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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서열문화의 그늘

Winnipeg101 LV 10 21-12-26 168

조이스 리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리서치매니저


 

미국 인사들과 함께 한국의 회의나 정부 관계자 면담 등에 참석할 때면 어김없이 받는 의전서열 요구에 난감할 때가 많다. 한국 측에서는 서열에 맞춰 등장해 악수하고 사진을 찍고 서열에 맞는 자리에 앉아 서열에 맞춰 대화를 진행하는 격식을 원하지만 직급체계도 다르고 명확한 상하구조가 없는 미국 측 인사들을 한국식 기준에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열에 맞는 예우를 갖추려는 한국 측의 존중과 배려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수직적 조직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럽거나 오히려 불편한 상황이 될 때도 있다.


회의가 오찬이나 만찬으로 이어지는 경우 테이블 좌석배치까지 고민해야 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서열이 명확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맞춰 다소 임의적이지만 나름 합리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좌석을 지정하게 되는데 나이, 학벌, 인지도 등의 기준보다는 옆자리 분과의 공통 관심사라든지 친분 관계(오히려 평소 친분이 없던 분들이 함께 앉도록), 개인적 필요(왼손잡이, 통역 필요 유무) 등의 기준으로, 상/하석의 서열 개념이 아닌 상황과 맥락에 따른 판단을 한다.


우리 연구소가 주최하는 회의나 행사 등에는 특별한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단 한가지 기준으로 자리가 정해지는데 바로 “내가 어디에 앉고 싶은지” 이다. 오랜만에 보는 동료 옆일 수도 있고 상사와 상사의 중간자리일 수도 있다. 때로는 그냥 도착하는 대로 앉거나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띄는 빈자리에 앉는 경우도 많다.


누가 누구 옆에 앉아 어떤 대화를 나눠야 예의와 격식에 맞는지를 계산해서 정해놓는 것은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미국적 사고에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이다. 이러한 문화차이로 상/하석 개념이 뚜렷한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이 가끔 언짢아 할 때도 있지만 우리 행사에선 우리의 방식을 존중해 달라고 부탁한다.


미국의 조직문화에는 권력의 높낮이나 특권의식이 배제된 소통의 자리에서 유연하고 자유로운 대화와 아이디어가 오가고 새롭고 균형 잡힌 시각이 탄생한다는 믿음이 있다. 한국식 위계질서와 서열문화가 조직력 강화에 긍정적 역할을 미칠 수 있다 하더라도 상명하복에 기반한 한국의 엄격한 서열문화는 글로벌 트렌드인 혁신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뚜렷한 서열과 업무분담에서 오는 일사분란한 추진력 등이 과거 고속성장시대 한국 기업들의 효율성과 체계성 강화에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창의성과 다양한 의견과 시도,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시되는 시대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기 보다는 권력에 순응하기를 강요하는 기업문화는 글로벌 문화와 규범에 친숙하고 이를 지향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도, 한국이 필요로 하는 외국인 인재들에게도 이해하기 힘들고 적응하기는 더 힘든 낡고 고루한 전근대적 권위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한국 뿐 아니라 미주한인사회에서도 수직적 서열의식은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이민 1세대 부모와 2세대 자녀사이, 유학파와 현지파 선후배 사이, 이민 한인들과 방문 한인들 사이, 교회나 커뮤니티 모임 등에서도 언어의 차이보다는 권위적 태도, 나이 중심의 서열문화 등의 문화차이로 인한 오해와 갈등이 더욱 심각하다. 


장유유서의 가르침이 급변하던 한국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고속 성장에 일조한 부분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글로벌 현대사회에 맞는 변화의 필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위아래가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수평적 관계 속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이 더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의도 질서도 중요하지만 그 기반에는 상식과 배려, 그리고 상황에 맞는 유연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방적 존중이 아닌 상호존중과 협력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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