우에서 잘 드러나듯이 거기에는 그런 과격함을 택할 수밖에 없게 하는 깊은 초조감이 있는 것 같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도 그는 성공 자체에 대해 뭔가 불편함을 느꼈던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 이들이 실제보다 더 과격해졌을 가능성은 물론 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결코 미국화하지 않았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캐나다적인 정신 상태'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결국 이처럼 중심부와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자각하는 그런 정신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해본다."

 

린다 허천도 캐나다적인 지식인의 반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정정호는 허천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의 돌파구를 새로 마련한 논객이 나타났다. 그것도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아닌 캐나다에서 말이다. 더욱이 '이론' 경기와 산업이 거의 남성이 주도하다시피 한 현실에서 여성이 말이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는 종족적으로는 주류 영국이나 프랑스 계통이 아니라 이태리 출신 이민 후손으로, 캐나다라는 독특한 지역적 차이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차이성에 그리고 계급적으로 건설 공사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변두리/타자 의식으로 무장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서 새로운 대화의 마당을 다시 열게 한 '미시즈 캐나다 포스트모던'이 됐다. 허천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우리 주위에 보편 내재해 있는 '문화적 기획cultural enterprise'이라고 부르고 이런 문화 현상을 쉽게 옹호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대중적인 논의로 이끌어 비평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는 린다 허천이라는 이론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의 타자적 요소-캐나다라는 지역적·문화적 특성은 물론 허천 자신의 출신성분이나 배경에서 나온-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본다. 루카치가 이미 지적했듯이 '형식'과 '운명'의 관계는 불가분의 것이어서 허천의 운명이 허천 이론의 형성과 내용까지도 결정짓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창작뿐 아니라 이론도 자서전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허천은 <캐나다의 포스트모던>의 서문에서 "내가 속한 계급, 성, 도덕적 배경 등에 대해 증가되는 나의 자의식은 과거 몇 년 동안 내가 보편적이거나 영원하다고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인종이나 성별 또는 계급뿐 아니라 어떤 역사적 시간과 공간의 창조물이었음을 나에게 암시해 주었다"고 했다. 또 그녀는 "캐나다는 고유한 탈중심성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탈중심성이란 과거 제국주의 지배자인 영국과 최근 미국 제국주의의 위협과 관련된 탈중심을 의미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변부는 중심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동시에 자유를 얻는 역설적인 지위를 나타낸다. 진실은 결코 안정된 것이 아니며 영원하지도 않으며 '보편적이지도' 않다. 그것들은 항상 무겁게 변화하며 정의하는 사람의 장소, 시간, 성, 계급, 인종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중요한 인식 중 하나다. 많은 캐나다 소설의 주인공은 오늘날 중심의 지배적인 정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중략) 탈중심은 캐나다가 주변부화돼 있음을 보여주는 거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명예스러운 지위라기보다는 더 특권화된 지위다. 캐나다는 중심의 일반적인 개념에 도전하는 동시에 응집된 개인성의 가능성에 대한 특별한 생각마저도 무산시켜버린다."

 

돈 탭스콧도 캐나다적인 지식인이다. 그는 PC(political correctness)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1985년에 디지털 기술에 대한 첫 책을 발간한 이후, 24년 동안 전자 상거래와 정보 보안, 비즈니스 웹, 대규모 온라인 협업, N세대 등 디지털 경제 관련 주제를 일관되게 연구해왔다. 위키노믹스, 프로슈머, 디지털 경제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주인공도 바로 탭스콧이다. 탭스콧은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텔레비전 세대의 탁월한 미디어 구루인 마셜 매클루언과 디지털 시대 미디어 구루인 당신이 모두 캐나다에서 배출됐는데, 캐나다의 특별한 환경과 관련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흥미로운 질문이다. 매클루언이 활동했던 대학(토론토대학교)에서 나도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대학 총장이 최근 '위대한 캐나다 미디어 권위자 두 명이 같은 대학에서 나왔다'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캐나다는 아주 넓은 나라여서 커뮤니케이션이 무척 중요하다. 또 캐나다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아 기존 관념과 구조,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캐나다는 인문학적 전통이 강해서 대학에서 다양한 학문을 닦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소용없다고 생각하지만, 비판적 사고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

 

과연 캐나다적인 것이 존재하는가? 어찌 생각하면 우문이다. 국가로서 영속하기 위해선 반드시 그 어떤 정체성이 있어야 할 것인바, 캐나다적인 것은 존재해야 하며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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