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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연구] 유럽·미국을 휘어잡는 일본 요리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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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30 10:00

 

 

일을 크게 안 벌리고 소수정예로 끈기 있게 유지해나가는 것이 저력…음식, 레스토랑, 요리사를 넘나드는 일본 특유의 스토리텔링도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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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콩 요리 전문점의 유바 도시락 세트. 일본은 확대보다는 축소를 통해 성공 사례를 만든다. [중앙포토]

 

 

미슐랭 레드 가이드가 한국에 상륙한다고 한다. 올 겨울 한국어판 미슐랭으로 출판될 계획이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슐랭이 1900년부터 시작한 호텔, 레스토랑에 관한 평가서가 미슐랭이다. 외국 여행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선진국 그 어딘가에서 미슐랭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유럽·뉴욕·도쿄(東京)에 가는 사람이라면 원-투-쓰리 스타로 이어지는 미슐랭 레스토랑에 관한 즐거운 기억을 한번쯤 갖고 있을 듯하다. 미슐랭이라고 하면 비싸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최고 수준 쓰리스타 미슐랭 저녁식사의 1인당 가격이 150달러에서 시작되기는 하지만(팁과 알코올 제외) 점심시간을 잘 이용하면 크게 부담이 안 간다. 원스타에 들어가기 전단계인, 대중적 차원의 싸고 맛있는 집인 ‘빕 구르망(Bib Gourmand)’에서의 점심은 1인당 30달러 선에서도 가능하다. 도쿄의 경우 점심 12달러짜리 미슐랭 원스타 라멘집도 있다.

아마도 미슐랭은 한국 음식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미슐랭을 통한 ‘음식의 선진화, 세계화’라는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 미슐랭 스타를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음식 그 자체만이 아니라, 음식문화 전체가 업그레이드 될수 있을 것이다.당연하지만, 음식은 음식문화 나아가 문화 전체의 일부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음식문화는 맛과 양에 집중하면서 민족주의 이념형처럼 느껴진다. 고추장을 먹고 인스턴트라면을 즐기는 외국인에게 한류를 연발하며 박수를 보낸다. 한국인에게 둘러싸인 외국인은 싫든 좋든 관계없이 ‘코리아 넘버원’을 외칠 듯하다.

2016년 한국에 필요한 것은 멋과 질이다. 보릿고개는 50년 전에 이미 끝났다. 고향의 맛, 어머니-할머니-이모로 이어지는 가족 총출동의 손끝 맛 음식이 전부일 수는 없다. 입맛은 변덕스럽다.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는 의미다.

필자의 일방적 논리지만, 전혀 모르는 나라의 새로운 요리에 대한 도전이 일상화된 곳일수록 창조적 선진국에 해당된다. 사실, 아프리카 어디를 가도 자신의 음식에 관한 자신감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글로벌 시대에서는 얼마나 다른 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는가라는 게 중요하다.

 

주의할 부분은 미슐랭은 한식만을 위한 평가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슐랭은 기본적으로 프랑스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프랑스 문화 전위병에 해당한다. 한식 레스토랑 몇 군데를 스타 반열에 올리기야 하겠지만, 프랑스 음식이나 프랑스 스타일 레스토랑에 주목한다.

한식이라도 프랑스 스타일을 가미한, 두 나라의 중간 지점 어딘가를 이해해야만 스타 대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한식을 얼마나 프랑스화하느냐라는, 통념의 한식 개념에 대한 파괴야말로 스타 획득의 전제조건이다.

물론 맛만이 아닌, 멋과 매너에 특화하는 미슐랭의 의미도 한국 음식문화에 ‘크게’ 공헌할 듯하다. 플라스틱 식기와 조미료에 찌든, 짜고 매운 음식은 논외로 치자. 빨래나 맥주병으로 가득 찬 화장실에서부터 테이블 의자에 앉아 밥을 먹는 종업원, 문을 열고 들어가도 안내하는 사람 하나 없는 음식문화는 선진국에서는 ‘결코’ 통용되지 않는다.

 


 일본 최초의 미슐랭 스타 나카무라 가츠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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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소호에서 만난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 히로히사. 뉴욕에서 즐기는 교토 스타일 요리집이다.

 

 

미국·일본·유럽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 요리사에 의한 미슐랭 스타 획득 소식은 21세기 한국 신문·방송의 중요한 소프트 뉴스원(源) 중 하나다. 가을에 터지는 노벨상 수상과 새끼를 낳은 판다 관련 뉴스와 더불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미슐랭 스타 관련 소식이다.

필자는 그 같은 뉴스를 보면 20여 년 전 일본이 떠오른다. 한국에 부는 미슐랭 소프트 뉴스는 이미 20년 전부터 일본에 나타났다. 당시 미슐랭의 주무대는 프랑스와 벨기에다. 이탈리아, 스페인을 끼워주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단연 프랑스, 벨기에다.

미국·일본은 평가대상에서 아예 제외됐다. 그 같은 배경 아래서 파리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요리사의 스타 획득 소식은 마치 올림픽 금메달 획득 같은 분위기로 일본에 전달됐다. 1996년은 프랑스가 일본인에게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하기 시작한 해다. 단기간이지만 뭔가를 배우려는 일본 젊은이들이 프랑스 요리세계로 진출한다.

한국에서도 보도됐지만, 올해 초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 내 원스타 레스토랑이 탄생했다. 일본인이 미슐랭 원스타를 최초로 얻은 것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요리계의 거두로 통하는 나카무라 가츠히로(中村勝宏)가 주인공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일 양국이 프랑스에서 얻은 첫 번째 원스타 레스토랑의 내역이다. 한국 레스토랑은 수제비와 같은 한식을 중심으로 한 음식을 통해 원스타에 진입했다. 레스토랑 직원 전체도 한국인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37년 전 일본 요리사는 어떠했을까? 당시 35세의 나카무라는 일본 음식과 전혀 무관한, 프랑스 요리에 특화해서 원스타에 진입했다. 한국에서 일식(日食)이라 불리는 와쇼쿠(和食)가 아니라, 프랑스 스텝과 함께 일하면서 프랑스 요리만을 다루는 과정에서 원스타 수상자가 된다.

2016년 미슐랭에 따르면 일본계 스타 레스토랑은 전부 24개에 이른다. 원·투·쓰리 전부를 합친 2016년 프랑스 스타 레스토랑의 수는 전부 600개다. 일본계의 비율이 4%에 그치지만, 다른 외국에 비하면 단연 톱이다.

이탈리아·벨기에·영국을 포함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일본세가 강하다. 이들 24개 스타 레스토랑 가운데 순수한 와쇼쿠는 7개에 그친다. 나머지는 순수 프랑스이거나 일본풍의 프랑스 요리 전문점이다.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한식집을 열어 한국 최고의 레스토랑에 오르는 식이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음식 솜씨와 경영 능력을 배경으로 한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생각할 때의 주인공은 프랑스 요리와 요리사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프랑스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요리사와 요리도 등장하고 있다. 바로 일본이다.

미식 대국 프랑스에서 출발한 탄탄한 실력은 미슐랭이 가는 세계 전역으로 확산된다. 미국과 일본처럼 21세기 들어 시작된 미슐랭 영역에서의 비약은 남다르다. 뉴욕의 경우 2016년 스타 레스토랑 76군데 가운데 일본 관련이 무려 14개나 된다. 미국 음식을 제외할 경우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스페인 음식까지 압도적 차로 누른 곳이 일본계다.

 


 프랑스인이 인정하는 도쿄의 프랑스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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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한 교외 주택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L’Auberge du 15’. 적은 종업원에 거품을 빼서 가격을 낮췄다.

 

 

뉴욕의 쓰리스타 레스토랑은 전부 6개다. 일본의 마사(Masa)는 그중 하나다. 능력이 된다면 언젠가 한번 맛보고 싶은 곳이지만, 1인당 최소한 1000달러는 각오해야 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이 바로 뉴욕의 마사다. 음식의 내용은 120% 와쇼쿠다.

그러나 프랑스풍을 가미한 멋이 특징이다. 돈 많은 일본인을 위한 와쇼쿠라 말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뉴욕은 자본을 창출해내는 월스트리트를 갖고 있다. 최고의 음식을 제공한다면 지옥 끝까지라도 달려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일본인 손님과 사실상 무관한 레스토랑이 마사다.

일본 내 미슐랭의 경우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있지만 전국적으로 무려 36개의 쓰리스타 레스토랑을 갖고 있다. 2016년 프랑스 전역의 쓰리스타 레스토랑은 26개에 불과하다. 미슐랭이 책도 팔고 선전하기 위해 일부러 스타를 많이 줬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똑같은 생각을 3년 전 도쿄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공사급 외교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반응은 의외였다.

“프랑스에서 먹는 음식보다 더 프랑스스럽다. 건강에도 좋고 값도 싸고 위에도 가볍다. 도쿄에서 먹은 프랑스 요리를 잊지 못한다는 것은 파리로 귀국한 동료들의 공통적인 반응 중 하나다. 갑작스러운 이민과 관광객 증가로 원래의 프랑스 맛과 멋이 사라지고 있다. 신기하게도 일본은 잃어버린 프랑스의 맛과 멋을 지켜나가고 있다. 프랑스인 자체가 인정하는 요리가 도쿄의 프랑스 요리다.”

필자가 일본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이래 22년째다. 사실 필자의 일본관은 음식에서부터 시작됐다.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일본 텔레비전을 켜면 가장 먼저 기억하게 되는 두 마디 단어가 있다. 신토죠(新登場)와 오이시이(美味しい)라는 말이다. 신등장, 맛있다로 해석될 수 있다.

신토죠는 새로운 상품이 등장했다고 알리는 선전문구에서, 오이시이는 아침부터 심야까지 이뤄지는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전방위로 흘러나온다. 텔레비전을 켜두면 거의 1분 단위로 들을 수 있다. 오이시이라는 형용사는 음식만이 아닌, 뉴스·교양·예술 관련 프로그램에서도 만날 수 있다. 아직 기억하지만, 밤 10시 <아사히(朝日) TV>의 종합 뉴스 시간에 앵커가 지방 특산 음식을 먹으면서 방송을 하는 것도 봤다.

일본인에게 음식에 관한 집착과 집념은 거의 종교에 가깝다. 음식은 일상사에서의 중요한 대화의 내용 중 하나다. 프랑스인이 점심 레스토랑 고르는 데 오전 전부를, 저녁 레스토랑 고르는 데 오후 전부를 보낸다고 하지만 일본인의 음식에 대한 열정도 프랑스인 못지 않다. 책방에 가면 음식 관련 잡지가 넘치고 넘친다.

장르, 가격, 지역, 분위기와 같은 각종 카테고리로 나눠진 오타쿠(オタク) 계통의 잡지가 매달 수없이 쏟아진다. 주목할 부분은 음식에 관한 얘기가 단순히 ‘맛있다’와 같은 미각에 관한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식, 레스토랑, 요리사를 넘나드는 일본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깔려 있다. 맛은 기본에 속하는 문제다.

1994년은 잘나가던 일본 경제가 추락하기 시작한, 버블경제 붕괴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크면 붕괴되는 속도도 천천히 이뤄진다. 현재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 연령대를 전후한 버블세대는 프랑스 미슐랭 레스토랑을 대중적 차원에서의 체험한 원조들이다. 돈의 힘을 빌린 것이지만, 사실 1990년대 초 미슐랭 레스토랑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루이비통 가방과 이탈리아 브랜드가 대중적 차원에서 일본에 퍼져나간 것이 1980년대 중반이다. 같은 시기, 버블세대는 비유럽인으로 미슐랭에 처음으로 진입한다. 프랑스어, 영어와 더불어 일본어 메뉴가 등장한다. 중국어 메뉴가 등장하기 시작한 2010년대보다 정확히 한 세대 전의 일이다.

 


 양복차림의 미슐랭, 청바지의 ‘고 에 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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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의 수준은 자리에 앉는 순간 알 수 있다. 냅킨과 식기·포크·나이프의 정리정돈 상태가 수준을 결정짓는다.

 

 

1980년대 보통 미국인은 미슐랭의 가치와 의미를 전혀 몰랐다. 일본 전역의 음식에 대한 집착과 열의, 나아가 미슐랭을 둘러싼 일본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필자 역시 자극을 받게 된다.

싸게 먹고 위를 때우는 것이 아닌, 미식과 멋으로서의 음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에서 행하던 연구를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동안, 음식을 둘러싼 새로운 탐험에 나서게 된다. 더불어 건강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눈뜨게 된다.

장르에 관계없이 닥치는 대로 먹고 즐기는 편이지만, 올해 초 파리에 들렀을 때 새로운 시도를 하나 해봤다. 탈(脫)미슐랭 체험이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필자가 이용하던 유럽 레스토랑의 기준은 미슐랭에서 비롯된다.

한 때 쓰리스타 레스토랑에까지 목을 매면서 돈을 퍼부었지만, 최근에는 원스타 바로 아래인 빕 구르망을 우선시한다. 보통 2030세대가 뮤지컬, 4050세대가 오페라라고 하지만, 그 반대를 추구하는 사람도 많다. 젊을 때는 오페라, 나이가 들면 뮤지컬이다.

빕 구르망은 그 같은 발상에 따른 결론이다. 왕의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쓰리스타와 중세로 돌아간 듯한 격조 높은 오페라는 취기 어린 젊은 시절에 즐겨야 할 교양의 교본에 해당된다. 여유가 된다면, 젊을수록 많이 경험하는 것이 좋다. 이에 반해, 간단·신속·저렴으로 이어지는 빕 구르망과 정열과 땀으로 이뤄진 소란스런 뮤지컬은 원숙해진 장년에게 어울리는 신선한 수혈(輸血)에 비견될 수 있다.

주변에 권하지만 늙을수록 대학가나 백화점 옆에 사는 것이 좋다. 사실 빕 구르망은 젊은이들의 공간이다. 스타 레스토랑에 들를 연령대의 필자지만, 시대의 변화도 느끼고 청년 음식문화에 끼어 잠시 수혈을 받자는 의미에서 빕 구르망 팬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초 파리 방문에서는 다른 각도의 미식체험을 계획했다.

새로운 시도의 기준은 ‘고 에 미조(Gault et Millau: www. gaultmillau.fr)’에서 시작된다. 미슐랭에 대적하는, 1969년 탄생된 새로운 음식 평가 전문서다. 1년에 한 번씩 나오는 정기 간행물로, 미슐랭처럼 환경·분위기·요리수준·와인·서비스·가격을 종합한 레스토랑 평가서다.

각 분야별로 1점부터 20점까지 나눠, 평균 10점 이상이 된 레스토랑만을 고 에 미조 리스트에 올린다. 한 개부터 다섯 개로 나눠진 요리사 모자를 통해 레스토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프랑스인에게 고 에 미조는 특별한 양식을 한 구애받지 않는 젊은이를 위한 평가서란 이미지가 강하다.

미슐랭이 양복 차림이라고 할 때 고 에 미조는 청바지다. 실제 쓰리스타 미슐랭 레스토랑은 정장 차림이 기본이다. 무시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정장 차림으로 나서는 사람에게 맞는 곳이 쓰리스타 레스토랑이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오페라를 즐길 수도 있겠지만, 그 같은 자세는 뮤지컬에 가서 마음껏 뽐내는 것이 좋다.

 


 레스토랑을 위한 최적의 규모, 3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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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야 25명이 앉을 수 있는 ‘L’Auberge du 15’ 내부. 수준 있는 곳이라면 30명 정원을 초과할 수 없다.

 

 

미슐랭과 오페라는 파격이 아닌 클래식의 세계다. 그러나 고에 미조는 그 같은 클래식의 논리를 부정한다. 역사나 비싼 실내 장식 나아가 고전적 분위기에 대한 고려가 높지 않다. 프랑스 전통음식보다 뭔가 외국의 영향을 가미한 새로운 것에 후한 점수를 준다.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만을 고집하는 프랑스인이란 식의 얘기는 20세기의 전설에 불과하다. 2016년 파리 거주 20대 프랑스인 치고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없다. 글로벌 시대를 당연시하는 프랑스 청년들이 미슐랭이 아닌 고 에 미조에 눈길을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고 에 미조 2016년판을 보면서 필자가 잡은 기준점은 네 부분이다. 파리 내 레스토랑으로, 모자 세 개, 저렴한 가격, 클래식 요리다. 클래식 요리의 경우 미슐랭이 적격이겠지만, 고에 미조가 말하는 클래식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고 에 미조 인터넷 판에 가면 기준별로 곧바로 검색이 가능하다. 124개 레스토랑이 등장했다. 하나씩 찾아보면서 나름대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결론이 나왔다. 모자 세 개로 20점 만점에 16점을 차지한 곳으로, 39유로 점심 코스에서 시작되는 ‘L’ Auberge du 15’다.

고 에 미조에서 모자 세 개는 미슐랭 원스타에 준한다. 한산한 교외에 위치한 레스토랑인 점에서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판단이 섰다. 모자 세 개와 16점을 받은 다른 레스토랑의 경우 점심이라도 대략 70유로에서 시작된다. 곧바로 달려갔다. 지하철을 타고 길을 물어 찾아간 끝에 겨우 발견했다. 레스토랑은 큰길에서 떨어진 골목길 주택가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식당 이름과 작은 메뉴판이 없으면 그냥 스칠 수도 있는 소박한 레스토랑이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일본인 스텝이다. 심플한 실내 분위기를 통해 한눈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고 에 미조가 말하는 프랑스 클래식 요리를 위해 달려온 곳이 일본계 레스토랑이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단 새로운 자극으로 와 닿았다. 내부는 많아야 정원 25명 정도의 공간이다.

이상적 수준의 레스토랑이다. 수준이 있는 레스토랑의 특징이지만, 아무리 많아도 정원 50명을 넘기지 않는다. 셀러브리티 요리사를 통한 초대형 기업형 레스토랑도 있지만, 필자가 선호하는 곳은 최고 30명 정원의 장소다. 30명을 넘어서면 메인 요리사가 음식 하나하나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100명 정원의 경우 최하 4명 정도의 보조 요리사가 붙는다. 메인이 아니라, 레시피에 따른 보조 요리사의 음식이 공급될 뿐이다. 당연하지만, 보조 요리사가 늘어날 수록 맛이 분산되고 질적으로 떨어진다. 규모가 커질수록, 셀러브리티의 텔레비전 출연이 늘어날수록 음식의 질은 떨어진다. 고 에 미조 모자 세 개, 또는 미슐랭 원스타를 얻은, 무명의 요리사가 운영하는 정원 30명 내 공간이 이상적 수준의 레스토랑이다.

주문은 큰 맘 먹고 68유로 점심코스로 했다. 생선, 육류를 포함해 4개 코스지만, 와인이 함께 딸려 나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비싸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음식은 식전에 즐기는 식욕 증진 스푼 요리인 어뮤즈망(Amusement)에서 시작됐다. 입에 넣는 순간 한순간에 터지는 검은 캐비어와 일본식 깻잎인 시소(紫蘇)를 엮은 것이다. 함께 가져온 빵은 바깥 부분이 적당히 익혀진 아름다운 빵이다.

레스토랑 수준을 재는 기본으로 빵에 대한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저렴한 하우스 와인도 기준 중 하나지만, 빵 하나만 보면 그 레스토랑의 실력을 알 수 있다. 직접 만들 필요는 없다. 잘 만드는 빵집을 찾아 맛있고 신선한 빵을 매일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채소·육류·생선과 같은 음식 재료만이 아니라, 막 구운 듯한 신선한 빵은 일류 레스토랑의 기본이다. ‘L’Auberge du 15’의 빵은 필자가 경험한 일류 미슐랭 레스토랑 그 어디에 뒤지지 않는다.

 


 ‘미야비(雅)’의 상징 교(京)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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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미슐랭은 프랑스인조차 감탄하는 프랑스 요리로 유명하다. 음식에 관한 일본인의 정열은 거의 종교 수준이다.

 

 

거위 간을 기본으로 한 푸아그라 수프가 나왔다. 포말이 위를 덮고 있다. 프랑스 요리에 포말이 들어온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요리법이다. 필자는 사실 포말로 치장된 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카푸치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중요한 것은 마구잡이로 휘저어진 비누형 포말이 아니다.

크림 상태로 만들어진 세밀한 우유 엑기스로서의 포말이 카푸치노의 제 맛이다. 포말 요리도 마찬가지다. ‘L’Auberge du 15’이 제공한 포말 푸아그라 수프의 포말은 맛과 더불어 90점 정도로 판단된다.

외국에서 만난 일본 음식점의 공통점이지만, 엄청나게 거품을 뺀 다운사이징 경영이 특징 중 하나다. 주의 깊게 살펴봤지만, ‘L’Auberge du 15’의 종업원 수는 메인과 보조 요리사, 주문과 서비스를 동시에 행하는 스텝을 포함해 전부 3명이다. 프랑스인 레스토랑이라면 5명이 필요한 규모지만, 3명이 전부다. 주문·서비스·계산까지 하는 일본인 스텝은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갖고 있다.

‘L’Auberge du 15’에서 접한 축소 지향 경영은 지난해 가을 뉴욕 소호(Soho)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2015년 소호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원스타를 얻은 레스토랑 ‘히로히사(ひろ久)’다. 뉴욕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교토 스타일 가정요리라는 것이 미슐랭 스타를 얻게 된 이유 중 하나다. 히로히사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 곧장 달려갔다.

교토는 일본문화의 정수에 해당된다. 와쇼쿠에 관한 한 도쿄의 날고 기는 레스토랑이라 해도 교토에 한 수 뒤진다. 교토는 개국전인 에도(江?)시대까지만 해도 천황의 거주지다. 도쿄로 천황이 옮겨간 것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다. 전통과 역사에 관한 한 교토가 도쿄를 눈 아래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 교토 요리는 줄여서 교(京)요리라 불린다. 궁중풍·도시풍·고품격을 의미하는 ‘미야비(雅)’의 상징이 교요리다. 일본 문화의 최고봉이자 자존심이다.

그 같은 음식이 소호에 진출했고,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것이다. 음식의 수준과 내용은 기본이겠지만, 당시 필자가 히로히사에서 관심 깊게 본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식기다.

메인 요리사의 고향인 교토 주변, 후쿠이(福井)에서 불에 구워 직접 만들어 공수해온 것이라고 한다. 식기 자체가 예술이다. 세척기가 아닌 손으로 씻어야만 하는 까탈스러운 식기다. 당연하지만 좋은 음식은 좋은 식기를 필요로 한다. 둘째는 경영 방식이다. 주문, 서비스 받는 사람이 일본인 여성 한 명과 메인 요리사와 보조를 합쳐 전부 3명이다. 25명 정원의 테이블을 세 명이 다룬다는 것이 무척 힘겨울 듯 보였다.

 


욕심 안 내는 생활로서의 레스토랑 

곧이어 메인인 생선요리가 등장했다. 연어 계통의 생선으로 씹는 순간 치아에서 튕겨 나가듯 탄력성이 있다. 불에 그을려진 정도가 적당하다. 가볍게 삶은 신선한 채소도 크게 썰어 생선과 조화를 이룬다. 생선요리지만, 비린내가 없다. 지나치게 푹 삶는 채소는 유럽식 요리법의 특징이다. ‘L’Auberge du 15’의 채소는 유럽 다른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과 달리 탄력성이 강하다. 프랑스인들이 여기 채소 조리법을 싫어하지 않는가라고 물어봤다. 파리에 사는 프랑스인이라면 강한 탄력성의 채소 요리에 익숙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앞서 강조했듯이 프랑스만을 고집하는 프랑스인은 20세기 과거사에 불과하다.

두 번째 메인 요리는 육류다. 한국식으로 치자면 등심 부분의 숙성 요리다. 가로세로 6㎝ 두께의 숙성된 등심이다. 저온에서 숙성됐기에 두꺼워도 피가 흐르지는 않는다. 바깥 부분을 약하게 그을려서 씹을 때 바삭거리는 느낌이 난다. 식기와 더불어 포크, 나이프도 좋은 식당을 규정하는 요소들이다. 고기를 자르는 나이프는 150년 정통의 프랑스 나이프라고 한다. 육류에 이어 마지막 코스로 치즈 모음이 나왔다. 단 맛의 디저트 와인과 즐기는 프랑스 치즈는 행복의 극점에 해당된다.

모자 세 개를 받은 이상 곧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으로 가지 않겠냐고 스텝에게 물어봤다. 묘한 반응이 돌아왔다. “당장 손님이야 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어떨지 의문입니다. 스타 하나를 받으면 둘을 원하고, 둘을 받으면 스타 셋을 바라보게 됩니다. 올라갈 때는 좋지만, 만약 스타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슐랭 스타 요리사 자살에 관한 뉴스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요리를 즐길 줄 아는 분들이 단골로 찾아주는 한 문제가 없습니다. 한때 반짝하는 것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레스토랑이 되고 싶습니다.”

와쇼쿠를 포함한 일본계 레스토랑이 왜 세계에서 인정받는지에 대한 이유는 간단히 발견할 수 있다. 예민하고 구체적인 요리 실력은 기본이다. 일을 크게 안 벌이고 소수정예를 통해 끈기 있게 유지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일본 요리와 요리인의 저력이자 특징이다. 너무도 상식적이지만 크게 욕심 안 내면서 행하는 삶과 생활로서의 요리가 일본계 레스토랑의 핵심일 듯하다. 곧 한국에서 볼 수 있겠지만, 미슐랭 스타에 의해 탄생될 한국 음식의 가치와 기준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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