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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책읽기] 일본계 미국인은 왜 일본을 싫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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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08.01.25 18:07

수정 2008.01.25 20:43

 

지난해 여름 미 의회에서 종군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 미국이 ‘정의’의 이름으로 일본정부를 비난한 것이다. 이 결의안의 성립을 주도한 이는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이다. 그는 일본의 유명 자동차회사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일본계 미국인 3세이다. 국제정치의 심장부에서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거든 마이크 혼다에 대해 일본 보수층은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필자는 어느 일본 웹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빗대서 ‘마이크 휸대(현대자동차의 일본식 발음)’라고 비아냥거리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왜 ‘일본 때리기’에 나섰는가? 그간의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이다. ‘왜 일본계 미국인은 일본을 싫어하는가’라는 부제를 달은 이 책은 위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진지하고도 심층적인 현장보고이다. 일본 언론은 마이크 혼다의 ‘급진적’ 행보를 두고 지역구 주민의 26%를 차지하는 아시아계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이는 현상에 대한 단락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본디 일본계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이민자 집단으로 꼽혔다. 상원, 하원의원은 물론이고 장관과 4성장군도 배출했다.

 

그러나 신규이민이 끊어진 지 오래됐고 혼혈 비율이 30%에 이르는 일본계 사회는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사회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는 중국계, 한국계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로스앤젤레스의 명물이었던 리틀 도쿄는 한국계의 자본으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민족적 긍지만으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일본계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아시아계의 일원’이고자 하는 마이크 혼다의 자세는 현재 일본계 미국인사회에서 진행되는 큰 흐름이라는 것이다. 
  
 

 
 『正義の』の日本人 의 일본인 安井健一(야스이 겐이치)지음, 253쪽, 790엔
  

저자는 본국을 비난하는 혼다가 결코 일본계사회의 돌연변이라 아니라고 말한다. 일본계 미국인은 미국 내 그 어느 소수민족과 비교해보아도 본국과 거리를 두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이유는 역사에서 찾아진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일본계는 집단수용소에 격리되었다. 군대에 자원한 일본계는 백인 이상의 충성심을 보여주고자 위험한 전투에 목숨을 맡겼다. 전후에는 적국의 후예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 미국인 이상으로 미국인이 되어야 했다. 돌아갈 곳이 없는 그들이 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 부모세대는 일본문화를 멀리하고 그 흔적조차 지우려 했다. 완전한 미국인이 되고자 했다.” 일본계 3세 존 니시오의 말이다. 여기서 ‘과잉적응’의 길을 걸어온 일본계의 슬픈 자화상이 엿보인다. 백인 주류사회에 진입한 일본계엘리트일수록 미국적 정의의 전도사를 자처하거나 일본에 대해 굴절된 감정을 표출하는 것 역시 과잉적응의 한 양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무역센터건물이 불타오르는 9·11 영상과 진주만 폭격 때의 흑백영상이 TV의 같은 화면에 비추는 현실에서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메이저리그 공식경기에서 행하는 국가제창 때 박찬호 선수가 가슴에 손을 올리지 않은 것을 두고 지역신문이 비난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박찬호나 이치로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박찬호의 경우는 자기나라가 미국의 적국이었던 적이 없고, 이치로는 돌아갈 조국이 있기 때문이다.

 

백인이 아무 악의 없이 건네는 “영어 참 잘 하네요”는 칭찬에도 심기가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미국 땅에는 다수 존재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아시아계에게 이 말은 주류사회로의 진입을 차단하는 또 하나의 유리벽으로 느껴진다. 다민족·다문화사회를 표방하는 미국사회의 감춰진 단면을 읽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윤상인(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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